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의 미-중 신냉전, 대결과 공존 사이] ⑤ 글로벌 디지털 패권을 둘러싼 충돌

입력 2022-05-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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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실크로드 對 디지털 무역공동체, 경제 넘어 정치외교적 체제연대 경쟁

역대 정부 중 가장 빨리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게 되는 윤석열 정부에 중국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대통령 취임 10일 만에 한미정상회담이 열린다는 것은 그만큼 한미 양국 모두 대내외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미국이 더 급한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에서 개최되는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 정상회의와 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먼저 한국을 방문한다. 물론 미국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한미정상회담 이슈 ‘경제안보’ 핵심

40년 만에 들이닥친 최악의 인플레이션 상황과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공급망 붕괴 등 대내외적인 리스크가 첩첩산중인 와중에 인도태평양 지역 재건의 명분으로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크게 북한의 무력도발 대응, 경제안보, 국제현안 등 3대 이슈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중 북한 미사일과 핵실험을 제외한 나머지 경제안보와 국제현안 이슈는 모두 중국과 귀결된다. 그중에서 핵심은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통한 글로벌 공급망 협력 강화와 향후 디지털 기술경제협력의 경제안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그중에서 디지털 안보이슈를 둘러싼 향후 미·중 간 충돌에 주목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DSR)를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국가들을 결집해 디지털 무역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디지털 무역공동체는 인터넷, 정보통신기술(ICT) 등 전자적 수단에 의한 상품·서비스·데이터의 교역 관련 규정과 방침을 규정한 협정이라고 볼 수 있다. 참여 동맹국 간 정보의 자유로운 교류 및 인공지능(AI) 표준 등을 통해 중국의 급부상하는 디지털 경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을 뺀 AI, 데이터 등 미래 디지털 산업의 동맹 간 결속력 강화와 미국 주도의 미래 기술표준을 선점하겠다는 의도이다. 2020년 6월 싱가포르, 뉴질랜드, 칠레 3개국이 이미 체결한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을 기반으로 한국, 일본, 호주 등 주변 동맹국들을 참여시켜 중국의 디지털 굴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왜 DEPA에 들어와!”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부터 ‘바이 아메리카’를 외치며 미국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약속하고 제조업 중심의 무역협정 가입 및 출범에 매우 조심스러운 접근을 해왔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 시절 탈퇴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일본 주도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으로 바뀌었고 중국까지 CPTPP 가입 신청을 한 상태에서 TPP로의 회귀는 결코 쉽지 않은 상태이다. 반면 중국은 거의 모든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급한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 DEPA는 미국 제조업을 지키면서 중국의 디지털 패권을 견제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묘안인 셈이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2021년 10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화상연설에서 중국은 디지털경제 분야에서의 국제협력을 희망한다고 언급하며 DEPA 가입을 공식화했다. 미국의 기존 DEPA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디지털 무역공동체 설립 구상을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중국이 왜 DEPA에 들어와!’ 바이든 행정부의 속내일 수도 있다. 향후 디지털 주권과 패권을 놓고 미·중 간 줄다리기가 본격화할 것이다.

이미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의 주요 관광지에서 알리페이와 위챗페이가 통용되고 있고, 2000년 6월 개통된 베이두우(北斗) 위치정보시스템(GPS)과 화웨이 마린이 구축한 해저 케이블망을 통해 중국은 개발도상국의 디지털 인프라를 지원하고 있다.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가 매우 빠르게 일대일로 연선국가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에 대해 미국은 디지털 패권이 중국에 넘어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5일 프랑스 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본부에서 열린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 가입절차 개시 공식선언식’에 참석한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맨 오른쪽)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디지털경제에 대응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DEPA에 지난해 10월 중국이 가입 의사를 밝히면서 미·중 간 디지털경제 패권경쟁이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제공 산업통상자원부
▲지난해 10월 5일 프랑스 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본부에서 열린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 가입절차 개시 공식선언식’에 참석한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맨 오른쪽)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디지털경제에 대응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DEPA에 지난해 10월 중국이 가입 의사를 밝히면서 미·중 간 디지털경제 패권경쟁이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제공 산업통상자원부

