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재판받지?” 법원 쇼핑의 기술…관할 법원에 엇갈린 희비 [서초동MSG]

입력 2024-03-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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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전국 법원에서 다루는 소송사건은 600만 건이 넘습니다. 기상천외하고 경악할 사건부터 때론 안타깝고 감동적인 사연까지. '서초동MSG'에서는 소소하면서도 말랑한, 그러면서도 다소 충격적이고 황당한 사건의 뒷이야기를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의 자문을 받아 전해드립니다.

(그래픽 = 손미경 기자 sssmk@)
(그래픽 = 손미경 기자 sssmk@)

법정지어(法廷地漁)

원고가 소송을 제기할 때 자신이 유리한 판단을 받을 수 있는 법원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법원 쇼핑’, ‘포럼 쇼핑’이라는 말로 불리기도 한다.

재판을 받는 당사자에게 ‘어디서 재판을 받을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재판 출석을 위해 매번 긴 거리를 이동하는 것이 부담되기 때문에 가까운 곳을 보통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이 법정관할이지만, 재판 적이 여러 군데 있으면 그 중에서 적당한 데를 골라서 제소할 수 있다.

국제사법의 투자분쟁 등에서는 관할 중재기구 및 관할국과 같은 유리한 법정관할을 확보하는 것이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법원을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민사소송법은 합의관할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쌍방 특약으로 관할 법원을 지정하는데, 형사사건은 범죄가 발생한 곳이나 피고인의 주소 등에 근거해 법원이 정해진다.

형사 사건의 피고인에게 최대 관심사는 ‘어디에서 재판받느냐’다. 마약사범은 인천지법을 회피한다는 소문이 있다. 인천과 같이 공항과 항구가 있어 마약사건이 많은 지역에서는 타 지역에 비해 마약사건의 형량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속설 때문이다.

▲ 인천지법 청사 전경. (사진 출처 = 인천지방법원 홈페이지)
▲ 인천지법 청사 전경. (사진 출처 = 인천지방법원 홈페이지)

A 씨는 한 때 연인 관계였던 B 씨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앙심을 품은 A 씨는 평소 봐왔던 B 씨의 범죄 행각을 정리해 수사기관에 고발했다.

A 씨는 우선 자신의 주소지를 외진 지방에 소재한 여관으로 옮겼다. A 씨는 물론 B 씨도 그 지역에 거주한 적이 없고 연고도 없는 곳이다. 결국 B 씨는 생뚱맞은 지역에서 구속되고 재판을 받게 됐다. 그가 수감된 구치소도 그 지역이었다.

B 씨가 무죄 선고보다 간절하게 기도한 것은 단 하나, 바로 구치소 이송이었다. 지인과 가족들의 연락과 접견이 뜸해지며 홀로 외로운 곳에서 수감 생활을 이어갔다. 지인에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해달라’고 요청해도 거리가 멀다는 핑계로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B 씨는 수차례에 걸쳐 법원 관할 이전을 신청했고 매번 기각됐다. 기각 판단을 내린 판사에 ‘법관 기피신청’을 했고 사건은 결국 헌법소원에까지 이르렀다. 헌법 제11조 제1항 평등권, 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 헌법 제27조에 따라 재판 받을 권리가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사건은 헌법소원 대상이 될 수 없다. 검찰의 기소 이후 검사의 처분은 법원의 재판절차에 흡수되고, 이 과정에서 그 적법성에 대해 충분한 사법적 심사를 거치기 때문에 합헌성 심사가 필요 없다는 헌법재판소 결정례 때문이다.

B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갖 절차를 시도했으나 재판은 끝내 이송되지 않았고 그는 타 지역에서 외롭게 재판을 받게 됐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형사사건에서 관할 재판 이전이 이론적으로 불가한 것은 아니다. 형사소송법상 관할법원이 법률상의 이유 또는 특별한 사정으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을 때 범죄의 성질, 지방의 민심, 소송의 상황, 기타 사정으로 재판의 공평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검사나 피고인의 신청으로 직근(直近) 상급법원에서 관할을 다른 법원으로 이전할 수 있다.

그러나 사례는 단 하나. 2011년 부적절한 법정관리를 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선재성 전 부장판사에 대한 항소심 재판지를 광주고법에서 서울고법으로 변경해 달라는 검찰의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인 사례가 있다.

일반재판이 아닌 군사재판으로 사건을 이송하기 위한 ‘도피성 입대’는 종종 일어난다.

군사법원법이 개정된 2022년 7월 이전에는 입대 전 저지른 범죄라고 할지라도 군인은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게끔 했다. 그때는 민사법원 재판이 군사법원으로 넘어가면 형량이 비교적 가벼워진다는 판단이 많았다.

그러나 군사법원법이 개정된 이후, 도피성 입대가 오히려 더 불리할 수도 있다고들 이야기 한다. 성범죄와 입대 전 범죄는 일반 법원에서 판결을 받을 수는 있지만, 형사 처벌을 받는 것과 별도로 군 내부 징계 절차에 회부돼 신분상의 불이익을 추가로 입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군 형법은 군인 성범죄를 일반 성범죄에 비해 더 무겁게 처벌하고 있다. 형법의 강제추행죄와 비교하면 벌금형 규정도 없고 징역형의 하한이 설정되어 있어 처벌 수위가 매우 높다.

▲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이투데이 DB)
▲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이투데이 DB)

법적으로 허용되는 한계 내에서의 전략적 선택이지만, 이러한 선택이 나와 상대방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고, 때로는 헌법적 권리를 침해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법원을 선택하는 것은 재판의 결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선택은 법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신중하게 고려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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