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링크·그리드·스킴’…‘꼼수 인플레이션’에 소비자는 고달프다 [이슈크래커]

입력 2023-11-1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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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슈퍼마켓에서 오레오를 집어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한 시민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슈퍼마켓에서 오레오를 집어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밀크·슈거플레이션부터 슈링크플레이션, 그리드플레이션, 스킴플레이션까지….

‘○○플레이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은 온갖 단어와 결합하고 있는데요. 가격을 유지하는 대신 제품 크기와 용량을 줄여 파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inflation), 물가는 오르는데 기존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스킴플레이션(Skimp+inflation), 기업들의 탐욕 때문에 물가가 오른다는 그리드플레이션(Greed+inflation) 등 합성어가 대표적인 예죠.

여기에 최근 주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들이 잇따라 가격을 올리면서 스트림플레이션(Stream+inflation)이라는 용어도 등장했습니다. 물가 상승이 단순히 먹거리뿐 아니라 외식 부문, 스마트폰이나 IPTV(인터넷TV) 등을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요금 등 다방면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걸 방증하는 셈입니다.

인플레이션은 모든 나라에 반갑지 않습니다. 각종 지출비가 증가하면서 가정의 부담은 늘고, 물건값을 올리면서 자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도 떨어지죠. 화폐 가치도 하락시킬 수 있습니다. 각국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경계하면서 물가 안정 정책을 펼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최근 전 세계적으로 물가 상승이 장기화하면서 인플레이션과 관련한 신조어가 쏟아지는 실정입니다.

▲(출처=오레오 공식 인스타그램)
▲(출처=오레오 공식 인스타그램)
“핫도그 하나 어디 갔지?”…오레오 크림 논란, 한국도 예외 아냐

먼저 슈링크플레이션은 가격은 유지하는 대신, 제품의 크기·중량을 줄여 간접적인 가격 인상 효과를 노리는 기업 전략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과자, 오레오도 이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오레오에 들어가는 크림 양이 줄어들었다는 의혹이 나온 겁니다.

12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일부 소비자들은 기본 오레오 제품보다 크림 양이 많게 출시된 ‘더블스터프 오레오’ 제품에 실제로는 크림이 적게 들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오레오는 1912년 출시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과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일부 소비자들은 기본 오레오 제품에서 크림이 더 이상 과자 가장자리까지 닿지 않는다는 구체적인 지적을 내놨는데요. 오레오가 크림으로 속을 채운 포장지 사진들과 더 이상 비슷하지 않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일부 팬들은 오레오를 비틀어 적은 양의 크림을 보여주는 영상을 SNS에 공개하고 있죠.

제조사인 몬덜리즈 인터내셔널 그룹은 논란에 선을 그었습니다. 제조사는 “최근 몇 년간 코코아, 설탕 등 높아지는 원재료 가격으로 인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시도했다”면서도 “하지만 제품에 큰 변화를 주면서까지 물가 상승에 맞서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는데요. 디르크 판더퓟몬덜리즈 최고경영자(CEO)도 “제품의 품질을 갖고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면 제 발에 총을 쏘게 되는 격”이라며 “몬델리즈는 항상 오레오 제품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 전적이 있습니다. 삼각뿔 톱니처럼 생긴 유명 초콜릿바 토블론도 2016년 같은 논란에 휩싸인 적 있는데요. 초콜릿의 톱니 간격을 더 벌리면서 중량을 줄였다가 소비자들에게 들통나버린 겁니다. 당시 역풍은 상당했죠.

한국도 이런 논란에 예외는 아닙니다. 국내 한 식품 업체는 5개가 들어 있던 핫도그 제품을 올해 3월 4개로 줄였습니다. 그렇다고 가격을 인하하진 않았는데요. 사실상 가격을 올린 셈이죠. 이는 최근에야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습니다. 이밖에도 김, 참치캔, 만두, 과자, 맥주 등 다양한 제품 중량이 줄어들면서 가격이 오른 셈이지만, 정작 소비자는 이를 인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019년 3월 18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오랜지주스가 판매되고 있다.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자료용 사진. (뉴시스)
▲2019년 3월 18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오랜지주스가 판매되고 있다.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자료용 사진. (뉴시스)
용량·가격 동일한데 ‘품질’이 달라졌다…눈치채기 더 어려워

‘눈 뜨고 당한다’ 격의 또 다른 인플레이션으로는 스킴플레이션이 있습니다. 제품의 크기나 용량은 그대로 두는 대신, 값싼 원료를 사용하면서 원가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말하죠.

예를 들자면 계란노른자 함량을 낮춘 마요네즈, 올리브유 함량을 낮춘 스프레이, 오렌지 과급 함량을 줄인 오렌지 주스 등이 있는데요. 단위당 가격을 꼼꼼하게 살피는 소비자더라도 눈치채기 어렵습니다. 같은 값을, 혹은 더 비싼 값을 지불하고도 이전보다 못한 제품을 구매해야 하는 거죠.

