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시각] 우리는 탐욕의 사냥꾼이다

입력 2021-01-27 17:35 수정 2021-01-2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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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인문학 저술가

겉보기에 평범한 가정에 입양된 16개월 된 아기가 죽었다. 아기의 전신엔 보랏빛 멍이 들고, 뼈는 골절, 내장은 외부 타격으로 파열됐다. 이는 심한 폭력의 결과다. 양부모는 자기 방어 능력이 없는 아기를 학대한 이유가 육아 스트레스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양부모는 제 안에 악마를 품고 있었다. 방긋방긋 웃던 ‘정인’이의 입양 전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비통해 했다. 한 지방도시에서 모녀가 원룸에서 숨졌다. 경찰이 원룸 문을 열고 들어가 죽은 모녀를 찾아냈다. 사체 두 구는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두 사람이 보름 전쯤 죽은 것으로 추정했다. 어머니는 52세, 딸은 22세였다.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나 자살 정황은 없었다. 스스로 생존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의 고요한 죽음이었다.

충남 태안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깔려 숨졌다. 발전소에 안전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게 사고의 원인이다. 석탄 발전소의 민영화·외주화로 시장에 진입한 민간업체들이 미숙련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쓰면서 비용을 낮추고 이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구조인데, 원청과 하청이 안전 설비로 교체하는 책임을 서로 미루면서 위험 요인을 김용균 씨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떠넘긴 것이다. 산업체에서 위험의 외주화로 일어나는 노동자의 상해나 사망 사건은 해마다 수천 건에 이른다고 한다.

작년 한 해 한국인 사망자는 30만 명을 넘어섰다. 날마다 8백 명쯤 죽는 셈이다. 8백 명의 죽음에 8백 개의 곡절과 사연이 있을 테다. 무명의 죽음들, 허망한 죽음들, 슬픈 죽음들, 억울한 죽음들. 가볍거나 혹은 무거운 이 숱한 죽음들 하나하나는 한 사회가 품은 갖가지 징후들을 드러낸다. 주검들은 침묵의 목소리로 그들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를 증언한다. 어떤 죽음은 막을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러지를 못했다. 우리는 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성에 분노한다. 하지만 그 분노가 식은 뒤 타인의 죽음을 무관심과 방임으로 대하는 사회의 방식에 윤리적 고뇌 없이 동조했다. 우리는 그렇게 잘 먹고 잘 살았다.

불평등의 동학(動學)이 엄존하는 현실에서 사회적 약자의 죽음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이 죽음들 앞에서 분노하고, 무력감과 수치심에 빠진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이 죽음의 무기력한 방관자이자 미필적 고의의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의 사냥터에서 무죄한 죽음을 외면하고 사냥에 전념한다. 영혼을 끌어 모아 아파트를 사들이고, 빚을 내서 주식을 샀다. 우리는 아파트 매매나 주식 투자로 돈을 번 이들의 소문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조바심을 낸다. 우리가 이 투기나 투자 열풍에 휩쓸려 우왕좌왕할 때 사회안전망이 없는 자리에서 최소주의 삶을 이어가던 두 모녀나 청년 노동자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더 나은 세계를 욕망한다. 유토피아는 우리 욕망이 만든 무지개다. 현실은 그 무지개와는 다르게 펼쳐진다. 현실은 투기꾼과 허풍쟁이들, 사악한 인간들이 날뛰고, 위험과 오류로 가득 차 있다. 바이러스 감염증이 퍼져나가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기후 재난이 상습화된 세계를 덮고 있는 것은 불확실성과 유동하는 공포다.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는 딱 두 가지다. 사냥꾼이 되거나 사냥감이 되는 것. 우리는 사냥꾼의 지위를 유지하려고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고 빚을 내서 주식을 사들였다. 사냥꾼의 지위를 잃는 순간 사냥감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신자유시대 도시 정글을 어슬렁거리는 사냥꾼들이 노리는 것은 토끼나 꿩이 아니라 부동산, 주식, 그리고 이익을 창출하는 기회들이다.

