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답기 위해 '레드북' 봅니다

입력 2021-07-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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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떠나 모두에게 적용될 '나다운 것'…오늘날 안나에게 응원을

▲안나 역의 배우 차지연(오른쪽)과 브라운 역의 배우 송원근. (사진=아떼오드)
▲안나 역의 배우 차지연(오른쪽)과 브라운 역의 배우 송원근. (사진=아떼오드)

일거리를 찾는 주인공 안나에게 가게 사장은 몸을 잘 쓰는지 묻는다. 이에 안나는 "힘이 세다"고 답한다. 남성은 그런 의미로 묻는 게 아니라며 안나의 손을 잡는다. 안나는 희롱하는 것이냐고 물으며 분노해 싸우려 한다. 그러자 그 남성이 말한다. "여자가 왜 이렇게 드세, 진짜."

뮤지컬 '레드북'의 배경은 19세기 영국이다. 당시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에 불과했다. 머리, 어깨, 무릎, 발 등 남녀 모두 가진 신체 부위여도 여자의 것은 언급조차 꺼려지던 시대다. 여성은 감정을 드러내서도 자신의 욕망을 말해서도 안 된다. 기 세고 헤픈 여자로 낙인 찍히기 때문이다.

안나는 낙인론의 피해자였다. 할머니의 재산을 전해주기 위해 변호사 청년 브라운이 안나를 수소문할 때 사람들은 말도 말라면서 고개를 젓는다. 성희롱을 당해도 감옥에 갇히는 건 안나였다. 바이올렛의 사랑을 떠올린 후 자신만의 로맨스 소설을 쓰는 안나를 보며 사람들은 천박하다고 말한다. 안나의 소설은 포르노로 취급된다. 안나는 말한다. "사람들은 왜 제가 솔직할수록 저를 싫어하죠? 그냥 난데."

브라운은 모두에게 가치가 있다는 걸 알려준다. 브라운 역시 그 시절, 영국 신사답게 보수적이었다. 차별이 없는 게 신사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라고 그와 그의 동료들은 등장부터 외친다. 브라운은 성(性)을 솔직히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법정에 선 안나에게 법정에서 잠시 잘못을 인정하라고 설득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나는 잘못되지 않은 걸 잘못됐다고 말하는 걸 거부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킨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브라운도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브라운 역의 서경수(왼쪽)과 안나 역의 김세정. (사진=아떼오드)
▲브라운 역의 서경수(왼쪽)과 안나 역의 김세정. (사진=아떼오드)

'레드북'의 인기 넘버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은 가슴을 울린다. '내가 나라는 이유로 지워지고 나라는 이유로 사라지는 티 없이 맑은 시대에 새까만 얼룩을 남겨 나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가사를 통해 '나'를 들여다본다. 성별을 떠나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 나로서 살 권리가 있다.

2018년 '미투'(나도 당했다) 운동이 한국 사회를 덮쳤을 때 초연한 '레드북'을 2021년 다시 볼 수 있어 기쁘다. 재연을 기다린 보람이 있다. 동시에 빅토리아 시대와 요즘 한국 사회를 비교해 본다. 21세기 안나는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안나처럼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될 때까지 떠드는 이들을 응원한다.

'안나' 역은 차지연, 아이비, 김세정이 연기한다. '브라운' 역은 송원근, 서경수, 아이돌 그룹 SF9의 인성이 맡았다. 로렐라이 학회 '로렐라이 언덕'의 고문인 여장 남자 '로렐라이' 역은 홍우진, 정상윤, 조풍래가 분한다. '도로시'와 '브라운' 할머니 '바이올렛' 역은 김국희, 방진의가 열연한다. 8월 22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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