'살해 의대생' 신상도 싹 털렸다…부활한 '디지털 교도소', 우려 완전히 지웠나 [이슈크래커]

입력 2024-05-1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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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디지털 교도소 홈페이지 캡처)
▲(출처=디지털 교도소 홈페이지 캡처)

범죄 혐의자 신상을 공개하는 웹사이트, '디지털 교도소'가 부활했습니다. 2020년 폐쇄된 지 약 4년 만입니다.

최근 재개설된 이 사이트는 현재 복역 중인 범죄자를 비롯한 일반인들의 실명과 사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 등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노출돼 있습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한 의대생 최모(25) 씨, 부산 연제구 거제동 법조타운에서 칼부림을 한 50대 유튜버 A 씨의 신상도 여과 없이 게재돼 있죠.

해당 사이트 운영자는 “한국은 범죄자에 대한 처벌 등 사법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개설 이유를 전했습니다.

4년 만에 디지털 교도소가 재등장하면서, 온라인상에서는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습니다. 사적 제재로 인한 피해자의 신상 정보 유출 등을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와 범죄 예방이라는 사회적 공익을 추구하는 행위라는 지지의 목소리가 대표적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4년 전 등장한 디지털 교도소…"법 위에 범죄자 있다" 들끓은 여론

디지털 교도소는 응보적 감정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사이트가 처음 등장한 건 2020년인데요. "대한민국 악성 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한다"며 범죄자로 특정한 이들의 이름과 사진, 연락처, 주소, 학력 및 직장 정보 등 자세한 신상을 공개해 화제의 중심에 섰죠.

당시 운영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촌동생이 n번방 피해자"라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특히 약하다고 판단해 직접 신상 공개를 결심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의 운영자 손정우의 얼굴과 나이, 학력 등의 신상 정보를 비롯해 각종 성범죄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면서 이목이 쏠렸는데요. 사회적 공분이 들끓은 사건이라 사이트에 대한 지지도 열렬했습니다.

일부 네티즌은 허술한 법체계를 지적하면서 이 사이트를 '정의'로 일컫기도 했죠. 피해자는 숨어 지내며 사회적 죽음을 선고받는 고통을 겪는데, 성착취물을 제작, 유포 또는 구매한 범죄자들은 죄질에 맞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지적이 잇따른 겁니다.

그러나 같은 해 1기 운영자가 구속 수감되면서 사이트도 폐쇄됐습니다. 1기 운영자는 캄보디아로 출국, 인접 국가인 베트남에 은신해 있다가 국제형사경찰기구(ICPO·인터폴) 적색 수배로 베트남 공안부에 검거됐습니다. 이후 국내 송환돼 대구경찰청으로 압송됐죠. 운영자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대부분 인정했는데요. 개인정보를 유포해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등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2020년 10월 15일 성범죄 피의자 등의 신상 정보 및 선고 결과 등을 무단 게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 '디지털 교도소 1기 운영자'가 대구지방경찰청에서 검찰로 이송되고 있다. (뉴시스)
▲2020년 10월 15일 성범죄 피의자 등의 신상 정보 및 선고 결과 등을 무단 게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 '디지털 교도소 1기 운영자'가 대구지방경찰청에서 검찰로 이송되고 있다. (뉴시스)

피해자 신상 유출되고 엉뚱한 인물이 가해자로…부작용도 상당해

다시 등장한 디지털 교도소 역시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을 양분으로 삼습니다. 현 운영자는 "지금이 디지털 교도소가 다시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어 디지털 교도소의 예전 신상 공개 자료들을 최대한 복구했다"며 "앞으로 디지털 교도소는 성범죄자, 살인자에 국한하지 않고 학교폭력, 전세사기, 코인 사기, 리딩방 사기 등등 각종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여 이 사이트에 수감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우려도 상당합니다. 이미 부작용이 상당하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죠.

앞서 폐쇄된 디지털 교도소가 문제가 된 이유는 경찰이 신상을 공개한 이들의 정보를 모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의적으로 범죄를 판단해 신상 정보를 공개했다는 겁니다.

엉뚱한 사람을 범죄자로 지목해 게시물을 삭제하기도 했습니다. 2020년 디지털 교도소 1기 사이트에서 신상이 공개됐던 한 대학생은 억울함을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무고한 대학교수가 성착취범으로 몰리기도 했는데요. 당시 이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야말로 지옥문이 열린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며 "전화번호를 포함한 모든 신상이 사이트에 공개됐다. 하루에 100통 이상의 전화가 왔다. 메신저로도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이 쏟아졌다. 사이트 내용을 두고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에도 허위사실이 확산됐다"고 토로했습니다.

신상정보가 무분별하게 공개되면서 피의자뿐 아니라 피해자의 신상까지 함께 공개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최근 강남에서 벌어진 의대생 최 씨 살인 사건의 경우, 경찰은 피의자 신상 공개 시 피해자 신상까지 노출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신상 공개를 하지 않았는데요. 반면 디지털 교도소는 최 씨의 신상정보를 공개했죠.

