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 칼럼] 神의 맷돌은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든다

입력 2023-10-10 05:00 수정 2023-10-1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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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의료 과소비는 현저히 줄었지만
사회보장시스템 지속가능성 의문
화급한 인구문제에 정치권 각성을

지난해 1년간 3009회 진찰을 받았다는 대구 거주 50대 남성이 지난 주말 언론 보도를 탔다. 가문의 영광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매일같이 병원을 찾는 ‘의료 과소비’의 본보기로 다뤄진 것이니까. 이 남성을 ‘깜짝 스타’로 만든 것은 보건복지부가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국민건강보험공단 관련 통계 자료였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65회를 초과해 진료를 받은 이용자는 2467명에 달했다. 매일 1회 이상 병원을 찾은 사람들이다. 이들의 1인당 급여비는 평균 1087만 원으로 국민 평균의 15.6배였다. 다들 건보 재정을 축낸 도덕적 해이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대구 남성에게 초점이 모인 것은 최다 빈도 진찰을 기록한 탓이다. 역시 1위는 부담스러운 자리다.

그런데, 이번 ‘의료 과소비’ 통계에 대한 주목과 공분은 타당한 것일까. 솔직히 공감이 쉽지 않다. 외려 호들갑에 가깝다고 본다. 기억력이 없어서, 혹은 기억할 그 무엇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촉발된 호들갑이다. 시곗바늘을 10여 년 전으로 되돌려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2008년 무상의료의 맹점을 메우는 제도 개선을 했다. 국가가 의료비 전액을 지원하던 의료보호 대상자에 대해 자기 부담을 조금이라도 하는 방향으로 손질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도덕적 해이가 넘실거렸던 까닭이다. 1년에 365일을 초과해 진료 처방을 받은 환자가 39만 명에 이를 정도였다. 1인당 최다 처방 기록은 1년 1만 2257회였다. 정부가 무상의료 깃발을 들자 온 나라가 거지·사기꾼·날강도 소굴로 변한 것이나 진배없다.

지난해 365일 초과 진료자가 2467명으로 집계됐다는 이번 통계는 도덕적 해이가 뿌리 뽑힌 것은 아니라는 물증일 수 있다. 3009회 진료 기록도 마찬가지다. 추가 개선의 필요성 또한 없지 않다. 하지만 과거와 견줄 바는 못 된다. 365일 초과 진료자는 과거에 비해 158분의 1로 급감했다. 건보 허점을 악용하는 증상은 이젠 거의 사라진 형국이다. 그런 판국에 뭔 공분이겠나.

정작 관심을 가질 것은 따로 있다.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정보가 자료 곳곳에 담겨 있다. 건강보험과 본인 부담금을 합한 지난해 총진료비가 102조 4277억 원을 기록했다는 통계부터 그렇다. 한 해 진료비가 100조 원을 넘어선 것은 사상 처음이다. 65세 이상 노인층이 사용한 진료비가 전년보다 8.6% 늘어난 44조 1187억 원에 이르렀다는 점도 각별히 신경 쓸 필요가 있다. 건보 대상자의 17%(875만 명)를 차지하는 노인층이 전체 진료비의 43.1%를 지출한 결과라는 사실도 그렇다.

대한민국은 2025년부터 노인이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로 본격 진입한다. 전체 내국인 중 고령 인구 비중이 2020년 16.1%였지만 2025년 20%에 이어 2035년 30%를 넘게 된다. 뭔 뜻인가. 건보 부담이 걷잡을 수 없이 무거워진다는 뜻이다. 사회보장 시스템이 과연 디스토피아에 대한 대비가 돼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상황 변화가 없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많이 걷든가 아니면 지출을 조이는 선택이다. 많이 걷는 선택은 쉽지 않다. 정치적 부담이 워낙 클뿐더러 현행 건강보험료율이 월급의 7.09%로 법정 상한선(8%) 턱밑에 있으니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도 최근 내년 건보료율을 동결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후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문재인 케어’ 폐기를 공식화했다. 지출 합리화 방향으로 길을 잡은 셈이다. 하지만 과잉 진료 논란을 부른 문재인 케어의 자기공명영상(MRI) 등의 급여 지출 증가세가 멈춘 것인지부터 의문이다. 말과 행동이 헛도는 느낌이 없지 않다. 정교한 실행이 시급하다.

인구 구조로 그늘이 드리운 것은 건보 재정만이 아니다. 국민·직역연금, 기초연금 등 하루속히 손을 볼 국가적 과제가 즐비하다. “신의 맷돌은 천천히 돌지만 확실하게 가루로 만든다”는 고대 그리스 속담이 있다. 현존하는 신의 맷돌이 바로 인구학적 문제다. 이대로 시간 낭비만 거듭하면 결국 모든 것은 가루로 변한다. 국가적 현실이 엄혹한데도 정치권은 한가하게 ‘당파싸움’이나 하고 있다. 분별도, 양심도 없다. 왜 저러는지 모를 일이다. 진짜 다급한 과제는 정치권 대청소일지도 모르겠다. trala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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