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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도의 세상 이야기] 11월, 아버지의 이야기

입력 2020-11-24 17:46

서울대 객원교수(전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출근 전 옷매무새를 고치려고 거울 앞에 선다. 오늘 따라 내 얼굴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유난히 어른거린다. 남들은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종종 이야기했지만 이제까지 내 눈에는 오히려 다른 점이 많이 보였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얼굴만 아니라 체형이며 걸음걸이까지 비슷하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닮아간다.

11월은 아버지를 많이 생각나게 한다. 돌아가신 지 이제 2년이다.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꼭 10년을 더 사시다 가셨다. 힘든 시간이었다. 돌아가시기 전 몇 년은 치매가 와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다. 그래도 끝까지 나를 알아보시고 편안한 모습으로 가셨다.

몇 해 전 봄날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야인이 되었다. 오랜만의 휴식이지만 즐길 준비는 완벽하지 않았다. 우선 몸에 약간의 이상 현상들이 있었다. 그동안 긴장감으로 그럭저럭 버텨온 느낌이었지만 쉬게 되니 아픈 곳이 나타났다. 미뤄왔던 얼굴 계통 부분을 조금 손을 봐야 하는 것 같다. 치아 몇 개를 보수하고 이비인후과에 가서 귀를 정밀 검사해 보니 고막에 조그마한 구멍이 났다 한다. 고막 이식 수술을 하고 나니 한 달 정도는 정상적인 외부 활동이 어려웠다. 한쪽 귀를 막아 놓으니 꼭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유명한 ‘귀를 자른 자화상’에 나온 모습이 연상된다. 남 보기에도 조금 이상한 데다 듣기도 편치 않다. 조용히 내 주변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차라리 잘되었다.

이 무렵 아버지는 거의 식사가 어려워 돌아가실 날만 기다려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다. 해 드릴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거의 가수면 상태에서 내가 인사를 하면 조금씩 반응할 뿐이다. 돌아가실 때를 준비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나는 아버지의 유일한 아들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자랐다. 이것이 내가 사회 생활을 하는 데 큰 자산이 되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내 마음속에만 있었다. 이제는 내가 이야기를 해도 아버지께서 받아 주실 형편이 아니다. 그동안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을 모아서 글로 정리해 보기로 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했던 사람이 나이기 때문에 아버지를 가장 잘 알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배운 수채화도 그려 이야기 속에 넣기로 했다. 한 달여 작업을 하니 작은 책자가 완성되었다.

글을 쓰면서 몇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첫째, 아버지에 대해 많이 알 줄 알았는데 정작 그렇지 않다.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내가 철들 무렵부터 순간순간 인상적인 사건들이 있을 때이다. 그리고 그 사실도 내 관점이지 아버지의 생각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내가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후부터는 아버지와 생각을 공유할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 어머니도 돌아가셔서 당시 생각을 확인할 길도 없다. 쓰고 보니 아버지가 아니라 내 이야기가 되었다.

둘째, 어느 정도 글을 쓰다, 이것을 외부인과 공유할 것이냐 잠시 생각했다. 공개한다고 생각하니 글 쓰는 데 부담이 생겼다. 과연 내가 공정하게 객관적으로 쓸 수 있을까?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면서 옛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친척이나 지인들이 추모하는 글을 쓰셨던 것이 생각났다. 요즈음 그런 관습은 거의 사라졌다. 돌아가시면 장례식장에서 장례절차를 마치고 묘소에 안치하기에 바쁘다. 그래서 좀 허무하다 싶어 아버지를 기리는 글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준비하기로 했다. 글을 쓰면서 아버지에 대해 나의 진솔한 심정을 전해 드리고 싶어졌다. 자칫 외부인의 시선을 생각하다 보면 미화하기 십상이다.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나의 심정을 최대한 담아 아버지께만 드리기로 했다.

셋째, 내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외롭게 혼자 결정해야 할 경우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내 생각의 틀을 정말 많이 좌우했다. 이것이 내 가정의 문화가 되었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부지런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졌다. 항상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았으며 어려운 순간에도 비관적이기보다 낙관적이었다. 나도 그 영향을 받아 힘든 상황에서도 침착하며 포기하지 않는 힘과 용기를 갖게 되었다. 사람을 대할 때 부정적인 면보다 가급적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노력한다.

얼마 전 시골에 갔더니 40여 년 전 아버지가 심어 놓은 동백나무가 부쩍 자라 이제는 내 키의 두 배를 넘는다. 당시 나무를 심으면서 “이 나무가 충분히 자라면 땅에 잡초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비록 사회적으로 나보다 덜 성취했을지 몰라도 아버지는 큰 나무이다. 아버지가 들려주신 말씀 덕분에 잡초 걱정하지 않고 지금까지 사회 생활을 큰 무리 없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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