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기부도 가슴이 아닌 머리로 하자

입력 2020-06-0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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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영 부국장 겸 유통바이오부장

아프리카 빈곤층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후원 사업으로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 식수 제공과 기생충 퇴치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빙글빙글 돌리면서 노는 놀이기구 ‘뺑뺑이’에 펌프를 결합시킨 플레이펌프를 도입한 ‘플레이펌프스인터내셔널’은 물부족 국가에 식수 펌프를 보급했다. 세상을 바꾸는 펌프로 칭송받은 이 사업은 당시 미국 영부인 로라 부시가 지원하는 등 국제개발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하지만 효율성 문제가 제기됐다. 아이들이 돌리는 힘만으로는 물을 계속 끌어올리기에 부족했고, 아이들이 돌다가 떨어져 다치는가 하면, 돈을 주면서까지 ‘타고 놀도록’ 운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선의와 열정만 앞세웠다가 실행력이 떨어져 폐업한 후원사업의 실패 사례로 꼽힌다.

#반면 케냐 빈곤퇴치 사업에 나선 한 구호단체는 아이들의 학교 출석률 높이기 프로그램을 펼치면서 교과서 지급 늘리기, 교사 수 늘리기 등 이것저것 시도해 봤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기생충 감염 치료를 했더니 결석률이 25%나 줄었다. 비용 대비 최대 효과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10년 후 이 아이들을 추적관찰한 결과 기생충 감염 치료를 받지 않은 아이들보다 소득이 20%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윌리엄 맥어스킬 영국 옥스퍼드대 철학과 부교수가 쓴 ‘냉정한 이타주의자’에 나오는 내용이다. 맥어스킬 교수는 이 책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이타적 행위가 실제로 세상에 득이 되는지 (플레이펌프 사례처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며 기부의 불편한 진실을 지적했다. 선행도 열정이나 감정에만 좌우되지 않고 다른 경제사회활동과 마찬가지로 숫자와 이성으로 무장해 냉정하게 판단해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몇년 전 출간된 이 책이 생각난 건 최근 한국 사회에 기부 논란이 일고 있어서다.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이 국민의 70%에만 주어지기로 했다가 전 국민에 지급되면서 자발적인 기부 가능성을 열어놨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기부하면서 여당과 공무원 등 일각에서 눈치보는 기부 분위기가 형성되자 기부가 미덕인지, 소비가 미덕인지 논란거리를 던졌다.

재난지원금 지급이 한 달여 지나면서 대다수는 기부보다 소비를 택한 것으로 집계된다. 기부해 봐야 알 수 없는 세금 어느 언저리로 들어갈 바에야 내가 그 돈을 직접 우리 동네 치킨집·슈퍼마켓 등에서 사용해 내수 경기를 활성화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으로 기운 것이다.

그런가 하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이들이 늘면서 십시일반의 나눔문화가 필요한 시점에 정의기억연대의 기부금 유용 의혹은 기부 문화를 또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사실 한국의 기부문화는 일천하다. 2017년 세계기부지수(WGI)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부 참여지수는 전체 조사 대상 139개국 가운데 62위로, 2013년보다 17계단이나 낮아졌으며 국민의 기부활동 참가율은 34%로 중간 수준에 그쳤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기부를 안 하는 이유 중 하나로 기부단체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2019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기부하지 않는 이유’로 ‘기부 단체 등 불신’(14.9%)이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51.9%)와 ‘관심이 없어서’(25.2%)의 뒤를 이어 3위로 집계됐을 정도다.

이에 비해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까지 기부천사가 줄을 잇는 미국의 경우 국민의 기부 활동 참가율이 56%나 될 정도로 기부문화가 발달했다. 미국의 한 여론조사에서 고소득층은 기부의 이유로 자선단체에 대한 신뢰를 최우선으로 꼽는다.

국내에서도 점점 많은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개인 역시 선행을 통한 도덕적 고취감, 자아실현 등에 주목하면서 기부가 ‘문화’ 또는 ‘경제’의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가 기부하는 두 가지 이유는, 하나는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빌 게이츠처럼 기부 자체에 재미를 느끼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런 의식 변화가 유지되려면 자선단체의 투명성은 필수다.

그런 점에서 정의연 논란은 진위를 떠나 적어도 앞으로는 기부자들이 기부 자체의 취지도 중요하지만, 기부단체의 수행능력과 투명성을 따져보게 하는 교훈을 남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h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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