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철학 없는 한국의 저출산 대책

입력 2022-10-17 05:00 수정 2023-03-15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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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전, 이투데이 창간 12주년 특별 기획 시리즈 주제로 ‘아기 발자국을 늘려라’를 선정하고 기사 계획을 세우던 당시 태스크포스(TF) 팀의 최대 난제(?)는 북유럽 출장을 누가 가는가였다.

출산·보육 정책의 교본으로 불리는 북유럽 국가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저출산 대책을 제안하는 부분이라 사실상 이번 기획의 핵심이었다.

사회 복지제도에 관심이 많던 미혼 기자가 일찌감치 손을 들었지만, 나머지 한자리가 좀체 채워지지 않았다.

팀원 모두가 가고 싶은 의욕은 있었으나 ‘현실’이 문제였다.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을 두고 열흘 넘게 집을 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근처 아이를 봐줄 친정이 있고, 10살 난 초등학생 자녀를 둔 선임 기자가 총대를 멨다.

그날 회의는 “아들 하원 때문에 빨리 가야 한다”라는 한 팀원의 인사와 함께 “○○ 이야기들을 기사에 담아내자”란 다짐으로 마무리했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우리나라 저출산 원인은 명확했다.

기혼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절반 이상이 회사서 육아휴직이나 유연 근무를 쓰는 데 눈치를 봤다. 10명 중 7명은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부모나 친인척 손을 빌렸다.

인터뷰를 한 40대 부부는 먹고살기가 빠듯해 둘째 계획을 접었고, 지방에 사는 20대 엄마는 어린이집이 폐원해 아이 맡길 곳이 없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날 회의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이 저출산의 핵심이었다.

‘낳는 일’에만 치우친 우리와 달리 북유럽은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도 행복해야 한다’는 가정 철학에서 접근했다. 출산과 보육뿐 아니라 양성평등·고용·노후에 관한 모든 정책에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철학을 녹여냈다. 이러한 정책들은 가정, 기업, 정부 간의 완벽한 ‘트라이앵글 밸런스’를 기반으로 움직였다.

이런 이야기를 안고 정부의 계획을 듣기 위해 찾아갔다. 거기서 알았다. 왜 우리가 15년간 380조 원을 쏟아붓고도 ‘OECD 꼴찌(합계 출산율 0.81명)’ 오명을 안게 됐는지.

한 정책 담당자는 ‘저출산 대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북유럽 정책 좋은 거 다 알죠. 그런데 다 들여올 수 있나요.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해야죠”라고 말했다. 철학도 없었다. 잇단 정책 실패로 당장 30년 뒤 역성장에 들어설 위기 앞에서 ‘부모의 현실’을 외면한 채, ‘노동의 현실’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었다.

‘잃어버린 30년’을 겪는 이웃 나라 일본도 최근 ‘3시 퇴근’과 같은 노동 혁신을 통해 출산율(고학력 여성) 반등에 성공했다. 한국의 저출산은 더 이상 밀려날 데가 없다. ‘현실’을 따지기엔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인구 절벽이 너무 아찔하다. 국가 소멸을 막을 골든타임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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