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가난이 커리어가 되는 세상

입력 2021-11-15 05:00

가난이 슬픈 것은 더 좋은 음식을 먹지 못하고, 더 좋은 옷을 입지 못하고, 더 좋은 집에서 살지 못해서가 아니다. 가난은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도 가난한 이들은 부자보다 더 많은 비용을 써야 한다. 우리나라의 고급 아파트를 대표하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타워팰리스보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3.3㎡(1평)당 임대료가 더 비싸다고 한다.

서교동 대학가 인근에 살아야 하는 젊은이들이 강남 타워팰리스에 사는 이들보다 낼 수 있는 보증금 규모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산다고 해도 주거 환경이 더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가난에는 이자까지 붙는단다. 한 미국 가수의 말처럼 치약, 칫솔을 살 돈이 없다면 내년에는 임플란트 비용을 청구받을 것이고, 새 매트리스를 살 돈이 없다면 내년에는 척추 수술을 받게 된다. 건강검진을 받지 못하면 내년에는 3기 암 치료비를 내게 될 것이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긴 하나, 덕지덕지 이자가 붙은 가난은 실제 사람을 옭아맨다. 벗어나기 힘든 가난은 비참하다.

그런데 가난이 추억이 되고, 심지어 커리어(경력)가 되는 곳이 있다. 정치판이다. 그간 역대 대통령 당선자 중 ‘가난’을 커리어로 내세우지 않은 민선 대통령은 ‘앤쵸비 프린스’로 불렸던 김영삼 대통령 정도일 것이다.

정치판에서는 부(富)가 되레 약점이 되기도 한다. 수돗물 보급률이 10% 정도밖에 안 된 시절에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셨다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그랬고, 고시원을 방문한 뒤 세상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는 정몽준 전 서울시장 후보가 그랬다.

이번 20대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가난을 ‘무기’로 들고나온 후보가 있다. 자신의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웹툰으로 알리고, 부유했던 타 후보의 어린 시절 사진과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 사진을 비교까지 한다. 물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중학교조차 다니지 못하고 12세 때부터 공장에 들어가 소년공으로 일하다가 왼팔 부상으로 평생 6급 장애인이 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이력이 인간 승리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가난을 표심 잡기 위한 감성팔이에 이용할 것인가. 자신의 대선 꿈을 위해 가난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이, 현실의 가난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다른 누군가가 나보다 부유하다고 해서 그것을 악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빈부는 선과 악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MZ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고 한다. 이들에게 가난은 극복해야 할 고난이나 시련이 아니다. 가난이 꿈을 이루기 위해 밟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성공 신화의 양념이 될 수 없다. 대선 후보로서 더 정밀하고, 더 공정하게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고민이 필요할 때이다.

이는 비단 한 후보에게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계층 상승의 길이 막히고, 양극화가 심해진 현재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가야 할 대선 후보들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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