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성 따라도 되나요?”…‘눈물의 여왕’ 통해 살펴보는 호주제 폐지 이후 [오코노미]

입력 2024-03-15 16:28 수정 2024-03-26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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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tvN '눈물의 여왕')
▲(사진제공= tvN '눈물의 여왕')

사랑해서 결혼하는데 왜 결혼하면 사랑을 안 하지?

결혼 3년 차인 백현우(김수현 분)는 아내 홍해인(김지원 분)과의 이혼을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과거 평범한 인턴사원인 줄 알고 만났던 해인은 알고 보니 퀸즈 그룹의 상속녀였고 그와 결혼한 현우는 3년째 가정과 회사 안팎으로 퀸즈 그룹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알고 보면 현우도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자 나름 대한민국 최고 법대를 졸업한 인재인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홍 씨들 틈에서 기를 세우지 못하는 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그 와중에 아내 해인은 왜 날이 갈수록 차가워지는지. 달달할 것만 같았던 ‘세기의 결혼’이 어쩌다 찬바람 쌩쌩 부는 ‘세기의 전쟁’이 됐을까.

그러던 어느 날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던 이 두 사람 사이에도 봄이 올 징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혼을 고민 중이던 현우는 해인이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왕 헤어질 거라면 생명의 위협이 따르는 이혼이 아니라 사별을 택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현우는 남은 기간 해인에게 최선을 다하고자 평소 하지 않던 과한(?) 행동도 하며 해인을 살뜰히 챙기는데. 해인도 갑자기 돌변한 남편의 의중을 의심하는 것도 잠시, 이내 현우에게 의지하며 다시 마음을 열어 간다. 3년 만에 다시 설레게 된 두 사람은 위기를 극복하고 과거 그들이 꿈꾸던 ‘달달한 미래’를 그려갈 수 있을까.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이다.

방영 전부터 2024년 기대작으로 손꼽히던 ‘눈물의 여왕’은 공개와 동시에 13일 넷플릭스가 발표한 글로벌 TOP10 시리즈(비영어) 랭킹 7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해당 순위 집계가 끝나가는 9일에 드라마 첫 회가 방영한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다. 3년 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흥행 보증수표 배우 김수현과 ‘나의 해방일지’, ‘쌈 마이웨이’, ‘태양의 후예’ 등의 작품으로 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난 김지원, ‘별에서 온 그대’, ‘사랑의 불시착’을 집필한 박지은 작가, ‘스위트홈’, ‘미스터 선샤인’ 연출 경력의 장영우 PD, ‘작은 아씨들’, ‘빈센조’ 연출 경력의 김희원 PD까지. 과하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을까 봐 걱정하는 이들의 시선을 반증하듯 ‘눈물의 여왕’은 공개 첫 주부터 시청률과 화제성을 모두 챙겼다. 특히, 뻔한 재벌가 설정도 뻔하지 않게 만드는 ‘배우들의 연기’와 ‘역클리셰’ 설정이 극에 신선함과 재미를 더했다는 평이 우세하다.

▲(사진제공= tvN '눈물의 여왕')
▲(사진제공= tvN '눈물의 여왕')

대한민국 드라마에서 숱하게 다뤄왔던 재벌가지만, 퀸즈 그룹은 조금 다르다. 장녀가 아들보다 더 높은 승계 서열을 차지하고 있으며 집안 제사도 사위들이 준비한다. 평사원으로 만났다가 재벌가에 입성하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도 여성이 아닌 남성이다. 여기에 퀸즈 그룹 홍범준 부회장은 “내년에 태어날 우리 손녀 이름은 홍수빈이 좋겠네”라는 말로 드라마의 역클리셰 전략에 쐐기를 박는다. 아들 홍수철 자녀의 성이 홍 씨라는 점을 고려하면 특별히 진보적인 시각으로 뱉은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호주제 폐지 이후 엄마의 성을 선택할 수 있게 된 한국 사회를 반영한 몇 없는 드라마 대사다.

▲2005년 2월 28일 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개정안이 처리되자 방청하던 여성계인사들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5년 2월 28일 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개정안이 처리되자 방청하던 여성계인사들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5년 헌법재판소에서 한 집안의 가장을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의 출생, 혼인, 사망 등을 기록하는 제도인 ‘호주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어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됨에 따라 이를 골자로 하는 민법 제781조가 본격적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민법 제781조 1항은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고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라고 명시하며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6항 역시 “자의 복리를 위하여 자의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는 부, 모 또는 자의 청구에 의하여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이를 변경할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출처= 스브스뉴스 화면 캡처)
▲(출처= 스브스뉴스 화면 캡처)

다만, 위 조항에도 명시돼 있듯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경우에는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경우와 달리 혼인신고 때 아이의 성을 미리 결정해야 하며 출생신고 후에 어머니의 성으로 바꾸고자 할 때 서류상 이혼을 했다가 다시 혼인신고를 해 성을 변경하거나 법원에 성본 변경 청구를 하는 등의 절차가 요구된다.

이에 여성단체 등이 꾸준히 부성 우선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민법 제791조 1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하자 여성가족부는 2025년까지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 따라 자녀의 성 결정을 ‘부성우선주의 원칙’에서 ‘부모협의 원칙’으로 전환하겠다는 개정안을 법무부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무부는 2021년 부성 우선주의를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던 과거와 달리 2022년 그 입장을 달리했다. 1년 만에 입장을 바꿔 부성 우선주의가 위헌이 아니라는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것이다.

▲성본변경 청구인 가족이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열린 ‘엄마의 성·본 쓰기’ 성본변경청구 허가 결정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성본변경 청구인 가족이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열린 ‘엄마의 성·본 쓰기’ 성본변경청구 허가 결정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예외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번거로운 절차에 어머니의 성을 사용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여전히 낯선 선택지다.

이는 한국보다 손쉽게 부모의 성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독일의 모습과는 다르다. 이에 8일 전국 가정법원 앞에는 어머니의 성을 쓰고자 하는 성인 40여 명이 모여 ‘부모협의 원칙 실현’을 외치며 성본 변경 청구소를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해 12월에는 김준영 그림책작가를 필두로 경향신문 플랫이 성본 변경 의사가 있는 이들과 그 과정을 함께할 법조인 등과 함께 ‘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를 기획 및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AOA 멤버 찬미나 배우 진태현·박시은 부부, 전 SBS 아나운서이자 작가인 김수민 등의 유명인이 본인 혹은 자녀가 엄마의 성을 따르기로 했다는 소식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이러한 문화가 알려지는 데 기여하고 있다.

▲(사진제공= tvN '눈물의 여왕')
▲(사진제공= tvN '눈물의 여왕')

“과연 수빈이는 홍 씨 성을 가질 수 있을까?” 홍 부회장의 바람이 이루어지게 될지. ‘눈물의 여왕’ 수빈이의 탄생을 또 다른 시선으로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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