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쌀 한 포대 반

입력 2021-09-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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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

모녀가 코로나 예방접종을 맞으러 왔다. 부부는 둘 다 고혈압으로 10년 이상 우리 병원에 다니고 있고,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진료를 받으러 오는 단골, 그러니까 20년 이상 인연을 이어오는, 환자와 의사라기보다 이웃과 같은 사이다.

예진을 하면서 특별히 아픈 데가 없냐고 물으니 괜찮다면서 “원장님, 애가 요즘 부쩍 피곤해하고 종아리가 당기고, 발목이 아프다고 하네요”라고 한다. “그래요? 언제부터 그랬어요?” “최근 들어서 그런 거 같아요.” “희원아, 한쪽이 그러니? 양쪽이 그러니?” “양쪽 다요.” “그럼 아플 때 절뚝거리게 되니?” “아니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밤에 잘 때는 어때?” “밤에는 괜찮은 거 같아요.”

종아리와 발목을 꾹꾹 누르며 “이러면 어때? 아프니?” “안 아파요.” “어머니, 이상 없어요. 괜찮습니다.” “그럼 왜 그럴까요? 젊은 애가.” “아무래도 체중이 많이 늘어 보이는데….” 애는 “…” 엄마가 “맞아요. 최근에 많이 늘었어요.” “다리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니라 체중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한 번 재볼까요?” “안 돼요. 어떻게 아가씨에게 체중을 재라고 하세요?” “아가씨 이 전에 나한테는 환자거든.” “못해요.”

한참 동안 옥신각신을 하다가 겨우 체중을 쟀다. 나, 엄마, 희원이 다 같이. “어때요? 체중계가 말하고 있죠? 저는 완전 표준, 희원이랑 엄마는 비만.” “먹는 것도 없는데 왜 이런지 모르겠네요.” “미리 말하는데 물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이라 우기기 없기입니다.”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엄마, 세상에 그런 체질은 없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먹고 필요 이하로 움직여서 그런 겁니다. 다른 이유는 없어요.”

두 사람은 웃기만 한다. “희원이는 표준 체중에 비해 15㎏, 그러니까 쌀 한 포대 반, 엄마는 쌀 두 포대를 지고 있는 셈이거든요. 마트에서 쌀을 그만큼 사서 집에 들고 갈 수 있어요? 못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하루 종일 그러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힘들지요.” 사실 이런 말도 단골이니 하지 자칫 기분이 나쁠 수 있어 조심스럽다. 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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