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응우옌, 응우옌티미피엔’ 산모님

입력 2021-04-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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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미 전북대병원 산부인과 의사

응우옌. 이 이름의 20대 젊은 여성이 응급실 환자목록에 뜨면 나는 자세한 환자 문진이나 진찰 기록이 없어도 우리 과(科) 환자임을 직감한다. 초진 차트를 열어보니, 역시 예상대로 베트남 국적의 산모였다. 응우옌이라는 성은 베트남 인구의 40%가 가지는 성씨로, 아마도 우리나라의 김(金)씨 성쯤 되는 것 같다. 내가 근무하는 전주는 남원이나 정읍 등 다문화가정이 많은 지역과 인접해 있어 외국인 산모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늘 그렇듯 오늘 만난 응우옌, 응우옌티미피엔도 나이 차이가 열 살은 족히 넘게 보이는 아빠뻘 되는 남편 손에 이끌려 어수룩한 모습으로 분만실에 들어왔다. 이런 산모들을 만날 때면 나는 항상 긴장한 채 진료를 시작한다. 일단 한국말을 아예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질출혈이 있는지 배가 아픈지 간단한 증상조차 표현이 어렵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진료비 문제가 자주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그간 산전진찰은 잘 받았는지 임신 전에 아픈 적은 없었는지 묻자, 산모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않냐며 도리어 화를 내는 남편을 보니, 괜한 질문을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진찰을 시작하자 자궁경부는 이미 5㎝가량 열려 있고, 곧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되었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남편과 의지할 친정식구 하나 없이 그녀는 그렇게 낯선 땅, 낯선 병원, 낯선 사람들과 쓸쓸하게 산통을 마주해야 했다. 안쓰러운 마음도 잠시,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여린 몸의 그녀는 비명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몇 시간 만에 3㎏의 예쁜 공주님을 순산하였다. 아이는 엄마의 고통과 외로움에 화답이라도 하듯 엄마를 닮은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엄마 품에 안겼다. 역시 모자(母子)지간의 애틋함이란 만국공통의 감정이다.

우려와 달리 그녀는 그렇게 누구보다 씩씩하게 분만을 끝냈고, 그 과정을 함께한 내게 “땡큐 닥터”라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분만실을 떠났다. ‘과연 응우옌티미피엔이 아기를 잘 키울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다시 한번 들었지만, 엊그제 분만 때처럼 어떤 엄마보다 멋지게 해내 걱정이 또 한번 기우(杞憂)이기를 바란다.

홍유미 전북대병원 산부인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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