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관제 펀드의 추억

입력 2020-08-18 05:00 수정 2020-08-18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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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우 금융부장

집값을 잡을 것인가. 또 하나의 ‘관제(官製)펀드’의 흑역사인가.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디지털·그린뉴딜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뉴딜 펀드’을 놓고 시장의 반응이 엇갈린다. 전자는 부동산 시장을 달구는 1000조 원이 넘는 부동자금을 흡수해 더욱 생산적인 투자처를 찾아주자는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부동산 대책의 하나로 뉴딜펀드를 밀어붙이면서 정책의 실효성이나 형평성에 대한 고려는 소홀했다는 후자의 지적이 맞선다.

뉴딜펀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주요 경제정책으로 내세운 ‘한국판 뉴딜’ 사업의 총사업비 160조 원 중 10%가량을 민간자본으로 채우자는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부동산값 폭등을 부른 시중 유동자금을 5세대 이동통신(5G)·자율주행차·재생에너지 등 건강한 산업투자처로 유도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원금보장, 연 3% 수익률, 3분의 1 수준 세제 혜택’까지 내건 것이 투자손실이 나거나 수익률이 저조할 경우 세금으로 메워주겠다는 것 아니냐는 잡음이 일었다.

가장 큰 논란은 원금 보장과 수익률 문제다. 뉴딜펀드는 선순위대출에 투자하기 때문에 원금을 떼일 가능성은 작다. 그러나 출자금과 후순위대출을 넘어설 정도로 투자손실을 입으면 결국 원금 손실로 직결된다. 연 3%의 수익률도 논란이다. 데이터센터, 5G, 신재생에너지 등 뉴딜사업이 그만큼의 수익성이 있을지 의구심이 일고 있다. 여기에 연 6~8%를 목표로 하고, 최소 5%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민간 인프라 펀드와의 경쟁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같은 논란에 정부와 여당은 최근 ‘원금보장’이 아니라 ‘원금보장 추구’로 말을 바꿨다. ‘원금 보장‘이나 ’원금 보장형‘이라는 표현은 금융감독원이 지적하는 불완전 판매의 전형적인 사례다.

자본시장법 제55조는 금융투자업자들이 사전이건 사후이건 손실의 보전이나 이익의 보장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걸 어기면 자본시장법 제445조에 따라 형사처분된다. 다시 얘기하면 범죄행위를 국가가 앞장서서 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원금보장이 빠지면 사실상 다른 상품에 비해 경쟁력이 없다는 데 있다. 현 정부 출범 후 이미 금융권은 다양한 정책금융에 참여하고 있다. 투자자들에게 정책금융 관련 피로도가 그만큼 높다. 이 또한 뉴딜펀드 흥행의 장벽으로 꼽힌다.

정권마다 관제펀드를 만들었다. 그러나 반짝인기였을 뿐 정권이 바뀐 뒤 흐지부지된 경우가 많았다. 뉴딜펀드를 놓고 원금보장을 거론했던 것도 과거 정책금융과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펀드’는 2009년 녹색성장이 국정과제로 채택되면서 2012년까지 42개 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설정액은 3000억 원에 육박했다. 그러나 2014년쯤부터 수익률 부진으로 자금이 이탈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10억 원 미만 소형 펀드가 주를 이루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펀드’도 사정은 비슷했다. 현 정부 들어서도 코스닥벤처펀드, 은행권일자리펀드, 필승코리아펀드, 채권안정펀드 등도 출시됐다. 2018년 출시된 코스닥벤처펀드의 최근 2년간 수익률은 연 4%대에 불과하다.

반면 수익률 기준 성공적인 펀드 사례도 있다.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소재·부품·장비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출범한 ‘필승코리아펀드’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입해 화제를 모으면서 출시 3개월 만에 1000억 원을 돌파했다. 최근까지 일부 종목은 40% 이상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뉴딜펀드의 경우 과거 관제 펀드와 어떤 차별화를 통해 수익성을 이어갈 수 있을지 관심을 끈다. 시장에서는 흥행을 위해 펀드 조성에 민간 기업이나 금융사, 고위 공직자 등이 동원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국민의 자발적 참여가 아닌 손목 비틀기식 관제로 압축되면 활성화에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펀드, 박근혜 정부의 통일펀드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

a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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