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복 입으면 더 잘 뛰나요?…운동복과 상업성의 함수관계 [이슈크래커]

입력 2024-04-1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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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나이키가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나이키 에어 이노베이션 서밋에서 미 육상 대표팀이 입을 경기복을 공개했다. (출처=시티우스 인스타그램)
▲2024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나이키가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나이키 에어 이노베이션 서밋에서 미 육상 대표팀이 입을 경기복을 공개했다. (출처=시티우스 인스타그램)
2024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공개된 미국 여성 육상팀의 경기복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불필요하게 노출이 많고 성차별적이라는 지적이 나온 겁니다.

13일(현지시간)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나이키는 1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나이키 에어 이노베이션 서밋에서 미국 육상 대표팀이 입을 경기복을 공개했습니다.

문제가 된 건 여성용 경기복이었습니다. 여성용 경기복은 다리 전체는 물론 골반 위까지 깊게 드러나도록 디자인된 모습이었는데요. ‘하이컷 수영복’과 다를 바 없어 속옷조차 가리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나이키 측은 반바지, 크롭탑 또는 탱크톱, 반바지 형태 등 다양한 형태의 경기복 중 하나라고 해명했지만 온라인상에는 즉각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해당 경기복을 디자인한 사람이 누구냐”, “미국 육상연맹이 신체 노출에 따른 왁싱 비용을 지원하길 바란다”, “여성 선수도 반바지를 입을 수 있다”, “같은 종목에서 여성 선수의 경기복이 남성보다 옷감이 적어야 할 이유는 없다” 등의 반응이 올라왔는데요.

네티즌은 물론 국가대표 선수들도 비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여성 경기복을 둘러싼 논란이 처음이라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은 더 거센 모양샙니다.

▲12일(현지시간) 나이키가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한 파리 올림픽 키트 공개 행사에서 경기복이 소개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나이키가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한 파리 올림픽 키트 공개 행사에서 경기복이 소개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국가대표 선수들도 분노…“기능적으로 좋다면 남성들도 입혀야”

해당 경기복 사진이 올라온 미국 육상 전문 매체 시티우스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비판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들도 경기복에 의아함을 표했습니다. 여성 육상 챔피언 로렌 플레시먼은 자신의 SNS에 “선수는 민감한 신체 부위 노출에 대한 부담 없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옷이 실제로 기능적으로 좋다면 남성들도 입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특히 자기 신체에 대해 고민하는 발달기 여성 운동선수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도 짚었죠.

장애물 경주 선수인 콜린 퀴글리는 “이 경기복은 절대 성능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장대높이뛰기 선수 케이트 문은 “당연한 우려”라면서 “경기복 선택은 선수의 자유”라고 밝혔습니다. 케이트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20가지 이상의 상하 조합이 가능하며, 원하면 남성복도 입을 수 있다”며 “나는 달라붙지 않는 속옷 형태의 하의를 선호한다. 포대 자루를 입든 수영복을 입든 선수가 원하는 의상을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나이키가 여성 선수를 남성 선수와 다르게 비추는 스포츠계의 불평등을 강화했다”고 일갈하기도 했죠.

▲반바지를 입고 뛴 노르웨이 선수단. (출처=노르웨이 핸드볼연맹 X 캡처)
▲반바지를 입고 뛴 노르웨이 선수단. (출처=노르웨이 핸드볼연맹 X 캡처)
여성 운동복 논란, 한두 번 아니다…‘상업적 흥행’이 명목?

여성 운동복을 둘러싼 논란은 꾸준히 불거져 왔습니다.

2011년에는 세계배드민턴연맹이 ‘미니스커트 유니폼’을 도입하면서 “관객들이 배드민턴 경기에 다시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선수들이 복장을 갖추고 경기를 해야 한다”고 발표해 황당함을 자아냈죠.

2012 런던올림픽에선 비치발리볼 여성 선수들에게 비키니 수영복 대신 반팔 상의와 반바지를 허용하자, 관계자들이 우려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국제배구연맹은 다양한 참가국의 종교적 신념과 문화적 관례를 존중해 새로운 의상 규정을 내놨는데요. 노출이 심한 비키니 대신 반바지와 긴팔 및 민소매 상의를 입고 경기를 치를 수 있게 한 겁니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도입된 비치발리볼은 대개 비키니를 입고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당시 규정 변경으로 날씨가 좋지 않은 날 열리는 경기인 경우 전신 수영복을 입는 것도 가능하게 됐는데요. 새로운 규정 도입으로 종교, 문화적 이유로 인해 참여를 꺼리던 국가들의 참가를 높일 수 있다는 기대도 나왔죠.

하지만 관계자들은 비치발리볼의 인기에 대해 우려를 내놨습니다. 하계올림픽에서 비치발리볼은 티켓 판매에서 높은 순위에 오를 만큼 인기 종목인데, 인기의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여성 선수들의 ‘비키니’ 덕분이었다는 겁니다.

