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유러피언 드림] 27. 몰려드는 난민, 분열되는 유럽

난민 유입 느는데 경제난은 깊어지고…흔들리는 ‘연대’의 정신

“난민 신청자들을 받아준 프랑스에 감사하다.” “이탈리아가 신뢰를 깼다.”

지난달 11일. 프랑스는 234명(어린이 57명 포함)이 탄 오션바이킹(Oecan Viking)호가 남부 툴롱 항에 정박하도록 허용했다. 난민을 지원하는 민간단체 ‘지중해SOS’가 운영하는 이 선박은 10월 말부터 3주간 이탈리아 해안을 떠돌았다. 이탈리아가 정박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4명의 환자가 발생하자 프랑스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자국으로 오게 했다. 그러자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골칫거리를 해결해준 프랑스 정부에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이탈리아 정부의 난민선 정박 거부는 관련 국제법을 위반했다며 신뢰를 깼다고 맹비난했다.

우파연립 伊 정부, 佛과 난민수용 갈등

지난 10월 말 이탈리아에서는 우파 연립정부가 출범했다. 26%의 최고 지지율을 얻은 극우 이탈리아형제당의 조르자 멜로니가 총리가 됐고 반이민을 앞세운 동맹과 전진이탈리아당이 연정에 참여했다. 멜로니 총리는 취임 열흘 후 브뤼셀을 방문해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만나는 등 친유럽적 행보를 보이려 했다. 하지만 난민선의 정박 거부로 이탈리아는 프랑스는 물론이고 EU와도 갈등을 겪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의 추산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개월간 9만 명이 넘는 난민 신청자들이 지중해를 통해 들어 왔다(유엔난민기구(UNHCR)는 이보다 1만 명 정도가 적다고 본다. 통계 참조). 일부는 비좁은 보트에, 일부는 오션바이킹호처럼 난민선에 구조돼 해안을 밟았다. 2016년 18만1000명의 난민 신청자가 들어온 후 최고치다. 코로나19로 정부 재정을 푼 데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물가 폭등으로 이탈리아는 경제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이민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연립정부가 들어섰다. 이탈리아 정부는 EU에 난민 배분에 관한 정책을 요청했지만 허사였다.

2015년 하반기 시리아 내전으로 독일은 100만 명에 가까운 중동 난민 신청자를 수용했다. 난민 신청자의 경우 첫 입국한 EU 회원국에서 수용과 난민 신청 등 모든 절차를 맡도록 하는 더블린협약이 있다. 이를 개정하려고 했으나 회원국 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진전이 없다. 이탈리아나 그리스처럼 지중해 인근의 회원국에 난민 신청자들이 집중적으로 들어왔다. 회원국들이 합의해 난민 신청자 일부를 자발적으로 수용하곤 했다. 설령 이런 합의가 있어도 일부 난민 신청자들은 그들이 가고 싶은 회원국과 위에서 결정된 회원국이 다르기에 이동을 거부하는 예도 종종 있다.

페루지아외국어대의 세칠리아 소틸로타 교수는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프랑스와의 갈등은 신연립정부가 친EU정책을 표방했지만 경험이 없음을 드러냈다”며 “이민 문제를 정치화해 지지층 규합을 시도한다”고 평가했다. EU의 난민 문제는 그러나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獨·폴란드, 우크라 피란민 지원 어려움

UNHCR의 지난달 29일 통계에 따르면 789만여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전쟁을 피해 유럽의 여러 나라로 피란을 갔다. 이번 전쟁에서 ‘유럽’의 국경선이 된 폴란드에서 152만여 명이 임시보호조치를 받고 있다. 그 다음이 독일로 102만1000여 명이다. 반면에 이탈리아는 16만500여 명, 영국은 14만6000여 명, 프랑스는 11만8900여 명이 체류 중이다. 임시보호조치는 최소 1년간 난민의 지위를 인정해주며 연장이 가능하다. 이 조치를 인정받은 난민들은 그 체류 국가에서 건강보험 등 각종 복지혜택을 받으며 일도 할 수 있고, 어린이의 경우 학교에 가서 공부할 수 있다. 독일은 전쟁 난민 한 명당 지원액을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위 각종 지원을 감안하면 한 명에 연간 1만 달러, 100만 명의 난민이면 연간 100억 달러, 13조 원이 추가로 들어간다. 대구시의 2022년 한 해 예산이 10조 원이 조금 넘는다.

