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이름값 하는 이름 짓기

입력 2020-11-04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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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현 퍼셉션 대표

직접 만들거나 선택하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DNA와 태어난 맥락, 멋지게 자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누군가 지어준 이름에 우리는 얼마나 만족할까. 자신과 어울리지 않거나 너무 거창해서 이름값 하기 어렵다고 느낀 적은 없는가.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물건, 서비스, 공간과 장소에도 각각 이름이 있다. 그렇다면, 좋은 이름과 나쁜 이름은 무엇일까?

지난주에 다녀온 서울 명동의 한 장소가 인상적이었다. 1967년 준공된 한국YWCA연합회관을 사회혁신기업이 리모델링해 10월 재개관한 공간으로 조선시대 윤선도 집터, 일제강점기 이회영 선생의 생가터, YWCA위장결혼식 사건 등 오랜 역사의 레이어가 쌓여 있는 곳이다.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팀들은 지나온 시간들 속 사람들의 숨결과 고민들을 존중하고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땅의 기억들 위에 앞으로의 이야기가 채워질 공간이 되기를 바라며 ‘페이지 명동’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Turn the Page, Fill the Page’라는 문구로 새로운 장에서 펼쳐질 담론들과 여러 가치들을 기대하게 하고, ‘Have a good Page’라 건네는 인사로 공간을 경험하는 이들이 매우 쉽고 직관적 단어를 다양한 의미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름 짓는 과정은 늘 어렵지만 공간이나 장소의 이름은 특히 더 그렇다. 수많은 이야기와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과거로부터의 지층과 현재의 맥락, 누가 누구를 위해 어떤 의도와 목적으로 만드는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이름이어야 한다.

이름을 만드는 과정은 말 건네고 싶은 대상에게 잘 알리고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기 위해 지향하는 가치를 어떤 느낌의 언어로 담아내야 할지 고민하는 일이다. 고유성을 담은 의미만큼이나 말맛도 중요하다. 이미 세상에 너무 많은 이름이 존재한다는 팩트는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과 좌절을 함께 주기도 한다. 무조건 생소한 것만이 답이 아닐 수 있다. 새롭다는 것도 상대적이라 누구에게는 낯설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이미 경험한 것일 수 있는 까닭이다. 너무 쉬워도 어려워도 문제인데 익숙한 이름은 신비감이 적거나 이미 아는 다른 것을 연상시킬 수 있고, 난해한 것은 읽고 기억하기도 의미를 쉽게 전달하기도 어렵다.

흔하지 않은 멋진 이름이라도 근거가 없으면 좋은 이름이 되기 어렵다. 부정연상이 없다면 익숙하더라도 무조건 버릴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더 단단히 만들어 긍정효과를 강화시킬 수 있다. 이름의 주인은 깊은 고민에 욕심이 많아지고, 전문가들은 새롭고 창의적인 것에 집착하기도 하며, 관계 없는 이들은 영혼 없는 코멘트를 하기 쉬운 것이 이름 짓는 과정이니 결국 우리의 표현이 어느 누구에게 매력적이고 싶은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간이 지나며 새로운 언어가 계속 생겨나고 개념이 조금씩 확장되거나 변하기도 하므로 현재도 중요하지만 미래 어느 시점에 어떻게 불릴지 상상해 보며 만들어야 한다.

어떤 대상을 경험할 때 우리는 이름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브랜드 자산가치에서 이름이 가장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은, 대상이 정의되고 알려지고 타자와 지속적으로 관계 맺는 것의 출발점이 ‘이름’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름에는 정답도 1등도 없다. 각각에는 기회비용이 있으므로 지금 우리의 선택이 앞으로 자라고 진화하면서 어떤 가능성을 더 펼칠지, 이름의 경험이 얼마나 다양하게 확장될지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한두 명의 전문가에게 일임하기보다 이름을 만들고 키워나갈 다양한 관점의 관계자들이 모두 모여 대안을 발산해보고 약속한 기준에 따라 수렴하는 과정을 반복하기를 권한다. 다양한 경험과 안목을 겸비한 리더라 하더라도 함부로 자신이 옳다 주장할 일이 아니다. 함께 만들고 책임을 다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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