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세상] 이 땅의 모든 아버지를 위해.. 영화 ‘빌리 엘리어트’

입력 2021-09-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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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어려운 환경의 한 소년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여 결국 성취하고 만다는 흔한 이야기이지만, 사실 여기엔 아버지와 아들의 짠 내 나는 사연이 담겨 있다.

때는 1980년대 영국 대처 정부 시기다. 대처 수상은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고강도의 구조조정을 시작하였고 그 여파는 시골 탄광촌까지 미친다. 탄광촌에 사는 11세 소년 빌리(제이비 벨)는 복싱을 배우러 다니다가 우연히 발레 수업을 보고는 묘한 매력을 느낀다. 발레의 동작을 따라도 해본다. 천재 소년의 옆엔 항상 그의 재능을 발견해 주는 훌륭한 선생님이 있는 법. 발레 선생님 윌킨슨(줄리 월터스)은 빌리에게 영국 최고 명문인 로열발레학교의 오디션을 보라고 권유하지만 집안 사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더군다나 여자나 하는 발레라니. 완고하고 보수적인 아버지(게리 루이스)는 그 꼴을 도저히 볼 수 없었다. 결사 반대하는 아버지 몰래 연습장에서 신나게 춤을 추고 있던 빌리는 불쑥 체육관에 찾아온 아버지와 맞닥뜨리게 된다. 빌리는 그의 진심을 담아 춤을 보여준다. 발레 공연이라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는 춤을 추며 행복해하는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한다.

이제부터는 아버지 몫이다. 총파업을 하는 중에도 아버지는 아들의 레슨비를 벌기 위해 어두운 탄광 안으로 들어갔다. 동료들의 조롱과 질타에도 아랑곳없다. 입학 오디션에서 빌리는 최선을 다한다. 심사위원이 “넌 발레를 왜 하니?”라고 묻는다. 빌리는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한마디 한마디를 진심을 담아 내뱉는다. “그냥 기분이 좋아요, 마치 새가 된 것처럼요.”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개인의 질곡을 절묘하게 이야기로 배합한 명작이며, 다양한 장르로 변주되고 있다.

오랜 친구를 최근 잃었다. 급작스런 죽음이다. 평생을 시민운동에 정열을 불태웠고 전날까지도 한 시민단체의 수장이었다. 언젠가 아들이 발레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조금 당황했다. 이 친구 역시 발레 공연을 그때까지 단 한 편도 보지 않았었다.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친구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힘을 다해 뒷바라지한 걸로 알고 있다. 발레 최고 명문학교에 들어간 아들은 엊그제 장례식 추도사에서 사랑하고 존경했던 아빠였다며 울음으로 고백했다. 그때 나는 이 영화가 미치도록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보면서 많이 울었다. 잘 가라 친구야.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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