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아프기도 어려운 이들

입력 2022-01-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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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현 누가광명의원 가정의학과 원장

2장의 사진만이 있었다. 보통 유방암 검진을 위한 방사선 촬영은 좌우 두 장씩 네 장을 찍는데 10년 전 유방암으로 우측을 전절제한 환자의 올해 검진 촬영에는 좌측 두 장의 사진만 올라와 있었다. 아픈 사연이 묻어 있는 2장의 사진 속에 동그랗지만 삐쭉삐쭉하며 선명한 음영이 보였다. 남아 있는 좌측 유방에 암이 또 생긴 것이다. 서둘러 초음파를 하고 연이어 조직검사까지 마쳤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환자에게 좌측에 유방암이 또 생겼다고 어렵게 말씀을 드렸다. 빨리 수술을 받으셔야 한다고도 말씀드렸는데 근처 떡집을 하는 환자는 표정의 변화도 없이 설 지나고 큰 병원에 가보겠다고 한다. 지금부터 설까지 줄기차게 일해야 대목을 맞을 수 있는데 이 상황에 병원은 언감생심이라는 표정이었다.

몇 년 전에도 그런 환자가 있었다. “유방암입니다, 어서 큰 병원에 가셔서, 수술을 받으셔야 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수술하고 다음 날 퇴원할 수 있느냐고 환자는 물었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환자는 아이들 학비 때문에 바로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중에 놀라서 찾아온 대학생 딸에게 엄마의 말을 전해주었더니 딸은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나는 잠시 주저했다. 생명보다 돈 버는 것이 중요하냐고 야단을 쳐야 하는지, 아니면 환자에게는 먹고사는 것이 급박한 상황에서 유방암이라는 말이 흐릿하게 들렸던 건지, 자기가 일을 멈추면 힘겨울 가족 누군가가 떠오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차피 바로는 수술이 안 돼서 수술 전 검사를 위해서라도 대학병원을 찾으라고 말씀드렸다. 그날 나는 참 부끄러웠다. 살려면 암 수술을 늦춰야 하고, 살기 위해서는 죽을 수 있는 병을 다음 날로, 다음 주로, 그다음 달로 미뤄야 하는 상황 속에 있는 환자들에게 “건강이 최고입니다”라고 말하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곧 있으면 설이다.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에 어떤 집에서는 웃음소리가 피어나고 행복이 넘치지만 어떤 집은 말 못 할 아픔으로 무거운 분위기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내 환자도 그럴 것이다. 그녀가 10년 전에 찾아온 병마를 이겨냈듯이 이번 어려움도 이겨내고 내년 설엔 온 가족이 모여 더없이 행복한 설 명절을 보내길 기원해 본다.

조석현 누가광명의원 가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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