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권력이 타락했으니 민심은 분노하는 거다

입력 2021-04-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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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정치는 ‘불가능의 예술’이다. 체코슬로바키아의 40여 년 공산독재를 무너뜨린 ‘벨벳혁명’을 이끈 뒤 1993년부터 2003년까지 자유 체코 대통령을 지낸 바츨라프 하벨의 말이다. 하벨은 현실의 판단과 기준, 관습에서 불가능한 것을 돌파해 가능성으로 만드는 일이 정치로, 개인적 도덕과 양심, 책임의 실천이 그 요체(要諦)라고 강조했다. 정치는 이념의 진영논리일 수 없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행위여서는 더욱 안 된다고 했다. 그가 수십 년 공산체제에 저항하고 절망의 시대와 투쟁한 가치이자, 무혈(無血)의 민주혁명을 이뤄낸 힘이었다.

이 나라 정치하는 사람들은 그걸 ‘무엇이든 해도 되는 지배적 권위’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남녀 성별을 바꾸는 일 말고 정치는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은 오만한 폭력으로 치닫는다. 공동체 행복을 위해 자신을 뽑아준 국민의 열망을 팽개치고 기만과 협잡을 일삼으면서 진실이나 도덕과 거리가 멀어진다.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혐오만 커지는 이유다. 대의민주주의 정치는 유권자들의 기대가 결집된, 경제·사회의 상위 개념으로서 집단선(集團善)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정치는 거꾸로다. 정치인들은 국가 이익과 국민 복지, 경제·사회의 문제에 관심없고, 부여된 정치수단을 개인의 탐욕을 채우는 데 악용한다. 말로는 국민 다수를 팔지만 공익이 무시되며, 권력을 위해 그때그때 유리한 쪽에 붙는 기회주의와 자신에게 이득 될 것 같은 소수와의 야합으로 세금을 엉뚱한 곳에 낭비한다.

정치의 본질은 무엇인가? 공자(孔子) 말씀은 ‘만인이 평등하고 재화가 공평하게 분배되는 대동(大同)사회’였고, 현대의 실증적 정의로는 미국 정치학자 해롤드 라스웰의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갖느냐’를 들 수 있다. 정치가 결국 합리적 배분의 문제라는 얘기는 경제와 다르지 않다.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는 경세제민(經世濟民) 그 자체다. 그래서 정치와 경제는 서로를 포괄하고, 경제는 정치의 전제이며, 경제가 추구하는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이 정치다.

그러나 한국 현실에서 정치와 경제는 정반대의 길로 가는 상극(相剋)이다. 정치는 오직 표를 위해서만 작동하고, 국민 다수의 행복과 공평이 아닌 소수 지지집단에 매달린다. 자원 배분의 우선 순위도 표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제한된 자원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곳에 투입돼야 하는 것이 경제다. 정책의 우선 과제도 사회구성원의 편익과 최대 효용을 창출하기 위한 실용이다.

4·7 보궐선거에서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했다. 정권의 총체적 실정(失政)에 배신당한 국민의 응징이다. 서울의 경우 여당은 자치구 25곳 가운데 24곳의 단체장을 차지하고, 불과 1년 전 총선에서 국회의원 49석 중 41석을 휩쓸었다. 이곳에서 야당이 압도적 표 차이로, 모든 자치구에서 이겼다. 유권자들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드러난다.

지난 4년 국민 삶의 고통만 커진 탓이다. 정권은 거대 국회의석과 사법·행정, 시민사회 등의 전방위 권력을 장악해 하고 싶은 것 다 했지만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실패는 차고 넘친다. ‘일자리 정부’는 최악의 고용참사를 거듭하고 있고, ‘소득주도성장’의 허상은 한국 경제를 후퇴시켰다. 집값 잡겠다며 퍼부은 약탈적 세금제도와 시장에 대한 온갖 억압은 집 없는 이들이 아무리 애써도 내 집을 마련할 수 없게 만드는 절망으로 내몰았다. 국민 희생에 기댄 코로나19의 ‘K 방역’만 자랑하다 백신접종 최후진국으로 떨어졌다. 북한 끌어안기에 그토록 공을 들이는데, 돌아오는 건 입에 담기조차 힘든 모욕과 조롱이다. 안보의 보루인 한미동맹이 삐걱거린 지는 오래다. 이처럼 한결같이 무능했던 정권이 또 있었던가?

국민들이 더 참지 못한 건 권력의 타락이다. 정권이 내세운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스스로 희롱한 데 대한 분노다. 가장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척했던 그들의 드러난 실체는 위선과 부도덕, 불공정이었다. 여기에 국민을 끊임없이 편가르고, 지겹도록 과거 정권과 언론 탓만 하는 뻔뻔함으로 염치마저 잃었다. 공동체의 상식과 규범을 망가뜨리고 한국인의 존엄을 추락시킨 정권의 인물들과 행태를 옮기기에 이 지면이 너무 좁다.

청와대와 여당은 “민심의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성찰하겠다”고 했다. 무엇을 반성하는지, 잘못한 게 뭔지 알고나 있는지 모를 일이고 믿음도 없다. 진정 성찰해야 할 것은 실천도덕의 구현이자, 경세제민으로서 정치의 본질이다. 하벨이 통찰한 ‘정치의 인간화’이고, 그것이 정의다. 5년 만에 겨우 선거 한번 이겼다고 민심이 자기 편으로 돌아선 것으로 착각하는 야당에 더 절실한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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