주요 식품 물가가 2년 연속 크게 오르면서 소비자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각종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체감 물가가 더 클 수 있다는 겁니다.

14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우유 소비자물가지수는 122.03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4.3% 올랐습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있던 2009년 8월(20.8%) 이후 14년 2개월 만의 최고치입니다. 우윳값은 지난달부터 가공유업체들이 가격 인상을 단행하면서 한 달 만에 물가가 4.7% 급등했습니다. 2년 전과 비교하면 우윳값 상승률은 17.4%에 달합니다.

주요 식료품인 설탕과 아이스크림은 1년 전보다 각각 17.4%, 15.2% 올랐습니다. 2년 전인 2021년 10월과 비교하면 설탕은 무려 34.5%나 올랐죠.

식용유 물가는 1년 전보다 3.6% 오르는 데 그쳤지만, 2년 전과 비교하면 47.9%나 높습니다. 밀가루는 1년 전 대비 0.2% 내리긴 했지만, 2년 전보단 36.5% 높은데요. 물가가 이미 올라 있는 상태에서 최근 소폭 하락한 겁니다. 라면 물가도 1년 전 대비 1.5% 하락했지만, 2년 전보다 10.0% 높죠.

외식 부문 5개 품목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달 치킨 물가는 1년 전보다 4.5% 상승에 그쳤지만, 2년 전과 비교하면 15.2%나 높습니다. 햄버거도 1년 전보다 6.8% 올랐는데, 2년 전과 비교하면 19.6% 상승한 겁니다.

그런데 슈링크플레이션, 스킴플레이션 등으로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는 더 클 전망입니다. 소비자물가지수가 같은 가격에 작아진 제품 용량이나 하락한 품질까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10월 25일 오후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고객들이 장을 보고 있다. (뉴시스)
▲10월 25일 오후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고객들이 장을 보고 있다. (뉴시스)
밀가루값 안정세에 실적도 좋지만…자발적 가격 인하 드물어

가장 큰 문제는 원재료 가격이 떨어지고 있음에도 물가 인상 흐름에 기대어 가격을 내리지 않는 ‘그리드플레이션’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지난해 크게 치솟은 국제 밀가루 가격은 최근 안정세를 찾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 평균 가격과 비교했을 땐 현재 50% 이상 하락한 상황이죠.

앞서 국제 밀가루 가격이 치솟자 모두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리겠다고 밝혔던 식품업계는 이러한 밀가루값 인하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의구심도 짙어지고 있습니다. 밀가루를 포함해 대두, 팜유, 옥수수 등 다른 식품 주원료들도 지난해 5월 정점 대비 내림폭이 큰데, 가격을 인하한 식품 업체들은 왜 없냐는 겁니다. 이 맥락에서 기업들의 탐욕을 지적하는 그리드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것이죠.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10일 성명을 내고 “원재룟값이 하락한 상황에서도 기업들만의 이익만을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원재료 가격이 뚜렷한 하락세로 나타난 만큼 소비자 가격 역시 조정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본 협의회에서 분석한 2023년 상반기 영업실적 결과를 보면 대표적인 예로 농심은 204.5% 증가했고, 오뚜기도 21.7% 증가했다”고 설명했죠. 실제로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을 살펴보면 빙그레도 160%, 해태제과도 75.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격을 내린 기업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앞서 6월 라면 업계를 중심으로 가격 인하를 발표했는데요. 다만 이 배경엔 정부의 노골적인 가격 인하 요구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8배에 달하는 등 상승세가 이어지던 외식 물가의 주요인이 식품 업계의 인플레이션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소비자들의 비난 여론이 거셌던 상황이었죠. 가격을 내리긴 했지만 품목도 제한적이라,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정부 압박과 소비자들에 대한 ‘생색내기용 가격 인하’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한국을 포함해 미국, 영국 등 주요 국가들은 제품 포장지에 소비자가격과 함께 중량·개수 등을 표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표시 내용이 바뀔 때 고지할 의무는 없습니다. 양을 슬쩍 줄이고, 이를 알리지 않아도 불법이 아니라는 거죠. 이에 상품을 꼼꼼히 살피는 건 전적으로 소비자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와 독일 등에서는 다른 분위기도 체감됩니다. 이들 정부에서는 바뀐 내용 고지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9월엔 프랑스의 대형마트 까르푸가 가격 변동 없이 용량을 줄인 상품에 대해 매대 앞에 이 같은 사실을 알리는 스티커를 자체적으로 붙여 화제가 되기도 했죠.

우리 정부도 소비자가 상품 ‘단위가격’ 변화를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소비자 정책 총괄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슈링크플레이션 관련 소비자 피해 예방을 위한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상품의 단위가격(g·ℓ당 가격 등) 변화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를 추가 제공하는 등 방식입니다. 정부가 가격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 산업통상자원부 고시(가격표시제 실시요령)에 따라 대형마트 등이 이미 상품 단위가격을 표시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 고려한 조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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