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론으로 세상 읽기] 자극적인 ‘문제’와 마법 같은 ‘솔루션의 상담프로그램’

입력 2023-01-05 05:00 수정 2023-02-01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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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영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교수

얼마 전, 특정 교양 프로그램이 일반인 출연자의 의붓딸 성추행을 의심케 하는 장면을 여과 없이 방영하여 큰 논란이 되었다. 논란이 확산되자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은 의도와 달리 재가공 및 유통됨을 사과했고, 솔루션을 제시했던 전문가는 해당 방송분에 본인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음을 알리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문제는 발생했으나 책임지려는 사람도 없고, 솔루션을 강조하지만 정작 본인들이 일으킨 문제에는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어느 때부터인지, 유사한 형식을 가진 심리·정신 상담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중에서는 위 프로그램과 같이 교양의 범주에서 방영이 되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사실 이러한 프로그램의 구성이나 편집은 일반적인 교양 프로그램의 그것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흔히 말하는 관찰예능에 가까운 프로그램 구성은 오히려 스포츠 게임의 중계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문제를 가진 출연자들은 주로 육아나 부부관계 등 가족의 일상을 담은 녹화된 영상으로 노출되고, 패널로 스튜디오 녹화에 참여한 이들은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듯이 그 영상을 보면서 반응(reaction)한다. 특히 패널들은 놀랍거나 자극적인 장면이 있으며 스포츠 중계의 다시보기(replay)를 보듯 영상을 돌려보고, 스포츠 관중처럼 리액션을 하고 스포츠 캐스터처럼 멘트를 던진다. 상대적으로 절제된, 하지만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함께 영상을 지켜보던 전문가는 스포츠 해설가와 같이 상황을 분석하고, 그에 대해 솔루션을 던진다. 열혈 시청자들은, 마치 풀리지 않는 축구 경기를 보는 이들이 유명 해설가의 한마디 전략 조언에 공감하듯, “그러니까! 내말이!”를 쏟아내면서 전문가의 솔루션에 공감할 것이다.

문제는 스포츠 중계 형식의 구성 자체라기보다, 출연자들의 문제를 노출하는 방식이 상당히 자극적으로 바뀌어 가고, 전문가가 제시해 주는 솔루션이 일종의 마법처럼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유사한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시청률과 이슈 경쟁이 심화하면서, 조금 더 자극적인 소재로 이목을 끌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스포츠 경기를 더 박진감 넘치고 흥미롭게 만들기 위하여 스타 플레이어나 악동 플레이어를 출전시키려 하는 것처럼, 유명한 연예인이나 심각한 문제를 가진 일반인을 출연시켜 프로그램을 광고하고, 심지어 관찰 카메라에 담긴 폭력적인 영상까지 여과 없이 노출하기도 한다. 이렇게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고 출연자의 문제에 대한 공감을 유발한 후 전문가의 솔루션이 제시되는데, 이 솔루션이라는 것이 마치 모든 것을 빠르고 쉽게 정상으로 돌려줄 것과 같은 마법의 주문처럼 그려지곤 한다.

인간은 상당히 복잡하고 다면적인 존재이고, 그러한 인간 간의 관계는 그보다 더 복잡할 수밖에 없다. 고작 며칠 또는 몇 주간의 관찰 영상을 보는 것으로 문제의 원인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을뿐더러, 몇 문장으로 요약되는 솔루션을 제시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문제의 핵심을 몇 가지로 꼽아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명쾌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되고 있는 것은 상당히 염려스럽다. 많은 대중들 앞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으로 점찍어져야 하는 출연자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답을 명쾌하게 제시해 주어야 하는 전문가는 과연 이러한 구성에 동의를 하는 것일까?

예능이든 교양이든 심리·정신 상담을 통해 전문가의 답을 제시해 주고자 하는 목적을 가졌다면, 문제를 가진 이들이 방송을 통해 낙인이 찍히도록 하지는 않아야 한다. 문제의 발생을 촬영 및 방관하고, 원인을 지적한 후 마법과 같은 솔루션을 제공해 주고 나면, 출연자들은 문제를 가진 이들로 낙인이 찍히고, 그 이후 문제 해결에 실패하면 솔루션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비난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복잡하고 다면적인 인간관계의 문제에 전문적이고 진지하게 접근하자면, 오랜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처방하고 지속적으로 상황을 지켜보며 추가 조치를 취해 나가는 방식을 따라야 하겠지만, 시청률 상승과 이슈 만들기를 목적으로 하는 이상 그러한 따분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출연자들은 광대가 되고, 전문가들은 마법사가 되는 이 서커스의 결말이 비극적이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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