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법률-이혼] 7개월 별거하면 이혼할 수 있나요

입력 2022-04-0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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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혼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가 있었다. 기사에 소개된 사례는 이렇다. 30대 A 씨는 결혼 후 남편이 자신에게 학력을 '대학 졸업'으로 속인 사실을 알게 됐다. 변변한 직업도 없던 남편은 결혼 후에도 휴대전화 이성 교제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다른 여성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A 씨는 2021년 4월 친정으로 간 후 이혼 소송을 냈다. 남편은 가정을 유지하고 싶다며 이혼을 반대했다. 이 사건에서 서울가정법원은 지난해 12월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혼인이 파탄에 이르렀다”며 이혼 판결을 내렸는데, 파탄의 근거 중 하나로 '별거 기간이 7개월에 이르고, 개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점'을 들었다. 이 기사는 '기존에는 이 정도의 별거 기간으로 혼인 파탄이 인정된 경우는 좀처럼 없었다'고 하면서, 파격적인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 기사만으로 사건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이 판결이 파격적인 판결인지는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이혼을 하려면 반드시 별거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별거하지 않아도 혼인 파탄이 인정돼 이혼하는 경우들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7개월보다 짧은 기간 별거를 하고 이혼을 하는 경우도 종종 봤다. 다만 이 경우는 별거뿐만 아니라 다른 사유로 혼인 파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위 기사에서 소개한 사건도 별거뿐만 아니라 학력을 속이고, 결혼 후에도 다른 여성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정들 때문에 별거가 아니더라도 혼인 파탄이 인정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단지 별거를 오래 했다는 사정만으로 이혼할 수 있을까. 부부 사이에 갈등이 있어 별거를 시작했지만, 한쪽이 이혼을 원하지 않으면 소송을 해서 이혼 사유를 입증해야 한다. 별거 외에 이혼 사유라고 할 만한 것은 딱히 없거나,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 이혼을 청구하는 경우에 많이 문제가 된다. 현재 우리나라 판례상 별다른 이혼 사유 없이, 단지 별거 기간이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이혼할 수는 없다. 이는 우리나라가 이혼에 관해 ‘유책주의’라는 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인데, 아무리 별거 기간이 오래되었더라도 혼인 파탄에 책임 있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이혼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유책주의라는 제도는 다른 나라들도 다 채택하고 있는 제도는 아니고, 혼인 파탄에 책임 여부와 상관없이 실질적으로 혼인이 파탄에 이르렀다면 이혼을 인정해 주는 나라들도 많다. 다만 우리나라 대법원도, 외도를 한 남편이 이혼 소송을 제기했는데, 별거 기간이 25년 정도 된 사건에서는 이혼을 인정하였다.

필자가 이혼 사건을 하면서 답답한 점은, 우리나라 대법원의 입장은 유책주의라고 하지만, 실제 하급심에서는 파탄주의에 가깝게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필자가 수행했던 사건 중 부인이 집을 나가 남편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있었는데, 남편이 이혼하지 않겠다고 했다. 필자는 남편 측을 맡아 변호했는데, 1, 2, 3심 모두 승소해 이혼을 막아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되고 1년 후에 부인이 다시 이혼 소송을 제기했는데, 두 번째 이혼 소송에서는 1심에서 이혼을 인정했다. 대법원에서 이혼 사유가 없다고 판결한 이후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사이에 다른 새로운 이혼 사유가 생긴 것도 아닌 상황에서, 두 번째 이혼 사건 1심 법원은 이혼을 인정하니, 필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었다. 필자가 수행한 다른 사건에서는 부인이 남편에게 폭행을 당했다면서 이혼 소송을 제기했고, 남편은 폭행을 한 적이 없고 이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필자는 남편을 맡아 변호했는데, 이 사건 재판부는 실제 폭행이 있었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고, 부인이 같이 살지 않겠다고 하는데 굳이 이혼을 안 해야겠냐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결국, 이 사건에서도 1심 재판부는 이혼을 인정했다.

이처럼 대법원과 하급심 실무의 경향이 다르다 보니 실무를 하는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난감한 경우가 많다. 대법원의 태도가 그러하니 승산이 없다고 해야 하는지, 그래도 하급심은 다른 경향을 보이니 일단 소송을 해보자고 해야 하는지 명확한 의견을 주기도 어렵고, 의뢰인들도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

필자는 혼인 파탄 책임 유무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실질적으로 혼인 관계의 회복 가능성이 없다면 이혼을 인정해 주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이혼 소송에서 패소하더라도 패소한 당사자가 다시 부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고 생각하기도 힘들다.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부부 관계를 형식적으로만 유지하게 시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뜻하지 않게 이혼을 당하게 된 당사자의 보호가 문제 될 수 있지만, 재산분할이나 부양료 같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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