이처럼 전쟁 난민이 폭증하는 바람에 폴란드와 독일 등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바르샤바에서는 난민 수용에 필요한 주택이 부족하다. 독일 베를린 시민들은 우크라이나 피란민이 몰려오기 전에도 주택난을 겪고 있었다. 시 외곽의 폐쇄된 테겔공항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현재 1만 명이 수용돼 있다. 제대로 된 거주지를 마련해줘야 하는데 이 역시 어렵다. 특히 2015년에 입국한 난민까지 합하면 200만 명 넘는 난민이 독일로 들어왔다. 베를린 시뿐만 아니라 나머지 15개 주에서도 난민 수용에 힘들어한다. 작년 말 대구시 인구가 241만여 명 정도다. 대구시 인구 비슷한 난민이 독일로 들어와 적응 중이다.

전쟁 장기화…난민 논쟁 수면 위로

우크라이나 난민 중 상당수가 여성과 어린이다. 같은 유럽인이고 푸틴의 침략 전쟁이라는 범죄 앞에서 유럽 각국은 인도주의 정신을 발휘해 피란민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전쟁이 최소 1년 넘게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전쟁 난민의 보호와 관련된 논쟁은 이제 서서히 표면으로 나올 듯하다. 폴란드와 독일처럼 난민을 과중하게 받은 EU 회원국들은 드러내고 요구하지는 못하지만 다른 회원국들의 연대를 바란다. 하지만 난민 관련 연대가 EU 회원국 간에 실행된 적이 거의 없다. 설령 있더라도 최대 몇천 명 정도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전망에 따르면 내년도 독일은 -0.3% 성장률의 경기침체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EU 최대 경제대국 독일은 대러시아 가스와 원유 의존도가 EU 평균보다 10%포인트 정도 높았다. 러시아산 가스와 원유 공급이 거의 끊어지면서 물가는 폭등했고 제조업 강국 독일의 경제는 바닥을 칠 듯하다. 러시아산 원유를 정제하던 독일 북부의 슈베트 시에서는 10월부터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시위가 종종 열렸다. 이들은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 금지해 일자리를 잃었다며 이를 규탄했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도 요구했다. 유사한 시위가 독일 제2의 도시 라이프치히에서도 매주 월요일에 열린다. 급진좌파와 우파 등 매우 다양한 정치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우크라이나 전쟁 지속을 반대한다. 이들은 가스와 전기요금 폭등과 같은 서민 생활의 고통을 거론하며 “독일이 미국과 나토의 이익만을 위해 봉사 중”이라고 비판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지난달 22일 그리스 크레타섬 팔레오초라에서 이주자 500여 명을 태우고 지중해를 건너온 보트에서 난민들이 구조되어 뭍으로 내리고 있다. 중동 분쟁국가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난민의 유입에 유럽연합(EU) 국가들은 경제난과 각기 다른 이해관계로 인해 단일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팔레오초라(그리스)/AFP연합뉴스

경제난 심화, 내년 겨울은 더 추울텐테

일단 올겨울은 그런대로 지나갈 수 있다. 독일을 비롯한 EU 회원국들이 주머니를 풀어 폭등한 가스와 전기 요금을 일부 보전해줬다. 그리고 가스 비축도 서둘러 올 겨울나기는 가능하다. 그러나 전쟁이 내년 겨울까지 지속될 경우, 정부 주머니는 더 얇아질 터이고 폭등하는 물가만큼 임금은 오르지 않아 서민의 고통은 가중될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2023년 전망에서 내년 겨울이 유럽에 훨씬 더 고통이 될 거라고 내다봤다.

우크라이나군이 크름 반도 인근의 헤르손 시를 탈환해 승기를 잡으며 러시아가 점령한 나머지 3개 주에 대대적인 공세를 개시했다. 러시아는 미리 후퇴해 참호를 파고 장기전에 대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1차 세계대전처럼 장기 소모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푸틴은 2024년 봄에 시작될 미국 대선전을 지켜보며 미국과 유럽의 분열을 기다릴 것으로 전략가들은 내다본다.

피란민에 물가 폭등에, EU 회원국들의 연대는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시민들의 인내심도 점차 한계에 다다를 듯하다. 이제 불확실성이 국제정치경제의 뉴노멀이 됐다. 시계가 극도로 불투명해지는데 내년도 우리 경제도 타격이 자못 크다. 위기 극복에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리더십을 기대해본다.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셜록 홈즈 다시 읽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