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혁 칼럼] 나훈아 현상과 영서연설(郢書燕說)의 고사

입력 2020-10-05 17:40 수정 2020-10-0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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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마이라이프 대표

이번 추석 연휴에 최고의 화제는 ‘나훈아 현상’이었다. 연휴 내내 뉴스와 SNS에서 나훈아에 대한 뉴스와 글이 쏟아졌다.

자랑처럼 들리겠지만 기자는 남들보다 조금 앞서 그 현상의 조짐을 감지했다. ‘조근호 변호사의 월요편지’라는 웹사이트(www.mondayletter.com)를 통해서였다.

조 변호사는 추석 2주 전인 9월 14일자 편지에서 나훈아의 신곡 테스형!을 소개하며 극찬을 했다. 가사에 담긴 메시지가 니체의 저서 ‘우상의 황혼’과 비견될 만큼 깊이 있다는 게 그의 평가였다.

니체는 소크라테스를 서양철학의 우상이라 규정하고 이른바 ‘논리의 망치’를 휘둘러 이를 깨부수려 했다. 이에 비해 나훈아는 노래를 통해 소크라테스에게 철학적 반문을 던졌다는 게 조 변호사의 해석이다.

이를테면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라는 노랫말은 소크라테스가 말한 ‘참된 세상’이 진짜 있냐는 물음이라는 것이다. 편지를 읽고 나니 가수 나훈아의 면모가 새롭게 다가왔다.

때마침 추석 연휴 첫날 ‘대한민국 어게인’ 공연이 방송되기에 관심 있게 지켜봤다. 70을 훌쩍 넘긴 ‘가황’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조 변호사의 평가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감탄을 자아냈다. 눈빛은 형형했고 몸짓엔 힘이 넘쳤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뜻하나니’라고 했던 사무엘 울먼의 싯귀가 떠올랐다.

이렇게 기자가 연이어 감탄하고 있는 사이에 정치권에서도 ‘나훈아 현상’이 벌어졌다. 공연 중에 나온 그의 발언들이 정치권에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을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다” “KBS가 국민의 소리를 듣고 같은 소리를 내는, 여기저기 눈치 안 보는, 정말 국민들을 위한 방송이 되었으면 좋겠다” 등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 발언에 야당과 보수진영은 반색을 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가수 나훈아 씨가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대변해줬다”며 “제1야당에 부과된 숙제가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장제원 의원도 페이스북에 “그는 대한민국을 흔들어 깨웠고, 지친 국민들의 마음에 진정한 위로를 주었다”고 썼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페이스북에 “20년 가까이 정치를 하면서 나름대로 애쓰고 있지만, 이 예인(藝人)에 비하면 너무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찬사를 보냈다. 조수진 의원은 SNS에 “상처받은 우리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나훈아 씨에게 갈채를 보낸다”고 적었다.

반면 야당 인사들의 이런 반응에 대해 여당에서는 “아전인수(我田引水) 식 해석”(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이라고 일축했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사실 나훈아 어록을 곱씹어보면 그가 딱히 여야 어느 진영의 편을 들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건 대통령이 없다는 말은 역대 대통령 모두를 겨냥하고 있다. 그의 신곡 중 하나인 ‘엄니’도 사연을 보면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젊은이들의 어머니를 위로하는 노래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야당 입장에서 여전히 언급하기 껄끄러운 소재다.

그렇다고 해서 여권이 나훈아 현상에 대한 야권의 반응을 아전인수로만 치부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야당의 해석에 동조하는 민심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여권에는 영서연설(郢書燕說)이라는 또 다른 고사를 일깨워 주고 싶다. 아전인수와 비슷한 맥락이면서도 의미는 다른 고사성어다.

춘추전국시대에 초(楚)나라의 도성인 영 사람이 연(燕)나라의 재상에게 편지를 쓰면서 해질녘이라 옆에 있는 하인에게 “촛불을 높이 들라”고 일렀다. 그런데 무심결에 그 말도 편지에 써넣고서는 그대로 편지를 띄우고 말았다. 편지를 받은 연나라 재상은 뜬금없는 문구에 고심을 했다. 그러다 결국 “현자를 찾아내 등용하라는 말이군”이라고 제 맘대로 해석했다. 그러고는 이를 왕에게 진언했고 왕이 이를 받아들여 나라를 잘 다스리게 됐다는 게 결말이다.

다시 말해 잘못된 해석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 고사처럼 여당도 나훈아 현상을 자신들의 부족한 점을 바로잡으라는 계시로 삼아보면 나라가 좀 더 평안해지지 않을까.lim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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