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제로 시대:리더십의 민낯①-3] 부활한 빅브러더의 망령

입력 2020-06-01 06:02 수정 2020-06-1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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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 인식·무인기까지 첨단 기술 동원해 감시 강화…코로나19 틈타 커져버린 정부 권력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코로나19 감염자 동선 추적 애플리케이션 ‘스톱코비드’(StopCovid)가 휴대폰 화면에 나타나고 있다. 파리/EPA연합뉴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코로나19 감염자 동선 추적 애플리케이션 ‘스톱코비드’(StopCovid)가 휴대폰 화면에 나타나고 있다. 파리/EPA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맞아 인류는 특별히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전체주의적 감시체제로 향할 것인지, 시민사회 권한 강화와 연대의 길로 갈 것인지 우리는 힘들고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등을 집필한 유명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44)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는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을 통해 인류에 이처럼 비장한 메시지를 남겼다.

하라리 교수는 전 세계적인 바이러스 확산 속에서 각국 정부가 새로운 감시 도구를 동원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정부는 감염자가 제로(0)가 됐을 때도 여전히 감시체제를 유지하려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진 코로나19 사태는 정부의 역할을 확장시키고 있다.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각국 정부가 돈 풀기에 나서면서 전 세계가 다시 ‘큰 정부 시대’로 되돌아가게 된 것이다. 또 각국 정부는 공중보건 비상사태에 대응하고자 위치 추적, 안면 인식 기술, 드론 등 최첨단 기술들을 활용, 확진자 및 자가 격리자에 대한 감시에 나서고 있다. 개인에 대한 정부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전염병 확산 방지를 핑계로 정보를 독점해 개인과 사회를 밀착 감시하는 이른바 ‘빅 브러더’의 망령이 살아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코로나19가 처음 발병한 중국에서는 안면 인식 인공지능(AI) 기술까지 동원해 개인의 동선을 추적하는가 하면, 일부 지역에서는 무인기와 감시 카메라를 동원해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엄격한 봉쇄 조처가 시행됐다. 몇몇 지역에서는 경찰들이 드론을 통해 행인들의 마스크 착용 여부를 관찰하고, 확성기로 “걸으면서 음식 먹는 아가씨들, 마스크 쓰고 집에 들어가라”, “통화 중인 잘 생긴 당신, 마스크는 어디에 있나” 등의 권고에 나섰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라리 교수도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새로운 감시 도구를 동원한 정부들을 거론하면서, 중국과 이스라엘을 예로 들었다. 그는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국이다”라며 “사람들의 스마트폰을 면밀하게 감시하고, 수많은 안면인식 카메라를 활용하며, 사람들의 체온을 재고 건강 상태를 보고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는 비단 중국만의 일이 아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테러리스트를 대상으로 사용되던 감시 기술을 코로나19 감염자를 추적하는 데 쓸 수 있도록 승인했다. 관련 의회 상임위가 이를 거부했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긴급조치명령’을 통해 이를 통과시켰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던 서방사회마저도 코로나19 확산에 무릎을 꿇었다. 유럽에서도 공권력을 통한 개인의 감시 체계가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벨기에 당국은 자가격리를 지키는지 확인하겠다며 이동통신사에 개인 위치 정보를 요청했다. 프랑스 하원은 최근 코로나19 감염자 동선 추적 애플리케이션 ‘스톱코비드(StopCovid)’를 정부가 코로나19 방역에 사용하는 것을 최종 승인했다. 이에 따라 해당 앱은 2일부터 상용화한다.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사생활의 가치를 중시해 확진자의 위치 정보 활용을 금기시했던 유럽에서는 커다란 변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세계 도처에서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을 명분으로 권력을 강화함에 따라 견제와 균형, 토론 등의 민주주의 가치가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19 위기가 끝난 뒤에도 각국 정부가 이 과정에서 새롭게 얻은 힘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서두에 하라리 교수가 경고한 것도 바로 이러한 지점이다. 그는 “데이터 수집에 굶주린 일부 정부는 코로나19 감염 환자가 제로(0)가 되더라도 제2차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 또는 에볼라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를 만들어 내 생체 감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개인정보와 건강 가운데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세상 속에서 하라리 교수는 두 가지 모두 누릴 수 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전체주의적 감시 체제를 도입하지 않더라도‘시민의 힘’을 통해 전염병 확산 방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추적 시스템을 어느 정도 사용하기는 했지만 대만, 한국과 같은 나라들은 광범위한 테스트와 투명한 정보 공개, 시민들의 자발적인 협력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코로나19 확산을 막아냈다는 설명이다.

하라리 교수는 “중앙집권적 감시와 가혹한 처벌만이 시민들의 협조를 끌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라며 “정부가 과학적 사실을 제공하고 국민이 정부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믿을 때 사람들은 빅브러더의 감시가 없더라도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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