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투기수요' 전제가 부동산 정책 망쳤다

입력 2020-07-1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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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세부담에 다주택자 매물 회수…실수요자 혜택 앞세운 무주택 투기수요에 집값은 급등

문재인 정부에서 발표된 모든 부동산 정책은 ‘다주택자=투기수요’란 전제에서 출발한다. 반면 무주택·1주택자는 ‘실수요’로 간주돼 혜택을 본다. 최근 집값 상승도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 기인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주택자에 대한 거래세(양도소득세)·보유세(종합부동산세) 동반 인상으로 공급이 줄고, 반대로 무주택·1주택자에 대한 과도한 혜택으로 수요는 늘었다는 것이다.

김규정 NH투자증권 연구위원은 12일 “규제를 할 때 예외적인 조치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며 “그런데 정부는 주택 수·가격으로 투기수요와 실수요를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규제에서 서민·실수요자는 부부합산 연소득과 주택 면적·가격, 주택 보유 여부를 기준으로 구분된다. 7·10 대책에 따른 기준은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에서 연소득 8000만 원 이하이고, 5억~6억 원 이하 주택을 구입하는 무주택 세대주다. 서민·실수요자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한도가 늘고, 보금자리론 등 정책금융을 이용할 수 있다. 2년 이상 보유(규제지역에선 거주) 시 양도세 면제 등 다양한 세제·금융 혜택을 받는다. 반대로 다주택자는 양도세·종부세가 중과되고, 대출도 제한된다. 취득세 인상도 추진 중이다.

◇최근 집값, 다주택자 아닌 ‘무주택 투기수요’가 올려

하지만 최근 부동산시장에선 세제·금융 혜택을 받는 실수요자가 투기수요로 작용하는 양상이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주가 30세 미만인 가구의 거주주택 보유율은 전년 11.9%에서 14.2%로 2.3%포인트(P) 올랐다. 이들의 담보대출 보유율도 49.6%에서 52.1%로, 신용대출 보유율은 23.5%에서 24.6%로 급등했다. 30대도 증가율은 다소 낮지만 30세 미만과 비슷한 추이를 보였다. 사실상 20·30대가 집값 상승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특히 20대 주택 매수자의 상당수는 실수요와 거리가 멀다. 이들의 거주주택 외 부동산 보유율은 지난해 6.5%로 전년(5.8%)보다 0.7%P 올랐다. 정동영 전 민주평화당 의원이 1월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아파트 입주계획서를 분석한 결과에선 20대 집주인의 과반이 임대목적으로 집을 산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자산을 고려하면 상당수는 보증금을 낀 갭투자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 다주택자는 오히려 줄었다. 전 연령대에서 거주주택 외 부동산 보유율은 지난해 34.7%로 전년보다 1.2%P 내렸으며, 자산의 평균값도 감소했다. 오히려 거듭된 부동산 대책은 다주택자의 수요가 아닌 공급을 줄이는 효과를 냈다. 실수요 다주택자가 양도 대신 증여를 택하거나, 투기수요 다주택자들이 단기적인 세부담을 감수하고 매물을 거둬들인 탓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주택가격이 오른 건 대부분 무주택자가 집을 사면서 발생한 문제”라며 “양도세 감면 등 과도한 혜택이 화근이 됐다”고 비판했다. 결국 실수요 여부와 관계없는 실수요자 기준이 20·30대 투기수요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곳곳에 허점…현실성도 ‘無’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도 문제다. 6·17 대책이 발표되고 한 달여 만에 보완대책이 나왔지만, 또다시 곳곳에서 허점이 발견되고 있다. 오죽하면 정부는 벌써 7·10 대책의 보완책도 검토 중이다.

정부는 지금껏 다주택자에 대해 양도세·종부세 중과율을 높여왔다. 그런데 다주택자들은 주택을 처분하는 대신 양도로 몰렸다. 이에 정부는 증여받은 부동산에 붙는 취득세율을 현행보다 배 이상 높이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증여 시 취득세는 기준시가에 대해 단일세율로 3.5%(농어촌특별세·지방교육세 포함 시 4.0%)가 적용되고 있다.

양도세를 높여 매물이 감소하니 종부세를 올리고, 종부세를 올려 증여가 증가하니 취득세를 올리는 땜질의 반복이다. 구체적인 방안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7·10 대책에서 1주택자가 주택을 매입해 2주택자가 되는 경우 부담하는 취득세율을 현행 1~3%에서 8%로, 3주택 이상은 12%로 인상된 만큼 이에 준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시장은 예상하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너무 땜질식으로 대책이 발표됐다”며 “보유세를 보편적으로 강화하고, 양도세 비과세를 축소해 형평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민·실수요자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대책들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는 신혼부부에 대해서만 허용하는 생애최초 주택 구입 시 취득세 감면 혜택을 연령·혼인 여부와 관계없이 적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감면대상이 되는 주택가격 기준이 현실성이 크게 떨어진다. 100% 감면을 받으려면 주택가격이 1억5000만 원 이하, 50% 감면을 받으려면 3억 원 이하(수도권은 4억 원 이하)여야 하는데, 수도권에선 4억 원 이하의 아파트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규제지역의 LTV·DTI를 10%P 우대해주는 서민·실수요자 소득기준 완화도 실수령액이 아닌 세전금액인 데다 무주택이어야 한다”며 “서민·실수요자 불안을 해소하겠다는 정부 정책이 여전히 핵심을 살짝 비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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