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중년 이후 행복한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입력 2020-09-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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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삶의질연구센터 부연구위원

2014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된 학회에 참가했을 때였다. 아크로폴리스를 마주하는 야경을 볼 수 있다는 리카베투스 언덕으로 오르는 길에 우연히 덴마크에서 온 중년 남성과 동행했다. 남유럽 경제위기가 한창이었을 때여서 그런지 동양에서 온 젊은 여자가 홀로 언덕을 오르는 모습이 마음 쓰였던 것 같다. 어떻게 이곳을 오게 되었는지 서로의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은퇴 이후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열심히 일했으니 그동안 적립한 연금으로 인생을 즐길 자격이 있다고도 했다. 그러고는 신이 나서 카메라를 꺼냈다. 그동안 자신이 다닌 여행의 흔적들을 보여줬다. 열심히 일하고 은퇴 이후의 삶을 오롯이 즐기는, 사회복지정책 교과서에나 나오는 노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실제로 만난 건 처음이었다.

행복을 주제로 공부하는 해외 학자들을 만나면 우리나라 경제 수준에 비해 낮은 노인 행복 수준에 놀라워한다.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40대에서 최저점을 보이는 ‘U자형’의 행복 점수 패턴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50대 이후 행복 점수가 도무지 올라가지 않는다. 높은 노인빈곤율을 떠올리면 노인의 낮은 행복 점수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40대에서 50대로 넘어가도 올라가지 않는 건 이상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청년기에 학업을 마치고, 경제활동을 시작하고, 독립한다. 이후 가족을 꾸리고, 자녀를 키우고, 열심히 살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어느새 자녀는 독립하고 주된 일자리로부터의 은퇴를 준비하는 나이에 이른다. 좀 더 젊었을 땐 어려운 취업의 문을 뚫으려 정형화한 스펙을 쌓고, 취업 후엔 다달이 카드값을 내며 내 집 마련만을 목표로 저축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노후는 준비되어 있지 않다. 일과를 주어진 임무처럼 완수하며 열심히만 살다 보면 흰머리가 나고, 체력이 떨어지고, 주름이 생긴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런데 막상 그 모습이 되면 당황스럽다. 새로운 과업들도 낯설다. 50대를 맞이해도 딱히 성취해놓은 게 없다. 이룬 것 없이 늙은 모습을 보며 행복 점수가 높아질 리 없다.

2018년 기준 통계자료를 분석하면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빈곤하지 않기 위한 월 소득은 120만 원 정도다. 그런데 대표적 공적연금인 국민연금 총 지급액을 전체 수급자 수로 나는 평균 지급액은 같은 해 월 34만 원 정도이다. 기초연금을 받아도 월 최대 20만 원 정도다. 아직 빈곤하지 않다는 기준까지 66만 원이 모자라다. 덴마크에서 만난 사람처럼 젊을 때 열심히 일하면서 기여한 것으로 노년기의 경제력을 담보해줄 공적 노후소득보장체계가 충분하지 않은 것이 문제다. 열심히 살았지만 공적 체계만으로는 은퇴 이후가 마냥 밝지 않다. 더 일해야 하고 여전히 돈을 벌 궁리를 해야 한다. 현실에 급급하다 보니 나이듦을 축복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중년 이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심리적인 준비를 하지 않는다.

한국은 경제적 발전 수준에 비해 국민이 누리는 행복 수준이 낮은 ‘이상한 선진국’ 중 하나이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서고, 코로나19 대응에선 방역 선진국이라는 찬사를 받지만, 연금만으로 여행을 다니며 노후를 즐길 여건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 정도 선진국에 사는 국민인데, 이제는 좀 느긋하게 나이가 들어가는 삶을 즐겨도 되지 않을까? 차근차근 제도를 정비하면서 경제 수준만큼 노후 준비와 복지 수준도 높인다면 우리나라도 ‘이상한 선진국’이 아닌, 나이가 들어도 행복한 ‘그냥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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