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끝 죽은 ‘메시아’…이재록 없는 사이비 사라질까 [이슈크래커]

입력 2024-01-0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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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도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이재록 만민중앙성결교회 목사가 2018년 4월 28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재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 출석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
▲여신도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이재록 만민중앙성결교회 목사가 2018년 4월 28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재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 출석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
만민중앙교회 당회장인 이재록 목사가 숨졌습니다.

1일 만민중앙교회 관계자에 따르면 이 씨는 전날 80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당회장 직무대행인 딸 이수진 목사는 이날 온라인으로 중계된 설교를 통해 “이재록 당회장님께서 오늘 아침 11시경 기도처에서 소천하셨다”고 전했습니다. 다만 교회 측은 이 씨의 사망 원인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죠.

이 씨는 수년간 만민중앙교회 여신도 9명을 40여 차례 성폭행·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 2019년 8월 대법원에서 징역 16년이 확정돼 대구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었습니다. 말기 암 진단 등을 이유로 형집행정지를 신청해 지난해 초 풀려난 바 있는데요. 공개 전부터 큰 화제를 빚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하 ‘나는 신이다’)이 이 씨의 범행을 조명하기도 했죠.

이 다큐멘터리는 이 씨를 포함해 자신을 ‘신’으로 칭하는 네 명의 인물과 그들을 중심으로 한 사이비종교를 조명했는데요. 기독교복음선교회(통칭 JMS)의 정명석 총재에 대해선 초반 3회에 걸쳐 그 행적을 파헤치고, 법정 공방까지 벌인 바 있습니다. 정 씨 역시 지난해 10월 구속기소 돼 재판을 받고 있죠.

이때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각 종교단체의 핵심 인물이 구속 혹은 사망했는데도 이들 종교가 연명할 수 있냐는 거죠.

▲신도 성폭행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재록 만민중앙교회 목사가 2019년 5월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신도 성폭행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재록 만민중앙교회 목사가 2019년 5월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자신과 ‘신’이 한몸이라던 이재록…결국 암 걸려 사망

이 씨는 40여 년 전 만민중앙교회를 직접 설립했는데요. 이 교회는 90년대부터 성장을 이뤘고, 신도 수 13만 명에 이르는 대형 교회로 거듭났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주요 교단 사이에서는 만민중앙교회를 이단 및 사이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씨의 각종 의혹은 90년대 말부터 세간에 드러나기 시작했는데요. 1999년에는 이 씨의 헌금 강요, 미국 원정 도박 등 의혹을 다룬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PD수첩’의 방송을 막기 위해 신도들이 MBC 사옥을 점거, 주조정실에까지 난입하기도 했죠. 당시 2000여 명의 신도가 MBC 사옥에 몰려들었고, 그중 200여 명이 사옥이 진입해 주조정실 문을 부수고 코드를 뽑는 등 난동을 부리면서 방송 송출이 중단됐습니다.

2018년에는 이 씨의 상습적인 성범죄가 드러났습니다. 이 씨는 자신과 하나가 된다는 뜻의 ‘하나팀’을 만들고 여성 신도들을 불러 수년 동안 40여 차례 성폭행했는데, 확인된 피해자만 9명입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일부 설교 내용은 자신을 신격화하는 것으로, 소모임이나 개인적인 교육에서는 직·간접으로 신격화하는 취지로 가르쳤음이 넉넉히 인정된다”며 “피해자들은 피고인이 권능을 행한다고 믿고 성령이나 신적인 존재로 여겼다. 피고인의 행위도 성적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의심하는 것은 죄라고 여겨 거부할 생각조차 단념했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죠.

이는 취약한 상황에 놓인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이른바 ‘그루밍(Grooming) 성폭력’을 이 씨가 행사했다고 인정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꾸준히 자신을 ‘신’으로 일컬어온 이 씨는 결국 암에 걸려 80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출처=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 신이 배신한 사람들’)
▲(출처=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 신이 배신한 사람들’)
JMS 정명석도 수감 중…‘재림예수’ 주장하며 신도들 세뇌

또 다른 유명 사이비종교 JMS의 정 씨는 성범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018년 2월 출소했는데요. 그해 3월부터 2021년 9월까지 충남 금산군 진산면 월명동 수련원 등에서 23차례에 걸쳐 홍콩 국적 여신도 메이플(29)을 추행하거나 성폭행하고, 호주 국적 여신도 에이미(30)와 한국인 여신도를 성추행한 혐의로 지난해 10월 구속기소 됐습니다. 그는 외국인 여신도들이 자신을 허위로 성범죄로 고소했다며 경찰에 맞고소하는 등 무고한 혐의로도 재판에 넘겨졌죠.

이 씨와 정 씨의 특징은 자신을 ‘메시아’, ‘재림예수’ 등으로 우상화했다는 겁니다. 교회에서 쌓은 절대적 지위를 배경으로 신도들을 세뇌, 성폭행 등 범죄를 저지른 건데요.

정 씨는 신도들이 성적으로 세뇌되거나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고 자신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지속해서 설교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며 선교회 행사 영상 등에서 피고인이 스스로를 재림예수로 칭하는 등 절대적인 지위를 누리려 한 사실이 확인된다며 정 씨 측 주장을 기각했습니다.

검찰이 지난해 10월 정 씨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긴 지 1년 2개월 만인 지난달 22일, 대전지법 형사12부(나상훈 부장판사)는 준강간과 준유사강간, 강제추행, 준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정 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했습니다. 이는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 기준(징역 4년∼징역 19년 3개월)을 넘는 중형에 해당합니다.

