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들어줄 수 없는 부탁

입력 2023-12-27 05: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콧물이 줄줄 흐르는 아이가 연달아 들어왔다. 아이는 싫다고 난리 법석이지만 콧물은 꼭 뽑아야 되는 필수 코스로 여겨진다. 코 막힘은 잠시 해소되겠지만 곧 다시 콧물로 꽉 찰 테니 솔직한 말로 콧물 뽑기는 엄밀히 말하면 감기 치료를 위한 행위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 엄마들은 속 시원한 콧물 뽑기를 좋아했다.

세 살 차이 남매를 데리고 온 그녀도 콧물 뽑기의 신봉자였다. 아침에 둘째를 데리고 와 진료를 보고 코를 쑥 뽑고 돌아갔다. 그리고 오후에 첫째 유치원이 끝나면 첫째 진료를 보고 누나를 따라 온 둘째 코를 또 뽑아 달라고 들이미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침 저녁으로 열심히 콧물을 뽑았고 그때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아이는 발버둥치며 울었다. 그래도 이 정도 부탁은 탐탁지 않긴 해도 들어줄 수는 있었다.

이번에는 두 살 짜리 아기가 기침을 콜록 거리며 엄마 품에 안겨 진료실로 들어왔다. “약은 좀 길게 일주일 정도 먹게 주세요.” “그렇게 길게는 어려워요. 중간에 나빠지면 약 바꿔야 되고 진찰도 필요하고요.” “내일 가족여행 가는데 다시 병원 올 수가 없고 여행 가서 병원 가기도 어렵잖아요.”

이 부탁은 들어주기가 어려웠다. 오랜 설득 끝에 4일분 약을 처방하고 여행지에서 나빠지면 꼭 다시 진료를 보기로 했다. 엄마는 자신의 부탁이 거절돼 기분이 상한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엄마가 나가고 태어난 지 한 달이 갓 지난 아기가 속싸개에 돌돌 싸인 채 부모와 함께 들어왔다. 엄마가 울먹이며 이야기했다. “손톱 깎다가 손 끝이 베여서 피가 났어요.” 손가락을 소독해주고 연고를 처방해주고 주의사항을 설명해줬다.

젊은 아빠가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선생님이 우리 아기 손톱 좀 깎아주시면 안될까요?” 아빠는 사뭇 진지한데 황당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워 헛웃음만 지었다.

유새빛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강세장 복귀한 코스피, 공포지수도 다시 상승⋯변동성 커질까
  • 레이건 피격 호텔서 또 총격…트럼프 정치의 역설
  • 하림그룹, 익스프레스 인수에도...홈플러스 ‘청산 우려’ 확산, 왜?
  • 파월, 금주 마지막 FOMC...금리 동결 유력
  • 트럼프 “미국 협상단 파키스탄행 취소”…이란과 주말 ‘2차 협상’ 불발
  • 공실 줄고 월세 '쑥'…삼성 반도체 훈풍에 고덕 임대시장 '꿈틀' [르포]
  • 반등장서 개미 14조 던졌다…사상 최대 ‘팔자’ 눈앞
  • “삼성전자 파업, 수십조 피해 넘어 시장 선도 지위 상실할 수 있어”
  • 오늘의 상승종목

  • 04.24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15,904,000
    • +0.42%
    • 이더리움
    • 3,485,000
    • +1.22%
    • 비트코인 캐시
    • 670,500
    • -0.89%
    • 리플
    • 2,122
    • -0.28%
    • 솔라나
    • 128,500
    • +0%
    • 에이다
    • 375
    • +0.54%
    • 트론
    • 482
    • -0.21%
    • 스텔라루멘
    • 255
    • -0.39%
    • 비트코인에스브이
    • 23,830
    • +0.93%
    • 체인링크
    • 14,090
    • +1.22%
    • 샌드박스
    • 122
    • +2.52%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