21세기의 예언자로 현대사회의 유동성과 인간 조건을 살피고 분석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2017)은 우리는 정원사의 시대를 지나 투기 자본이 국경 없이 넘나드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냥꾼으로 변신한다고 말한다. 정원사의 유토피아가 길의 끝이라면, 사냥꾼의 유토피아는 길 자체다. 정원사는 길의 끝에서 허리를 펴고 한숨을 돌리지만 사냥꾼은 길의 끝에서 패배에 대한 수치심으로 몸을 떤다. 왜 사냥꾼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 수치심을 갖는 것일까? “한술 더 떠서 개인적인 실패를 보여 주는 꼼짝 못할 증거와 완전한 개인의 패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냥꾼들이 사냥을 그만둘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사냥에 참가하지 못하면, 자기만 배제되었다는 수치심과 따라서 (추측컨대) 자기만 능력이 없다는 무력감 등을 느낄 수 있다.”(바우만, ‘모두스 비벤디’, 172쪽)

교육은 계급 재생산의 가장 유력한 도구다. 우리가 어디에 사는가는 학력이나 교양과 똑같이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다. 한국의 부자나 권력자들이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선호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교육의 불평등은 소득의 격차를 낳고, 이것은 계층의 고착화 요인으로 작동한다. 시간, 돈, 전문성을 두루 갖춘 중상류층 부모를 가진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 사이엔 불평등이라는 심연이 존재한다. 두 집단의 아이가 똑같은 성공의 기회를 거머쥘 수 없다는 뜻이다. 자녀 교육에 지출할 시간과 돈, 학맥과 인맥이 더 많은 부모를 둔 상위 계층의 아이들이 하위 계층의 아이들보다 수능 점수가 더 높고 명문대에 갈 확률도 더 높다. “‘자녀의 풍성한 경험을 위한 지출’의 격차”(리처드 리브스, ‘20 VS 80의 사회’, 71쪽)는 아이들이 성장한 뒤 누리는 기회의 창출과 평생 소득에도 큰 차이를 만든다. 중상류층 아이들은 부모의 부와 고학력 같은 상징 자본을 물려받으면서 부모와 같은 계층에 더 쉽게 안착한다. 반면 하위 계층의 아이들은 부모의 가난을 물려받은 채 소득이 낮은 계층에 고착된다. 문제는 이 계층의 고착화 구조 속에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점점 사라진다는 점이다. 부모가 일군 소득, 부, 교육에 의한 사회적 위계가 자식에게 대물림하면서 사회의 불평등은 더 심화되고 굳어지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계층의 고착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불평등은 계층 이동의 경직성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기회와 특권을 소수가 독점할 때, 한 사회 내에서 불평등은 고착되고, 갈등과 위기가 더 커진다. 한국 사회에서 계층의 상향 이동의 엔진은 꺼진 듯이 보인다. 부모 세대가 누리는 고소득 일자리, 비싼 주택, 부(富)와 교육, 사회적 특권이 자식 세대에로 대물림될 때 우리 사회는 불안과 공포가 일렁이는 지옥으로 변한다. 누구의 생명도, 누구의 자산도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다. 내 생명이나 자산 역시 오늘 있지만 내일은 사라질 수 있는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것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광풍 속에서 사회의 양극화는 더 깊어졌다. 정부는 아파트 가격이 뛰자 물량 공급을 늘이거나 조급한 규제 정책을 마구 쏟아냈다. 하지만 시장의 동요를 잠재우지 못했다. 정부의 대응에 부동산 시장은 생물처럼 퍼덕거렸다. 전 국토가 투기장으로 변하는 사이 계층 간 소득 격차가 더 벌어지고, 불평등과 불공정은 더 넓게 퍼졌다. 지금 대한민국은 우리의 탐욕으로 끓는 투기 지옥, 더 정확하게 투기꾼의 유토피아로 변했다. 우리가 타인의 슬픈 죽음들을 등진 채 사냥에 뛰어든 이유는 아무도 사냥을 멈추지 않는 까닭이다. 악마는 이렇게 속삭인다. “최소한 사냥꾼의 대열에 끼어 있도록 노력하라. 그렇지 않으면 사냥감이 될 수밖에 없으니!” 우리는 사냥을 멈추지 못한다. 자기만 배제되는 수치심과 자기만 능력이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탐욕의 사냥꾼에 머무른다면 이 투기 지옥은 더 큰 지옥을 불러들일 것이다.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우리가 사냥의 기회가 아니라 자기 성찰의 시간, 명석한 결단의 마음을 되찾아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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