주변인 계정까지 쉽게 찾을 수 있다는 SNS의 특성상, 온라인상에는 최 씨는 물론 피해 여성, 가족들의 계정까지 공개돼 악성 댓글, 근거 없는 추측이 확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피해 여성의 유족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피해자의 SNS로 알려진 계정에 댓글을 달아 “저희 가족은 지금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며 “동생이 조금이라도 편히 잠들 수 있게 동생의 신상이 퍼지는 것을 막고자 동생 계정을 비공개 또는 삭제하려고 했으나 그마저도 계속 오류가 걸리고 있다. 부디 동생에 관한 억측은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다시 등장한 디지털 교도소도 이 같은 논란들을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 운영자는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철저한 검증을 약속했는데요. '검증'의 주체가 개인이라는 점으로 무고한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는 지울 수 없습니다.

▲(뉴시스)
▲(뉴시스)

'솜방망이 처벌' 공분 ↑…양형 고민도 함께 이뤄져야

지난해 SK커뮤니케이션즈가 성인남녀 7745명을 대상으로 ‘범죄 가해자의 신상 공개 및 저격 등 사적 제재’ 논란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49%(3856명)가 적절하다는 지지 의견을 표했습니다.

전체 응답자 중 44%(3480명) 역시 ‘강력범죄에 한해서 인정한다’며 선택적 지지 의견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그 목적에 '공익성'이 있으니 이해가 간다는 입장입니다.

사적 제재를 지지하는 배경엔 사법 불신이 가장 큽니다. 현행 사법 체계에서 사법부가 범죄자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고 있다는 판단이 주효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개인과 일상을 망가뜨리는 강력범죄의 경우, 가해자의 낮은 형량으로 사법체계가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지 않다는 실망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됩니다.

답답한 현실 때문일까요? 피해자가 직접 복수와 응징에 나서는 콘텐츠도 다수 공개됐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부터 '모범택시', '국민사형투표' 등 사법기관이 아닌 개인이 범죄 피해를 앙갚음하는 내용의 콘텐츠들이 인기를 누렸죠. 이들 작품의 흥행은 세태를 반영합니다. 시청자들은 사적 복수를 보며 주인공을 응원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도,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하다'며 씁쓸함을 삼켜야 했습니다.

사법 불신에서 비롯된 불신, 일반적인 상식과 법의 괴리에서 오는 공분은 이해한다는 네티즌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무분별한 사적 응징에 면죄부를 주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인데요. 단 한 건이라도 무고한 이가 표적에 오를 경우, 개인과 그 주변의 인생을 모조리 파괴할 위험이 큰 탓입니다. 재판은 재심 등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는 공식 절차가 있는데, 디지털 교도소 같은 온라인 공간의 사적 제재를 통해 한 번 낙인이 찍히면 사후 구제 방안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지적도 나오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오늘(13일) 통신심의소위원회를 열고 디지털 교도소 사이트 접속 차단 여부를 심의, 시정요구(접속 차단)를 의결했습니다.

2020년 심의 때도 결국 접속 차단이 결정됐지만, 결정이 이뤄지기까진 치열한 논쟁이 오갔습니다. 여론뿐 아니라 통신소위에서도 디지털교도소를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과 ‘차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맞부딪혔는데요. 방통심의위가 통신자문특별위원회와 권익보호특별위원회에서 자문받은 결과도 반반으로 갈리며 팽팽하게 맞섰죠.

이번에도 접속 차단을 의결한 방통심의위는 디지털 교도소가 사법 시스템을 벗어난 사적 제재를 목적으로 개설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범죄에 대한 유죄 판결이 내려지지 않거나 수사 중인 사건과 관계된 개인의 신상정보가 무분별하게 공개됨에 따라 심각한 피해가 우려돼 시정요구를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결정 이후에도 개인 신상 정보의 무분별한 유통으로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이트의 재유통 여부 등을 모니터링하고, 신속히 심의·차단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인데요. 수일 내 사이트 접속이 차단될 것으로 보입니다.

방통심의위 의결 결과와는 별개로 국민이 왜 사적 제재 콘텐츠에 열광하는지부터 귀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뒤따라가 원룸에 침입해 성폭행을 시도하고 이를 제지하는 피해자의 남자친구까지 살해하려 한 남성 B(29) 씨에게 법원은 검찰이 구형한 형량보다 무려 20년이나 늘어난 징역 50년을 선고한 바 있습니다.

검찰은 B 씨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피해자들은 평생 치유하기 어려운 고통과 상처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점,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한 점, 피해 회복을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점, 엄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했다"며 징역 50년을 선고했는데요. 유기징역형으로는 최장기입니다. 해당 소식을 전하는 포털 뉴스 댓글 창에는 '이례적'이라는 반응과 함께 ‘통쾌하다’는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중대 범죄의 양형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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