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완의 복지플랫폼 ] 안전하게 일할 권리

입력 2021-08-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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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안타까운 산업재해 소식이 끊이지 않는 중에, 올해 1월 26일 ‘중대재해 처벌에 관한 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의 실질적 내용 상당수가 시행령으로 위임된 상황에서 7월 12일 시행령 입법예고가 이루어졌고 8월 23일까지 의견을 받는 중에 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누구도 찬성하지 못하는 법이 생겨난 배경을 돌아본다. 2012년 5월 25일 성수역에서 방음벽 공사를 하던 하청 근로자 사망, 2013년 1월 19일 지하철 2호선 성수역 10-3 스크린도어 센서를 정비하던 37세 심모씨 사망, 2015년 8월 29일 강남역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던 29세 조모씨 사망, 2016년 5월 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19세 김모씨 사망. 동일한 구조의 중대재해가 반복되면서 재해 방지를 위한 ‘책임의 부재’가 원인임이 공론화되기 시작하던 중에, 2018년 12월 10일 입사 3개월 된 하청계약 노동자 김용균 씨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컨베이어 벨트를 수리하다가 사망한 일이 발생했다. 2021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촉발한 결정적 사건이다. 대형재해 사건이 특정한 노동자 개인의 위법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기업 내 위험관리시스템의 부재, 안전불감 조직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보고, 사업주의 책임과 이에 따른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법제화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왜 기업에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게 되었을까. 외주화는 현대에 만연한 일터 풍경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위험의 외주화가 별다른 제재 없이 비용 절감과 안전 책임 전가라는 일거양득을 취하는 기제가 되었다. 부족한 인력과 쏟아지는 업무량 속에서 계약된 업무지침을 지키려면 현장 근로자가 어떻게 안전을 포기하고 일해야 하는지는 누구의 관심사도 아니었다. 이처럼 ‘제재 없는 위험의 외주화’의 모순에 대한 반감이 기업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모든 것이 외주화의 탓은 아닐지라도, 외주화될 때 사고위험이 높아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전문지식이 필요한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업무를 위탁받은 하청사업주는 대체로 영세하고, 하도급된 업무가 수행되는 원청사업장은 자신의 사업장이 아니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작업환경을 개선할 여지도 적다. 원청사업주의 정규직 근로자와 비교할 때 사내하도급 근로자가 업무로 인한 산업재해의 위험성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전달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외주된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을 위험 때문에 안전 위험이 무시되는 위험한 일터의 위험한 작업관행에 맞서지 못한다. 예컨대 근로자는 위험 작업시 규정된 2인1조에 필요한 인력을 누구에게 요구해야 할까. 원청 근로자라고 해서 결코 안전한 것도 아니다. 복잡한 작업장 고용구조는 위험을 증가시킨다. 한 사업장에 원청 노동자, 하청업체 노동자, 단기계약업체 노동자, 물량팀 노동자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가 출입하고 각기 다른 지시 체계를 따르게 되면 현장 소통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영국의 기업살인법처럼 강력한 처벌 패러다임으로 산재 문제에 접근하는 국가도 있지만, 강력한 처벌법 없이도 산업안전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고 있는 산업안전 선진국들도 적지 않다. 스웨덴에서는 근로자의 안전이 곧 생산성이라는 기업의 철저한 마인드가 비결이다. 이들에게 안전시설 투자는 곧 생산성에 대한 투자로 여겨진다. 독일에서는 노사협력이 비결이다. 근로자의 공동참여를 통해 현장밀착형으로 세밀하고 촘촘한 예방 시스템을 구축,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일터의 안전성을 어떻게 보장해야 할까. 정부는 2020년 1월 16일, 30여 년 만에 비로소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면 개정했다. 지난 7월에는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정책 수립과 산재예방 감독 집행을 담당하는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출범했다. 중화학공업 중심에서 서비스업으로 산업구조가 바뀌고, 고용 형태는 크게 변화했으며, 기존에 없던 새로운 화학물질과 작업공정이 등장한 지 수십년이 지난 이제야 변화한 현대 일터의 복잡성을 인지하고 비로소 낡은 법을 개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는 모든 행위자가 위험을 줄이고 법을 준수할 구조적 인센티브를 창출하고, 산업안전보건을 위해 노사정이 정례적으로 협의하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민간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확대 동향도 의미가 있다. 안전이 투자자의 관심이 될 때 기업은 반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 자체가 기본적인 근로기준 위반으로 점철된 일터의 모습도 바뀌어야 한다. 안전하지 않은 기계나 설비를 사용하고, 안전하지 않은 방법으로 작업하며, 부족한 인력으로 일하는 크고 작은 관행을 방치해 둔 우리의 작은 무책임과 무감증도 돌아봐야 한다. 일자리를 잃을 일상적 위험이 내재한 불안정 고용 상태의 근로자가 조직적 침해와 잘못된 관행에 대해 어떻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할 것인가는 가장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처벌 없이도 안전한 사회가 오기를 희망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산재는 결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인재다. 오늘도 일터로 향하는 모든 이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고 무사히 귀가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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