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바꿀 수 없는 것

입력 2023-08-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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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바로 걷기도 하고 알아서 엄마 젖을 찾아 먹던데, 사람의 아기는 그에 비해 너무나도 연약하다. 눈도 뜨지 못하고 체온 조절도 어렵고 젖을 먹는 것도 쉽지 않다. 제대로 돌봄이 없다면 하루도 못 버틸 연약한 생명, 그래도 다행히 비약적인 의학 발전의 결과로 영아생존율은 급격히 좋아졌다. 하지만 누군가는 눈에 빤히 보이는 이 명확한 사실을 부정한다.

진료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선생님, 조산원에서 출생한 아기가 왔는데, 비타케이 주사를 안 맞겠다네요.” “b형간염 접종은 했대요?” “아니요, 접종을 다 거부해요.”

진료실에 들어온 부부는 눈빛이 매서웠다. 우선 아기를 진찰하고 어떻게 해야 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가끔 이렇게 조산원에서 또는 집에서 분만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산부인과 병원에서의 처치나 진료행위보다는, 조금 더 따스하게 그리고 익숙하게 아기와의 첫만남을 갖고 싶어서다.

신생아는 체내에 비타민 k가 부족하다. 이는 출혈을 쉽게 일으키는 몸 상태를 의미한다. 출산과정 중에 생긴 충격으로 머리 속에도 출혈이 쉽게 생길 수 있다. 그것을 막기 위해 소아과학회에서는 태어나는 모든 신생아에게 비타민k 주사를 맞히는 것을 권고한다. 예방접종도 목숨을 위협하던 끔찍한 질병들을 거의 박멸하다시피 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나라에서 필수 예방접종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아기들에게 무료로, 필수로 시행된다.

“저희도 알아요. 많이 조사해봤는데 자폐가 될 수도 있다고 하고 안 맞아도 큰일 없다고 하더라고요. 맞히지 않겠습니다.” 아기에게 주사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길게 설명했지만, 이미 그들의 마음은 확고했다. 아기는 결국 주사를 맞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왜 겁을 주고 난리야.” 진료실 문 밖을 나서는 엄마의 차가운 말과 함께.

의대 6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도합 11년 동안 열심히 배운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말도, 수천, 수만 명의 데이터를 모아 결론을 내린 논문들도 철옹성과 같은 그 부모의 마음을 바꿀 수가 없었다. 깊은 무력감에 빠진 채 닫힌 문을 한참 바라봤다.

유새빛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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