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소름 끼치는 침묵’

입력 2020-10-13 18:52 수정 2020-10-14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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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부국장 겸 산업부장

개천절 차벽에 이어 한글날에는 휴전선 같은 펜스가 광화문을 에워쌌다. 광화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회사 신분증을 보여줘야 했다고 한다. 대학 재학 시절, 내 학교 내가 들어간다는데 학생증을 보여달라는 전경들을 떠올리게 한 장면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방역의 벽’이라는 정부·여당의 입장과 전염병을 반정부 시위 차단의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야당 주장이 대립각을 세웠지만 날카롭지는 않아 보인다.

‘집회결사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외치는 주장은 코로나19 확산 우려에 묻혔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냈어야 할 시민들은 연휴 기간 롤러코스터에서 ‘즐거움의 함성’을,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 ‘득템의 탄성’을 질렀다.

공정하지 못하고 원칙도 없으며 기준조차 모호한 잣대는 ‘방역’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기본권 제한을 시민들에게 소리 없이 체화하도록 만들고 있다. 여기에는 진보로 확연히 기울어진 법원도 한몫했다. 한글날 집회에 대해 법원은 도심 집회를 허용하지 않았다. 물론 코로나19 예방과 확산 방지라는 공익 우선 방침을 내세웠다.

“코로나19가 때와 장소를 가려 반정부 집회를 하면 침투하고, 놀이공원에 가고 쇼핑을 하면 피해 가도록 DNA 조작된 스마트한 병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지만 시민들의 ‘침묵’은 이어진다.

조지 오웰 소설 ‘1984’는 전제군주와 전체주의자의 명령을 구분했다. 이를 차용하자면 집회금지는 이렇게 변주될 수 있다. 전제군주식 집회금지 명령은 ‘너희들은 이렇게 (반정부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였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주의자의 명령은 “너희들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이렇게 해야 한다”였다. 야당은 현 정부가 전염병을 악용해 전체주의자의 모습을 보인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메아리가 없다.

정부는 광화문 집회 금지 명령에서 ‘코로나19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염의 공포에 실어 국민에게 보냈다. 결과는 ‘시민의 침묵’으로 이어졌고 부수적인 순작용도 끌어냈다.

기본권을 제한당하면서도 자신이 마치 방역의 선봉에 서 있는 듯 ‘착한 시민’ 자부심을 부여한 것이다. 어린이대공원, 쇼핑몰에서 앞뒤 사람과 거리두기조차 못한 채 온종일 몸을 부딪쳤는데도 말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만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일종의 ‘회상성 조작’이다.

집회결사의 자유가 시민의 기본권이라면 ‘정부로부터 무리한 규제를 받지 않을 권리’는 기업의 기본권이다.

현 정부가 공정이라는 명목으로 속속 도입하고 있는 규제들은 ‘재벌개혁’이라는 칼을 가리는 휘장에 불과해 보인다. 대표적으로 ‘공정경제 3법’이라는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에는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경영 부담 요인이 담겨 있지만 기업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단체 그늘에서 정치권에 하소연하고 개정안에 부분 수정이라도 하려고 노력 중이다.

재계의 한 임원은 “지금 분위기에서는 개별 기업이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며 “그 이유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25년 전에도 이건희 회장은 정치가 4류라고 정면 비판했다. 왜 지금은 그런 발언을 상상도 할 수 없는지 답답하다”고 한탄했다.

자유권, 사회권, 존엄성 등은 천부인권이다. 기업 또한 자유시장과 자본주의를 채택한 우리나라에서 최소한의 규제로 경영의 자유를 누려야 함이 마땅하다. 사회적 해악을 끼치는 기업에는 그에 상당한 제재를 가하면 된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목소리가 배제 없이 한 그릇에 담겨 동적평형(動的平衡)을 이룰 때 발전하며, 규제개혁과 혁신역량, 노동생산성 제고를 위한 구조개혁이 동반돼야 국가 경제의 지속성장이 가능하다는 건 기본 중 기본이다.

평등·공정·정의도 상식과 기본이 바탕에 없으면 소수만 행복한 기형적 결과를 낳는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말처럼 선한 자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은 자발적이든, 강요에 의한 것이든 사회를 병들게 한다. vicman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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