2021년에는 노르웨이 비치핸드볼팀 여성 선수들이 유럽선수권대회 동메달 결정전에 반바지를 입고 출전했다가 벌금을 물어내야 했습니다. 유럽핸드볼연맹 규정에 따르면 비치핸드볼 경기에 출전하는 남성은 반바지를 입어야 하지만, 여성은 비키니 하의를 입어야 합니다. 노르웨이 비치핸드볼 팀 선수들은 규정에 의해 자신들이 입어야 하는 비키니 하의가 너무 제한적이고 지나치게 성적인 데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비키니 하의를 거부했는데요. 유럽핸드볼연맹은 ‘부적절한 의복과 의류 규정 위반’을 이유로 선수 한 명당 한 경기에 벌금 50유로(약 7만3000원)씩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노르웨이 선수단이 비키니 대신 반바지를 착용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던 건 무려 2006년부터였지만, 연맹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선수단은 벌금을 감수하고 반바지 차림으로 경기에 나선 거죠.

노르웨이 선수단에 대한 징계 결정이 알려지자, 전 세계 언론의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아비드 라자 당시 노르웨이 문화부 장관은 “남성우월주의적이고 보수적인 국제 스포츠계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비판했고요. 미국 유명 팝가수 핑크는 SNS에 “성차별적 복장 규정에 항의한 노르웨이 선수단이 자랑스럽다”며 “내가 벌금을 낼 테니 계속 싸워 달라”라고 밝혔습니다. 노르웨이 핸드볼협회는 “선수들은 편한 유니폼을 입을 수 있어야 한다”며 벌금을 대신 낼 계획이라고 전했죠. 논란이 지속되자, 결국 유럽핸드볼연맹은 “스포츠 분야에서 여성과 소녀의 평등을 지지하는 주요 국제 스포츠재단에 벌금을 기부하겠다”는 입장문을 발표하며 몸을 낮췄습니다.

국내에서도 1990년대 후반 한국여자농구연맹이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쫄쫄이 유니폼’을 도입했다가 2년 만에 철회한 일이 있었습니다. “쫄쫄이 유니폼 차림으로 뛰는 여자 선수들의 모습은 남자 농구에서는 볼 수 없는 눈요깃감”이라는 연맹 관계자의 발언이 기사화되는 등 여성 선수를 성적 대상화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기 때문이죠.

▲(출처=파울린 쉬퍼 인스타그램)
▲(출처=파울린 쉬퍼 인스타그램)
파리올림픽, 성평등 올림픽 꿈꾸지만…아직도 갈 길 멀었다

여성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1896년 열린 첫 근대 올림픽에 참가한 여성 선수는 0명이었습니다. 더 이상 스포츠가 남성만의 전유물로 여겨지진 않지만, 모든 올림픽 참가국이 여성 선수를 출전시킨 모습은 2012 런던올림픽에서야 볼 수 있었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14년 여성 선수 참가 비율을 50%로 늘리고, 여성의 참여를 촉진한다는 내용이 담긴 ‘올림픽 어젠다 2020’을 채택하며 ‘성평등한 올림픽’을 기치를 내걸었는데요. 이에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변화의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독일 여자체조 대표팀은 발레 연습복의 일종인 유니타드를 입고 출전했습니다. 기존 체조 선수들은 원피스 수영복 형태의 레오타드를 입어왔지만, 이들은 몸통부터 발목 끝까지 덮는 형태의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죠. 여성 체조 선수들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이제 그만 끝내자는 취지였습니다.

일각에서는 노출 여부가 아니라 복장 선택권이 핵심이라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독일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의 사라 보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체조 동작을 할 때 레오타드가 내 몸을 전부 덮지 않을 때도 있고 미끄러질 때도 있다”며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 때마다 동작에 방해가 되는데 (전신 유니폼을 입을 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게 상당히 안심된다”고 말했는데요.

그는 “모두가 입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모두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안전하다고 느끼면 기존의 레오타드를 입으면 되지만 유니타드를 입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이유가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세이츠도 “우리는 모든 여성, 모든 사람이 무엇을 입을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새 유니폼 착용이) 기존 유니폼을 더는 입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유니폼을 선택할지는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지에 따라 매일매일 바뀔 것”이라고 말했죠.

이번 파리 대회는 사상 처음으로 남녀 선수 출전 비율을 각각 50%씩으로 맞췄습니다. 여성 선수 출전 비율은 도쿄 올림픽의 48.8%보다 높아졌는데, IOC는 이를 위해 선수 출전 규모를 1만500명으로 줄이면서 여성 선수 출전 종목과 혼성 종목을 늘렸죠. 육상, 복싱, 사이클 등 32개 정식 종목 중 28개 종목이 남녀 동수로 성별 균형을 이룹니다.

또 여자 종목이 먼저 열린 후 남자 종목이 펼쳐졌던 경기 일정 방식에도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했던 남자 마라톤이 8월 10일 열리고 여자 마라톤이 하루 뒤 폐막 당일에 진행되는데요. 여자 마라톤 외에도 농구, 레슬링, 역도, 사이클 트랙 종목 등의 여자 경기가 대회 마지막 날에 열립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 선수의 비율이 동일한 대회가 될 전망이지만, 미 육상 대표팀의 여성용 경기복에서는 그간 지적된 폐해가 반복됐습니다. 경기복을 제작한 나이키 측은 “도쿄올림픽 때는 짧은 속바지 형태만 제공했지만, 이번엔 여러 선택지가 많다. 여성은 반바지, 크롭탑 또는 탱크톱, 반바지 형태의 보디 수트를 선택할 수 있다”며 또 다른 경기복들은 15일 진행되는 미 올림픽위원회 온라인 회담에서 공개할 예정이라고 해명에 나섰지만, 씁쓸함을 해소하진 못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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