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지금] 기시다와 아베의 노골적 대결

입력 2021-12-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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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 유지(세종대 대우교수, 정치학 전공)

최근 일본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보다 많은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12월 1일 아베 전 총리는 대만 국책연구원이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신시대의 일본-대만관계’라는 제목으로 기조연설을 했다. 화상회의 형식으로 열린 이 심포지엄에서 아베 전 총리는 “대만 유사시는 일본 유사시이며 미·일 동맹 유사시”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아베 전 총리의 이 발언에 중국 외교부의 왕원빈 부대변인은 “공공연히 허튼소리를 했다. 대만은 중국의 신성한 영토. 중국 인민의 한계선에 도전하면 반드시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릴 것”이라고 매우 강한 어조로 반발했다. 중국 측의 반발이 심해도 아베 전 총리는 기시다 현 총리가 중국에 대해 강경 자세를 취해줄 것을 거듭 촉구했다.

아베 전 총리와 그가 지지하는 극우 여성 정치인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정조회장이 8일 자민당 의원연맹 ‘보수단결의 모임’회동에 참석했다. 둘은 이 모임의 고문이다. 여기서 둘은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 보이콧을 기시다 총리가 조기에 결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아베-다카이치 연합은 자민당 내의 극우세력, 재야의 극우 세력을 규합하여 새로운 세력화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움직임에 압박을 받은 기시다 총리는 중국 동계 올림픽에 대한 사실상의 외교 보이콧을 결정했다. 그러나 기시다 스타일로 ‘외교 보이콧’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고 관료는 보내지 않는 대신 올림픽 관계자들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아베 전 총리는 26일 한 TV 정치경제 프로그램에 출연해 기시다 정권이 자신의 경제정책 ‘아베노믹스’를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헌법개정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기시다 정권이 내거는 ‘성장과 분배’에 의한 경제정책 ‘새로운 자본주의’와 중국에 대한 외교 자세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베 전 총리는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해서 “사회주의적이라고 인식되면 시장도 안 좋게 반응한다. 성장을 외면한다는 생각을 시장 쪽에서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전직 총리가 현직 총리에게 이렇게까지 공개적으로 충고한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평론가라면 몰라도 같은 당 정치인이 현직 총리를 직접 비판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현재 재정정책과 관련해 자민당 내에는 기시다 총리 직할로 ‘재정건전화추진본부’가 있는데 아베 전 총리가 최고고문인 ‘재정정책검토본부’도 병존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7일, 재정건전화추진본부 회의에서 재정 재건에 대해 “확실히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이런 기시다 총리의 재정 건전화 정책은 아소 다로 전 재무상의 노선이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곤궁한 국민에 대한 대규모 재정 투입이라는 기시다 총리 자신의 공약과는 약간 어긋나 보인다. 한편 아베 전 총리는 경기를 회복시키고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재정 투입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며 반대 의견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아베 전 총리는 기시다 총리에게 이것저것 주문하는 듯한 발언을 여러 차례 이어가고 있다. 총리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이 이런 행동을 취한다는 것은 일본 국민의 눈으로 보아도 이상하다. 현재 일본에서는 마치 총리가 두 명 있는 것 같은 착각을 국민이 하고 있다. 한마디로 아베 전 총리가 자신의 존재감 과시에 기를 쓰는 모양새다.

아베 전 총리는 재직 당시 일본의 GDP를 600조 엔(약 6196조 원)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그런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 핵심 통계인 후생노동성의 ‘매월 근로 통계’나 국토교통성의 ‘건설공사 수주 동태 통계’의 부풀리기나 이중 계상이 횡행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었다. 아베노믹스의 성장 수치가 실은 가짜였다는 의미다. 그걸 지금도 사실이었다고 우기는 사람은 아베 전 총리밖에 없다.

헌정 사상 최장 정권을 이끌었던 전직 총리라는 위엄도 저버리고 아베 전 총리가 발언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기시다 총리가 아베 봉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베 전 총리는 자신의 측근 하기우다 고이치를 관방장관으로, 다카이치를 자민당 간사장으로 앉히고 싶었다. 그것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할 생각이었지만 그런 아베 전 총리의 인사안은 11월 이미 기시다 총리에게 거절당했다.

현재 기시다 총리는 원래 아베 전 총리와 가까운 사이였던 아소 현 자민당 부총재와 합동으로 기시다파와 아소파를 합쳐 아베파(96명)를 능가하는 110명 규모의 대파벌을 만들 계획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기시다 총리 자신이 자민당 내 권력의 중심에 서서 경제를 중심으로 한 중도적인 옛날의 자민당 정책으로 돌아가겠다는 구상을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 일본의 자민당 내에서는 아베 전 총리를 지지하는 극우파 라인과 기시다 총리가 이끄는 중도 온건파 라인의 대결이 사실상 노골적으로 진행되는 셈이다. 일본의 한 석간지는 최근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기시다 총리가 아베 정치와는 다른 방향을 제시하면 내각 지지율이 상승한다. 이런 경향이 현저하므로 기시다 총리로서는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 기시다 총리가 헌법개정과 적 기지 공격능력 보유에 의욕을 보이는 것은 아베 전 총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을 의식한 행동일 뿐이다. 기시다 총리가 아베 전 총리와 거리두기를 하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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