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의 일, 삶, 배움] 알고리즘 공정사회

입력 2021-06-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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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통상 사람들은 인적자본 투자를 자신의 교육과 훈련에 대한 투자쯤으로 생각한다. 인적자본 투자 행위는 교육 훈련뿐 아니라 결혼, 출산, 죽음, 보건, 의료에 대한 개인의 합리적 선택 행위를 의미한다. 자신의 생명 유지와 삶의 만족 그리고 효용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일종의 생명 정치인 셈이다.

인적자본 투자 행위는 단순히 이기적 경제 행위로만 볼 수도 없다. 오늘날 많은 청년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것은 개인의 삶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이기적 행위이다. 그러나 배우자와 자녀라는 미래의 상대방 인적자본 확충에 기여하지 못하고 생명 유지에도 악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라면 상대방에 대한 이타적 행위로 보아야 한다.

인적자본 투자 행위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문제는 개인의 인적자본 투자 행위와 활용 또는 결과가 일대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공정성의 시비가 나타나는 이유이다.

공정성은 하나의 가치로 정의하기가 매우 어렵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만처럼 좋은 부모 만난 것도 개인의 소유권이니 그 자체를 인정해야 하며 사회적 정의란 없다고 주장하는 그룹이 있다. 반면에 존 롤스처럼 어려운 사람에게 더 많은 분배를 제공하는 것을 공정으로서의 정의라고 말하는 그룹도 있다. 유도의 무제한급 시합처럼 모든 경쟁자가 개인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경쟁하는 것이 진정한 공정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체급별 경쟁과 핸디캡을 인정한 경쟁이 진정한 공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규범과 개인의 욕망과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공정성 문제를 과거에는 사회, 문화, 도덕적 규범에서 해결하였다면 오늘날에는 법에 의해 해결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당초 약속하고 합의된 것에서 벗어날 경우 예외 없는 법의 집행, 상대방을 가리지 않는 엄정한 집행에 의지하게 된다. 최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유력한 두 사람이 내건 슬로건이 ‘공정’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법과 시험, 규칙, 절차처럼 알고리즘화가 손쉬운 기계적, 형식적인 공정성 집행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상대적이고 가치적인 규범의 문제인 공정과 정의를 실정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를 떠나서 공정의 문제를 절차적인 집행의 문제로 단순화하여 알고리즘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알고리즘적 공정 집행이 당장 환호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외와 다양성이 얽혀 있는 세상에서는 언제든지 주장한 사람의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성의 상징인 기회의 공정은 법률, 재원, 제도, 문화인식의 변혁이 동반되어야 가능하다. 장애인, 낙후된 지역, 저소득층 자녀, 소수자 그룹들처럼 본인의 의지와 무관한 사회적 핸디캡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공정한 경쟁은 고사하고 일반인들보다 많은 배려와 지원을 받아야 공정한 기회의 출발선에 설 수 있다.

결과의 공정성은 자신의 노력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받는 것으로 대표되지만 이 경우 어려운 사람한테 더 많이 주는 롤스 식의 공정-소득 재분배, 할당, 적극적 우대조치 등-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알고리즘 공정이 사회통합에 실패하게 되면 기회의 참여 배제, 과정의 무시, 분배의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공정한 사회 건설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요즘 공정성 논의가 또 다른 포퓰리즘으로 흐르는 것은 아닌가 싶다. 공정의 문제를 형식적, 기계적인 알고리즘 방식으로 해결하기보다는 개인들의 생명 유지를 위한 다양한 요구를 조정할 수 있는 공간에 참여할 기회를 더 많이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참여가 정의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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