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국민 힐링 시대를 맞이하면서

입력 2021-10-08 05:00

김재수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필자는 베이비부머 첫 세대이다. 이들은 대부분 은퇴했거나 조만간 은퇴를 앞두고 있다. 이들의 공통적인 세 가지 불만이 있다. 첫째는 정부나 국가에 대한 불만이 많다. 식사나 술자리나 앉으면 온통 정부 비판 일색이다. 둘째는 청춘을 바쳐 일해 온 과거 직장 후배들에 대한 불만이 많다. 선배들을 존경하지 않고 고마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직장 선후배들의 경조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축의금·부의금을 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셋째는 자기 가족에 대한 불만도 많다. 가장으로서 어렵고 힘들게 살아 왔는데 가족들이 자신이 살아 온 과거를 알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만이 아니라 청소년, 대학생, 직장인, 기업인, 은퇴자 등 공통적으로 불만이 가득하다. 껑충 뛴 세금 고지서는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은퇴한 월급 생활자의 수입은 뻔한데 가만히 있는 집에 세금이 엄청나게 올랐다. 돈을 빌려서 세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니 정상이 아니다.

국민 불만을 왕창 증폭시킨 것이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방역 대책이다. 코로나 상황이 2년 가까이 지속되니 불만과 스트레스는 정부 비판으로 이어진다. 방역 행정에 대한 비판은 한둘이 아니다. 방역 지침이 들쭉날쭉하고 말이 안 되는 것도 많다. 매일 언론에 나와 확진자 숫자나 발표하고, 국민에게 인내와 희생을 요구한 것 외에 정부가 제대로 한 것이 무엇이냐는 비판이다. 걱정과 불만은 스트레스 증대로 이어진다. 무능한 방역행정에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다. 어느 정신과 의사는 최근 우울증이 대폭 늘어났고 국민 모두에게 위로와 힐링이 필요하다고 한다. 재난지원금을 줄 것이 아니라 힐링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필자가 농업공무원 교육원장을 할 때이다. 직원들의 근무의욕이 떨어지고 나태해져 정신 무장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전 직원을 인천 실미도에 소재하는 해병대 훈련원에 입소시켰다. 체력단련, 산악 행군, 야간 극기훈련 등을 통해 심신을 단련했다. 입소하기 전에는 불평이 많았으나 마치고 나올 때에는 떨어진 체력도 회복되고 나태해진 정신도 다잡았다. 힘들고 어려울 때 생각나는 해병대 훈련 행사였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의 상황은 훈련이나 교육으로 치유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도 있다. 농촌 진흥청에서 지난해 ‘농업으로 국민을 힐링하자’는 취지의 법을 제정했다. ‘치유농업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약칭 치유농업법)을 제정해 올해 3월부터 시행 중이다. 치유농업을 통해 국민을 위로하고 힐링시켜 주는 것이다. 치유농업은 치유(healing)와 농업(agriculture)이 합쳐진 개념이다. 영어로는 애그로 힐링(agro-healing)이라고 한다. 네덜란드, 영국 등 유럽에서는 그린 케어(green care), 케어 파밍(care farming)이라고도 하며, 최근 중시되는 녹색치유(green care), 사회적 농업(social farming)과도 연관이 깊다. 자연이나 농업을 이용해 건강을 회복한 역사는 오래됐다. 중세 유럽에서는 병원에서 정원을 가꾸거나 소규모 텃밭을 조성해 환자들의 재활에 활용했다. 치유농업 대상도 초기에는 노약자나 장애인, 환자 등을 대상으로 출발했으나 현재는 국민 모두가 대상자이다.

치유농업법은 ‘국민의 건강 회복 및 유지·증진을 도모하기 위하여 이용되는 다양한 농업·농촌 자원의 활용과 이와 관련된 활동을 통해 사회적 또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라고 정의한다. 치유의 대상이나 범위는 다양하고 치유 자원도 여러 가지이다. 원예작물의 재배에서 시작한 식물 치료는 꽃을 재배하거나 식물을 기르면서 정신이나 육체적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다. 곤충을 사육하거나 동물에게 먹이를 주면서 하는 재활 치료는 상당 수준 발전됐다. 음식치유나 문화 활동, 숲을 거닐면서 하는 치유도 다양하다. 치유농업의 효과는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현대 정신의학 및 작업치료의 권위자인 미국의 벤자민 러쉬(Benjamin Rush) 박사는 원예 활동이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역할을 준다고 강조한다. 치유 프로그램의 효과에 대해 농촌진흥청의 연구결과도 그러하다. 고혈압, 당뇨 등 만성 질환자들에게 눈에 띄는 성과가 나타난다. 인슐린 분비기능이 47% 증가했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28% 감소했으며, 허리둘레가 평균 2cm 감소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치유농업은 농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건강 회복을 위한 수단’으로 농업이기에 효과 평가가 어려운 부문도 있다. 국내에서 치유농업의 경제적 효과는 약 3조7000억 원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공공의 건강, 사회통합과 포용, 교육과 훈련, 지역 개발, 심리적 효과, 자존심 고취 등을 포함하면 그 이상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치유농업을 추진하기에 많은 장점이 있다. 치유 자원이 다양하고 접근성이 좋다. 산과 강·하천이 많고 사계절 변화도 뚜렷하다. 누구나 쉽게 숲길을 걷고, 식물을 키우고 동물 먹이를 줄 수 있다. 음식관광이나 문화체험도 쉽게 할 수 있다. 교육농장, 체험농장이 많이 운영되어 치유농장으로 발전하기 좋다. 끝없는 경쟁으로 치닫는 사회, 정치 지도자들의 부조리와 부패, 거대 자본의 횡포, 코로나 19로 국민은 힘들고 지쳐 있다. 몸과 마음이 지친 국민에게 농업과 농촌을 통한 치유는 매우 유용하다. 치유농장 운영을 통한 농촌 소득 증대도 기대된다. 치유 관련 법령을 보완하고 치유 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자. 새 정부의 핵심과제로 치유산업 육성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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