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상담소] “그냥저냥 사는 거”라는 어르신들

입력 2021-06-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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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서울 강서구보건소 사회복지사

얼마 전 동료와 함께 지역 내 한 임대아파트 단지를 방문한 적이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70대의 어르신 한 분을 만났는데 우리를 살피더니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다. 이 질문을 듣는 순간, 나는 “오호” 하고 쾌재를 불렀다. 이곳 임대아파트의 특성상 고령층과 1인 가구가 많다 보니 사회복지사로서 주시하고 있는 문제가 ‘고립과 관계 단절’인데, 우리가 ‘낯선 사람’임을 안다는 것은 적어도 이웃에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반가웠다. 사회적이든 상황적이든 고립을 선택하고 관계의 단절 속에서 살아가고는 있지만 사람에 대한 관심, 이웃에 대한 관심은 갖고 있다는 표현이라 마음 한편이 놓였다.

어르신은 우리가 보건소에서 나왔다고 하니 대뜸 “코로나 예방접종을 안 한 어르신들이 너무 많은데 어떻게 좀 할 수 없느냐?”고 물으셨다. 이게 무슨 말인가? 어르신들은 예방접종을 환영하고 적극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던지라 뜻밖이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수(OECD) 국가 중에서도 65세 인구 독감 예방접종률이 가장 높은 나라 아니던가? 그런데 예방접종을 거부한다니. 어리둥절해 그 이유를 물은 나는 이내 이해가 됐다. “다 살았는데, 살면 얼마나 산다고 예방접종이냐, 그냥 이대로 살다가 죽겠대.” 그냥 사는 쪽을 선택한 그 마음이 충분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머지않아 다가올 나의 노년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요즘 기분은 어떠세요? 사는 건 재미있으세요?” 하고 물으면 어르신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그냥 그래, 맨날 똑같지 뭐”, “재미는 무슨 재미, 그냥저냥 사는 거지.”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가슴이 답답해지고 아파온다. 인생의 휴식기로 가장 큰 홀가분함을 맛볼 수 있는 시기가 노년이라고 하지만 많은 어르신들의 말을 들어보면 사는 낙이 없어서, 삶에 대한 희망이 없어서 모든 것을 놓아버린 체념처럼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나이가 든다고 꿈도 욕망도 약해지거나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는 게 그렇지, 사는 게 별건가” 혹은 “다 그렇게 살아”라는 말들로 노년의 삶을 치부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경제적 활동으로부터 은퇴하고 몸은 쇠약해지고,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고, 노년의 일상이란 게 특별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지금은 100세 시대이지 않은가?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83.3세임을 감안할 때, 젊어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사는 시간 이후 늙고 아프지만 적게는 23년, 많게는 40년을 살아가야 한다. 이 시간 속에 놓인 우리 주변의 많은 어르신들의 삶이 ‘즐기는 삶’이기보다 ‘견디는 삶’인 것 같아 안타깝다. 무념무상의 삶, 우리 모두의 노년의 삶이 ‘마음이 빈 상태’가 아니라 모든 생각을 떠나 ‘마음을 비운 상태’의 평온한 삶이었으면 좋겠다. 이 또한 우리가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이다.

김현주 서울 강서구보건소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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