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우리나라의 소득동질혼이 덜한 진짜 이유

입력 2023-01-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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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서강대학교 사회복지전공 교수

얼마 전 동질혼과 소득 불평등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제법 크게 보도되었다. 한국은행 소속 연구자들의 발표여서 더욱 주목을 받았을 것이라 짐작되는데, 핵심 내용은 이렇다. 우리나라의 소득동질혼 현상은 주요 선진국에 비하여 심하지 않다. 그리고 1인 가구나 한부모 가정의 비율 또한 상대적으로 낮다. 바로 이러한 소득 계층별 혼인의 양상과 가구구성의 특징은 우리나라의 낮은 가구소득 불평등을 설명하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먼저 소득 불평등을 기준으로 개인소득과 가구소득의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월 1000만 원을 버는 남성이 전업주부를 희망하는 여성과 결혼하여 두 자녀를 낳았다고 하자. 이 경우 남편의 소득은 1000만 원이고 나머지 셋의 소득은 없다. 개인을 기준으로 할 때 매우 불평등한 소득분배 구조를 가지게 된다. 똑같은 상황에서 가구를 단위로 하면 남편의 소득을 가족 전체가 공유하게 되므로 소득분배는 크게 개선된다. 이 사례를 사회 전체로 확대할 때 어느 국가든지 가구소득의 불평등은 개인소득의 그것보다 더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소득분배는 통상 개인이 아닌 가구단위로 분석한다. 개인소득보다는 가구소득이 사람들의 경제적 위치나 후생수준을 더 잘 반영하기 때문이다. 재벌 집 막내아들은 자기 소득이 없어도 재벌인 이치와 같다.

개인소득의 분배가 불평등한 상황에서, 소득 수준에 따라 끼리끼리 결혼하는 소득동질혼 경향이 강하면 소득분배는 더욱 악화할 것이다. 반대로, 고소득 남성이 저소득 또는 미취업 여성과, 중위소득 여성이 자신보다 낮은 소득의 남성과 결혼하는 것이 빈번하다면 한 가구 안에서 소득을 공유하는 효과가 커져 소득 불평등이 완화된다. 가구의 구성도 중요하다. 전체 가구에서 1인 가구나 한부모 가구가 많으면 소득을 공유하는 효과가 작아져 가구소득 불평등이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연구자들은 우리나라의 동질혼과 가구구성이 주요 선진국과 같다면, 가구소득 불평등이 10∼15% 더 악화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제법 괜찮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필자는 그 연구에 중요한 결함이 있으며 우리의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본다. 우선 연구 자체의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원래 동질혼은 소득이나 학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하는 것을 말한다. 소득동질혼을 판단하려면 결혼 시점에서 부부 각각의 개인소득을 측정해야 하지만, 그 연구에서는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했다. 결혼 당시에는 맞벌이로 비슷한 소득수준을 가졌더라도 출산 및 육아 과정에서 여성이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다면 현재 기준으로는 소득동질혼이 성립되지 않는다. 인과관계의 선후가 맞지 않은 분석인 셈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소득동질혼’이 덜 나타나는 진짜 이유에 대한 통찰이 없다는 점이다. 현시점에서의 표면적 이유는 남성이 일하고 여성이 살림을 맡는, 이른바 ‘남성 가장’ 모형이 여전히 만연하기 때문이다. 요즘 여성이 전업주부를 전제로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흔치 않다. 여성이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 직장을 잡는 것이 보편적인 상황에서, 결혼 후 전업주부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 빈번하다는 의미이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과정에서 부부 중 어느 한쪽이 직장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대개는 여성이 집에 남는 선택을 한다. 남성의 임금이 더 높아 가계의 경제운용 면에서 합리적이고, 여성이 살림과 육아를 맡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사회적 인식도 작용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 정도 버느니 차라리 집에서 알뜰살뜰 살림하며 아이를 정성껏 키우겠다’는 다짐이 사실 노동시장의 성차별 구조를 반영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앞선 연구는 맞벌이 가구의 경우에도 우리나라의 소득동질혼 정도가 주요국에 비해 더 낮다는 결과를 덧붙인다. 남편과 아내의 개인소득 격차가 크다는 의미인데, 바꾸어 말하면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성별 임금격차와 고용형태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다. 여성은 같은 일을 해도 남성보다 임금이 낮고, 비정규직이나 파트타임으로 일할 가능성이 남성보다 더 크다. 이러한 노동시장에서의 성불평등을 간과한 채, 고소득 남성과 전업주부 여성으로 구성된 가구가 많아서 소득 불평등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고 분석하는 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초저출산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직접적 위험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이다. 출산율을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올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여성고용률을 올려 생산인구 감소에 대응해야 한다. 여성이 결혼, 출산, 육아라는 생애 전환기를 거치면서도 굳건히 경력을 유지할 수 있으려면, 노동시장의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남성과 여성의 임금 차이가 크지 않고 육아휴직이 비교적 자유로운 공공부문에서 여성의 경력단절이 덜하다는 힌트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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