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한국 은행산업 官治와 자율 사이

입력 2022-09-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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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우리나라 은행들은 경기가 좋아도 나빠도 돈을 잘 번다. 일반 대기업처럼 글로벌 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 않아도 국내에서 ‘이자 따먹기’로 안정된 수익을 얻는다. 시중 금리가 높든 낮든 확실히 보장되는 예금과 대출금리의 차이(豫貸마진)가 수익의 원천이다.

은행도 민간기업이다. 상업적 주식회사로서 경영 성과를 높여 이익을 내고 주주에 환원해야 한다. 그러나 은행을 ‘금융회사’라기보다는 ‘기관’으로 부른다. 금융의 공공성 때문이다. 아무나 은행업을 영위할 수 없고 정부가 진입을 엄격히 규제하는 면허산업이다. 실물경제와 금융 및 자산시장에 자금을 공급하고 조절해야 하는 은행의 공적 역할은 막중하다. 자금공급 시장도 몇몇 대형 시중은행이 과점(寡占)하는 구조다. 은행이 잘못돼 부실화하면 개별 은행을 넘어 경제 전반에 연쇄적인 충격을 가져오는 시스템 위기로 이어진다. 과거 외환위기 때 은행 파산을 막기 위해 수십조 원의 국민 혈세를 공적자금으로 쏟아부어야 했다. 은행이 정부의 통제를 벗어날 수 없는 이유다. 이 때문에 늘 관치(官治) 금융의 시비가 인다.

관치는 금융감독원을 통해 이뤄진다. 금감원은 금융 건전성 확보,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소비자 보호를 위해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 업무를 수행한다. 정부는 정책 목적을 위해 쉽게 은행을 조종한다. 새로운 정권 출범 때마다 되풀이되는, 빚 못 갚는 사람들의 채무를 탕감해주는 조치가 대표적이다.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해온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부실 채무자들에 재기의 기회와 신용회복의 디딤돌을 마련해 준다는 명분이다. 시장원칙에 어긋나고 상식적이지 않으며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에 대한 논란이 많다. 그럼에도 이런 정책이 집행되고 은행들은 손실을 감수하면서 뒤따라 갈 수밖에 없다.

지난달부터는 은행별 예대금리 차이가 공개되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늘어난 가계 빚에 높아진 대출금리로 서민들의 파산과 연체 위험이 갈수록 커지는데, 은행들만 안정된 마진으로 막대한 이익을 올리는 것이 공정하고 합당하냐는 비판이 많다. 국내 은행들이 올 상반기에 거둔 이자수익은 26조2000억 원, KB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시중은행만 15조 원 이상이다. 작년보다 20% 이상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다. 기준금리의 잇따른 인상으로 대출금리가 가파르게 뛰면서 서민들은 이자부담 급증에 따른 고통이 가중되고 있지만 예·적금금리는 미적미적 찔끔 오른다. 국민들은 몹시 불만스럽다.

아무튼 은행들이 당국의 압박에 서둘러 대출금리를 낮추면서 예대마진을 축소하는 움직임이다. 은행들의 볼멘소리도 많다. 대출금리나 자금조달 비용에 해당하는 수신금리는 민감한 원가정보로 영업비밀에 해당하는데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한다고 주장한다. 급증하는 가계부채 위험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대출총량 제한으로 자금 수요보다 공급보다 축소됐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정부의 자영업자 등에 대한 정책금융 지원의 부담과 신용위험이 커지면서 대출금리 상승을 부추긴 측면도 크다는 것이다.

관치와의 단절을 요구하고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은행들의 목소리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당위성이 큰 해묵은 과제이기도 하다. 관치의 폐해 또한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주어진 자율이 은행의 공공성과 국민 신뢰를 높였고, 한국 금융산업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해왔는지는 의문이다. 언제나 다양한 금융기법과 서비스 개발, 소비자 편익을 위한 규제의 개혁을 말한다. 그러나 지금껏 우리 은행들의 실력은 글로벌 투자은행들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이다.

은행의 공적 역할이 충족된다면 관치는 불필요하다. 은행들이 관치를 자초한 측면도 많다. 관치를 탓하기 전에 그들이 금융기관으로서 제대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오히려 자율을 빌미로 모럴해저드에 빠져든 건 아닌지 먼저 되돌아봐야 할 일이다. 땅 짚고 헤엄치기식 이자장사를 통해 올린 막대한 수익으로 해마다 거액의 성과급 잔치를 벌인다. 명예퇴직자들에게도 일반 사기업이 상상하기 어려운 보너스를 안겨 준다.

은행 ‘귀족 노조’들이 주축인 전국금융산업노조는 오는 16일부터 모든 은행업무를 멈추겠다는 총파업을 예고했다. 올해 임금 6.1% 인상과 주 36시간 근무, 영업점 폐쇄 중단을 요구한다. 어느 것 하나 공감하기 어렵다. 작년 시중은행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1억 원이 넘는다. 여기에 올해 공무원 임금인상률(1.4%)의 몇 배나 웃도는 임금을 더 달라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작년부터 영업시간이 1시간씩 단축됐는데, 거리두기가 해제됐음에도 소비자들의 불편과 고통은 알 바 없이 아예 이를 고착화하고 금요일에는 격주로 쉬겠다는 것이다. ‘일 적게 하고 돈은 많이 받고 밥그릇을 확실히 챙기겠다’는 얘기다. 참으로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기 짝이 없는 심각한 모럴해저드다. kunny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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