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네로 황제의 도시 재건

입력 2021-09-0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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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건립하려면 각종 시설물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고대 로마는 두 번에 걸쳐 대규모로 도시를 재건했다.

한 번은 BC 390년(혹은 연보 오류로 BC 387년) 갈리아에 살던 세노네스족의 침공으로 도시가 파괴되었을 때였고, 또 한 번은 AD 64년 대화재로 도시가 불길에 휩싸여 잿더미가 된 때였다.

AD 64년 대화재 때 제국은 네로 황제(재위 54~68년)가 통치하고 있었다. 네로라고 하면 무자비하고 패덕한 군주라고만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불탄 로마를 재정비하여 도시 안전과 환경 보존을 도모했는데, 이것은 폭군의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AD 64년 네로 치세 때 로마는 대화재로 14개 행정구 중 3개구가 전소되고 7개구가 반소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아우구스투스가 로마를 벽돌의 도시에서 대리석의 도시로 바꾸었다고 자찬했지만, 바닥과 보는 목조 그대로였고 발화가 시작된 대경기장(Circus Maximus) 하부에는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어 불에 타기 쉬운 상품들이 널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화재가 진압된 후 네로는 잿더미 속에서 도시 재건을 구상했다.

시설물 안전을 위해 2000년 전에 구상한 네로의 도시정비계획을 보면, 정도만 달랐지 놀랍게도 현행 건축법 등에서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규정임을 알 수 있다. 이를 보면 인간의 지혜는 과거의 토대 위에 현재의 지혜가 더해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현재의 발전에 매료되어 과거와는 동떨어졌다고 여기며, 과거의 일들을 경멸하는 것은 매우 그릇된 태도라고 하겠다.

◇ 네로 황제의 시설물 안전 조치

도시 재건을 위한 네로의 계획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되었다.

첫째, '도로 폭은 전보다 넓게 하고 가능한 직선으로 계획한다.' 이는 최근까지 시행되던 토지구획정리사업과 같다.

둘째, '주거용 건축물의 높이는 60보(약 17m) 이하로 건립해야 한다.' 이는 건축법에서 명시한 높이 제한과 같다. 다만 네로는 구조물의 안전을 위해 높이 제한을 정했지만, 요즘은 주로 일조권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건축물의 높이를 제한하고 있다.

셋째, '건축물 사이의 공간은 2.5보(약 70㎝)를 엄수하고 여유가 있으면 더 넓힌다. 또한 각각 다른 건축물의 외벽을 공유하는 것을 금하며 각각 별도의 외벽을 설치해야 한다.' 이는 건축법에서 대지 안의 피난 통로와 공지 규정을 정한 것과 같다.

넷째, '건축물에 사용하는 일정한 주요 구조부는 목재가 아닌 가비이산이나 알바산의 석재를 사용한다. 또한 신축 시에는 현관과 1층을 불연성 재료인 석재로 건립한다.' 이 규정은 건축법에서 건축물의 주요 구조부에 내화구조 또는 불연재료를 사용토록 규정한 것과 같다.

다섯째, '저택의 소유자는 소화용 기구를 비치하고 안뜰 저수조를 설치하여 물을 항상 채워 두어야 한다.' 현행법에서는 재난 관리를 위한 소방 시설을 갖추도록 규정되어 있다. 심지어 네로가 세운 규정 중에는 인술라(‘Insula’는 임대용 공동 주택)에 안뜰을 갖출 것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현행 건축법에서 조경 면적을 확보토록 규정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네로의 패덕을 거침없이 비판했던 냉철한 역사가 타키투스(56~117년 추정, 로마의 정치가·역사가)조차도 도시 재건을 위한 이 조치에 대해 네로가 도시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계획적이고 질서정연하게 도시를 재건했다고 평가했다.

대개 사람들은 나태와 자만이라는 속성 때문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나서야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한다. 하지만 시설물에 대한 안전 점검은 미래의 위험을 미리 막아 준다.

◇ 세월호의 비극을 잊지 말자, 국가안전대진단

흔히 안전 점검을 하자고 하면 “여태껏 그렇게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귀찮게 뭘 그러느냐?”는 식으로 타박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막대한 재산 피해와 비극을 야기하는 안전 사고는 정기적이고 철저한 점검에 의해서만 예방될 수 있다.

2014년 발생한 세월호의 비극을 반복하지 말자는 의지로 매년 2~4월까지 시행되던 국가안전대진단이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8월부터 11월 중 규모를 축소하여 1개월간 실시하는 것으로 행정안전부 지침이 정해졌다.

이에 따라 서울시와 25개 자치구는 추석 명절 다중이용시설 점검과 연계하여 9월에서 10월까지 국가안전대진단을 실시한다.

이번에 시행되는 국가안전대진단도 예년처럼 정부와 지자체 주도로 실시하겠지만 시설 관리자의 적극적이고도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시설물 관리자는 유형별 자율안전점검표를 이용하여 일상생활에서 위험 발생을 미리 차단하고 관리자 스스로 안전에 대한 의식을 일깨워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중에 실시하는 이번 국가안전대진단은,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국가안전대진단을 담당하는 부서가 코로나19 방역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어 업무가 겹쳐져 있다.

그런 점에서 담당 공무원의 업무 부담이 당연히 클 것이라고 예견된다. 힘든 현실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맡은 업무를 충실히 헤쳐 나가는 일선 공무원들에게 힘찬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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