JMS는 일부 여신도들을 ‘신앙스타’로 뽑아 ‘하나님의 신부’로 예우해 왔는데, 자신들도 신앙스타였던 이들은 “재림예수인 정명석의 사랑은 아무나 받지 못한다”며 신앙스타들을 세뇌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 씨 범행에 가담한 JMS ‘2인자’ 김지선(44·여) 씨 등 JMS 여성 간부 4명도 최근 진행된 1심에서 각각 징역 1년 6개월∼징역 7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지난달 22일 오후 대전 유성구 TJB 건물 1층 로비에서 여신도 성폭행 및 추행 혐의로 JMS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78)이 징역 23년을 선고받자 반 JMS 단체 ‘엑소더스’ 전 대표인 김도형(오른쪽) 단국대 교수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22일 오후 대전 유성구 TJB 건물 1층 로비에서 여신도 성폭행 및 추행 혐의로 JMS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78)이 징역 23년을 선고받자 반 JMS 단체 ‘엑소더스’ 전 대표인 김도형(오른쪽) 단국대 교수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여전히 ‘굴러가는’ 사이비…핵심 인물 영향력 이어져

1심 형이 확정될 경우 정 씨는 101세에 만기 출소하게 되는데요. 이에 일각에서는 그가 사실상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는 말이 나옵니다. 정 씨 측은 사실오인과 법리 오해,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장을 제출한 상황이죠.

여기에 만민중앙교회를 이끌던 이 씨가 사망하면서, 이들 종교가 종교적 명분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전문가들은 이들 세력이 축소되는 등 영향은 있겠으나, 종교 자체가 사라지진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JMS 피해자 모임 ‘엑소더스’를 이끌며 정 씨의 행적을 쫓아온 김도형 단국대 교수는 “교주가 틀렸다고 확인되거나 심지어 사망하더라도 잔존하는 세력이 있다. 이단과 사이비는 특정한 기준으로 비유를 해석하거나 교리적 지침을 따르는 게 아니라 왜곡된 욕망에 의거하기 때문”이라며 “JMS에서는 정명석이 무조건 옳고 계시를 내리는 존재라는 의식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명석이 감옥에 간다고 해서 JMS가 사라지지 않고 어느 정도는 유지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이 씨와 정 씨는 신도 상습 성폭행이라는 치명적인 혐의를 받는 상황에서도 교회 측에 ‘옥중편지’를 보내는 등 지속해서 영향력을 유지했습니다. 이 씨는 2019년 11월 교회 측에 자신의 딸인 이수진 씨의 교회 복귀에 대한 관심과 환영을 독려하는 편지를 보냈는데요. 당시 그는 편지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교회를 어떤 누구도 이간하여 분리하려 해서도 안 된다”고 당부하기도 했죠.

▲2022년 7월 8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선거 연설 중 총격으로 쓰러져 경찰이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AP/뉴시스)
▲2022년 7월 8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선거 연설 중 총격으로 쓰러져 경찰이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AP/뉴시스)
법적 대책 필요성…일본 사례 어떤가

사이비종교는 종교를 수단으로 사람들의 결핍을 공략합니다. 결핍과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처럼 접근한 뒤 세뇌, 회유, 협박 등 과정을 통해 개인을 외부 세계로부터 단절시키죠.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이비 종교에 발을 들여놓는 신자들에겐 대부분 결핍이 있다”며 “그 결핍을 종교적 힘으로 채우거나 극복하려는 사람들이 사이비 교주에게 쉽게 빠져든다”고 짚은 바 있습니다.

사이비종교의 범죄 행각도 허다합니다. 이들 단체의 사기, 횡령부터 폭력, 성범죄 등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사회 문제이기도 하죠.

1995년 3월에는 일본의 옴진리교 간부들이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지시를 받고 출근 시간 도쿄 지하철 3개 노선, 5개 차량에 맹독성 사린가스를 살포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14명이 사망하고 6000명 이상이 중경상을 입는 큰 인명 피해가 발생했는데요. 일본 재판부는 아사하라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고, 2018년 사형 집행이 이뤄졌죠.

2022년 7월에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총격으로 사망했는데요. 아베 전 총리를 살해한 범인은 “어머니가 통일교에 거액을 기부해 가정이 엉망이 됐다”고 범행 동기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통일교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의 옛 이름입니다.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을 계기로 고액 헌급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는데요. 일본 정부는 약 1년간 가정연합을 상대로 행사한 질문권을 통해 관련 자료와 증언을 확보했고, 해산명령 청구 요건인 조직성·악질성·계속성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갖춰진 것으로 판단해 2022년 10월 법원에 해산명령을 청구했죠. 이 과정에서 가정연합 관련 피해자가 약 1550명이며, 피해 규모는 손해배상액 등 총 204억 엔(약 1848억 원)에 이른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13일 일본 참의원(상원) 본회의에서는 가정연합 피해자 구제에 관한 법률에 대다수 정당이 찬성해 가결됐습니다. 집권 자민당과 연립 여당인 공명당, 야당인 국민민주당 3당이 공동으로 제출한 이 법은 해산명령이 청구된 종교법인이 부동산을 처분하고자 할 때 1개월 전까지 관할 행정기관에 통지하도록 했는데요. 종교법인이 이 규정에 따르지 않으면 부동산 거래는 모두 무효가 됩니다.

또 종교법인이 재산을 유출할 가능성이 큰 경우, 보통 1년에 한 차례만 제출하는 재산 목록을 3개월에 한 번씩 내고 피해자 등이 수시로 교단 재산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죠. 이 법에는 종교법인 피해자 민사소송을 지원한다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한국에서는 ‘나는 신이다’ 공개를 기점으로 다시 한번 사이비종교에 대한 경각심에 불이 붙었는데요. 이들 단체에 대한 규제·처벌이 가능한 법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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