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상담소] 밀려오는 봄

입력 2022-03-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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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우 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사협회 회장·지역사회전환시설 우리마을 시설장

수원시 분당선 역 근처에 ‘우리마을’이라는 지역사회전환시설이 있다. 이 건물 옥상에는 작은 정원이 있다. 옥상정원 그 아래 네 개 층에는 다소 까다로운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마음 아픈 분들이 정신과 병원을 퇴원하여, 이곳에서 몇 달간 머물며 자립 생활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미선 씨는 한 달 전 ‘우리마을’로 입소하였다.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를 혼자서 키웠는데, 수개월 전 중학생 아들이 사고를 쳐서 병원에 누워 있다. 그리고 동거하던 남자친구는 수천만 원의 도박 빚을 미선 씨에게 떠안기고 잠적했다. 미선 씨는 입소하면서 계속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같은 방의 동료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며칠 전에는 동료의 머리채를 붙잡고 싸움을 벌여 미선 씨와 면담을 하였다. 미선 씨가 TV에서 청소년 범죄 보도를 보면서 긴장되어 중얼거렸는데 동료들이 자신을 비난했다는 것이다. 미선 씨는 뉴스를 보는 중에 아들이 병원에서 신음하는 소리와 남자친구가 술 먹고 욕하는 소리를 들었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고 한다. 미선 씨의 불안은 환청을 만들고 그 환청은 혼자서 중얼거림으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미선 씨의 지나온 시간과 현재 상황을 보면 분명 불안에 시달릴 만하였고, 그로 인하여 빚어진 불편을 동료들과 선생님은 이해하고 기다려 주기로 하였다.

어제는 봄을 맞아 ‘우리마을’ 식구들이 근처 화훼농장으로 쇼핑을 가서 화분을 하나씩 사 왔다. 미선 씨는 클라키아 꽃 화분을 골라왔다. 붉게 피어오른 클라키아 화분이 옥상정원으로 올라오니 노랗게 핀 산수유 꽃이 반갑다는 듯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쪽에는 지난겨울 퇴소한 재영 씨가 오줌을 누었던 인동초가 새싹을 삐죽삐죽 내뱉고 있었다. 저쪽에도 마른 풀 더미 사이로 튤립, 히아신스, 프리지어가 파란 새싹을 본격적으로 내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들은 딱딱한 땅속에서, 둔탁해 말라붙은 나무껍질을 뚫고 마침내 터져 나왔다. 봄의 새싹은 낯선 세상을 조심스레 더듬으며 부끄러운 듯 나오는 게 아니었다. 꽁꽁 얼어붙었다가 봄볕에 녹아내린 삶의 충동을 더는 참을 수 없어 솟구치듯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오늘은 옥상정원에 촉촉한 단비가 내린다. 미선 씨 마음에 꼭꼭 웅크리고 있던 삶의 충동이 이내 밀려 나와 봄이 주는 축복에 젖게 되길 바란다.

황정우 지역사회전환시설 우리마을 시설장·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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