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기도

입력 2024-01-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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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정말 희귀한 케이스(case)야. 논문으로 보고해도 되겠는걸.”

당시 초보 의사였던 나와 검사를 지켜보던 후배 의사의 입에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거나 검사를 할 때 흔치 않게 교과서나 논문에서만 접했던 질환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땐 의사로서 심장이 두근거린다. 머릿속엔 학회지에 발표할 논문 제목이 떠오르고, 눈앞으론 지면에 게재할 사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밤새 관련된 자료를 찾고, 찍어놓은 사진을 고르다 보면 언제 밤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새벽을 맞이하곤 했다.

어느 가을밤, 그날도 전날 검사에서 희귀한 질환이 발견된 환자의 자료를 정리하다가 논문에 추가할 병력(病歷)을 더 알기 위해 환자가 입원한 병실을 찾아갔을 때였다. 동트기 전 새벽, 환자의 침대 앞에는 누군가가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은 채였고, 흐느낌에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그분은 환자의 아내였다. 환자와 두 손을 맞잡은 채 울며 기도하고 있던 어둠 속 두 사람의 그림자, 그 모습을 목격한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내가 쓰고 싶은 논문 뒤에는 그 질병을 안고 긴 시간 동안을 힘든 싸움을 해야 할 누군가가 있었는데.’의사에겐 단순히 병명(病名)으로만 기억되고, 활자(活字)와 수치(數値) 그리고 사진으로만 기록된 지면(紙面) 그 너머엔 투병의 아픔에 눈물짓고 힘들어하는 환자와 또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응원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망각했던 시간이었다.

그후 25년 동안, 그날 새벽 두 사람의 모습은 잊히지 않고 늘 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리고 그것이 내 무릎을 꿇리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게 만든다. ‘부디 오늘 나에게 오시는 모든 분이 치료될 수 있는 병이기를, 그리고 그분들께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조금은 덜 하기를.’

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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