中, 일대일로 연계 줄 세우기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는 2013년 일대일로 사업 발표 2년 후인 2015년부터 본격화되었다. 핵심은 중국의 ICT 기술과 디지털 표준을 일대일로 연선국가의 디지털 생태계에 통합시킨다는 전략으로 일종의 ‘디지털 글로벌화’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5세대 이동통신(5G)망, AI, 클라우드 컴퓨팅, 모바일 결제, 보안감시 등 차세대 첨단기술과 디지털 공급망을 일대일로에 참여한 국가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2022년 3월 기준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에 이미 참여하고 있는 19개국과 참여 의사를 밝힌 7개국을 합하면 총 26개국이다. 그러나 중국과 직간접적인 경제관계를 가지고 있는 100여 개 국가를 포함하면 130개 국가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 사업에 참여하는 국가가 그만큼 많을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측일 것이다. 동남아 및 아프리카 국가를 중심으로 중동, 유럽까지 폭넓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참여국은 중국 디지털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 디지털 실크로드는 미국의 대중국 기술포위망을 뚫기 위한 중장기적인 포석이다.

美 동맹국도 상업적 이유로 참여

미국외교협회는 아프리카 및 동남아 등 개발도상국 대상 5G 중심의 ICT산업에 대한 중국의 투자 규모가 국제기구 및 미국과 유럽의 주요 선진국들의 투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고 분석하고 있다. 결국 위안화 경제의 그물망에 많은 개도국 및 후진국들이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아프리카, 중동 및 동유럽, 중남미,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의 경우 무선전화 네트워크와 광대역 5G 인터넷망을 확장하기 위해 가성비 좋은 중국의 디지털 통신 네트워크 망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국인 영국, 한국, 폴란드, 아랍에미리트(UAE) 등 군사안보적으로 중요한 국가들도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참여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미국과 안보적인 협력만큼이나 중국과의 상업적 이익 보존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를 단순히 디지털 생태계 구축이 아니라 군사안보 차원으로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20년 11월 중국 광시자치구 난닝에서 개최된 제17회 중국-아세안 엑스포 주제는 ‘함께 만드는 일대일로, 함께 성장하는 디지털 경제’였다. 중국과 아세안 디지털 경제협력의 원년으로 삼고 클라우드 엑스포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과 아세안 간 디지털 경제협력 확대를 위해 ‘중국-아세안 디지털 포트’ 설립을 제안하면 “무역통합을 위해 구축된 디지털 플랫폼의 협력방식을 더욱 다양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미·중 사이 ‘안보·경제’ 딜레마

미국은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가 단순히 첨단기술 수출과 디지털 생태계 구축을 넘어 미국에 대항하는 정치외교적 체제 연대와 통합으로 보고 있다. 또한 국제사회의 많은 국가들이 중국의 디지털 인프라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할수록 중국은 중화 디지털 블록을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중국이 향후 디지털 인프라를 레버리지로 활용해 글로벌 디지털 패권을 쥐게 될 경우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입지가 매우 좁아질 수 있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는 2021년 2월 ‘중국 디지털 실크로드; 국가 IT 인프라 통합 및 서방 국방안보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보고서는 5개 조사대상 국가(한국, 인도네시아, 이스라엘, UAE, 폴란드) 중 이스라엘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서 중국 제품과 서비스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이는 향후 안보 및 디지털 산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결국 미·중 간 벌어지고 있는 디지털 헤게모니 전쟁에서 안보와 경제라는 이름으로 양국으로부터 한국은 더 많은 것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대사관 경제통상관 및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을 5년간 역임했다. 또한 미국 듀크대학에서 교환교수로 미중관계를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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