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드루킹’이 주는 숙제

입력 2018-05-0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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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명예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정보통신이 발달한 나라치고 ‘댓글’로 인한 문제가 없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특별히 더 심각하다. 댓글이 잘 먹히는 문화와 환경, 그리고 구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진영 논리가 강하다. ‘네 편 내 편’의 진영 논리 프레임 속에서 ‘네 편’에 대한 나쁜 정보나 ‘내 편’에 대한 좋은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확산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긴 노동시간에 힘든 출퇴근, 여기에 일자리와 교육비 그리고 집값 등 살아가는 고민도 많다.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생각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셋째, 권위 있는 기관이나 인물들이 많으면 이들의 의견이라도 참고하겠지만 그렇지도 못하다. 그 어떤 언론매체도, 또 어떤 지도자도 기존의 편견이나 진영 논리를 뚫고 들어갈 정도의 신뢰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여론조작이 쉽다. 그러니 댓글로 이를 조작하고, 이를 통해 권력과 돈을 얻겠다는 사람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정치권의 경우 미래비전도 전략도 없이 여론의 눈치만 살피는 상황이다. ‘드루킹’처럼 ‘댓글 부대’를 만들어 정치를 이리저리 요리하는 게 얼마나 재미나겠나.

이렇게 되물을 수 있다. 돈 있는 사람들은 광고와 협찬 등을 통해 신문기사를 사듯 하고, 광화문의 시위대는 자신들이 가진 표의 10배, 100배의 힘을 행사하지 않느냐, 국정원이 하는 것도 아니고 시민들이 모여 댓글로 영향력 행사하는 게 왜 문제가 되느냐, 이것이야말로 민주시민의 권리이자 의무 아니냐.

명백히 아니다. 광고나 협찬도 책임을 지고, 시위도 책임을 진다. 잘못될 경우 그 주체들이 국민적 질타를 받기도 하고, 매서운 역사적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댓글은 그렇지가 않다. 많은 경우 익명성과 대량성의 커튼 뒤에 숨어 있어 그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

책임이 없으니 고민이 깊을 수 없다. 무슨 문제든 그 문제의 원천이 되는 정치, 경제, 사회적 구조에 관한 이야기는 뒤로 가고, ‘나쁜 사람’, ‘좋은 사람’, ‘네 편’, ‘내 편’의 손쉬운 이야기가 주를 이루게 된다. 의제의 왜곡, 즉 정작 다루어져야 할 많은 문제들이 정책이나 정치 의제가 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책임이 없으니 논리보다 감성이 앞선다. 언어 또한 거칠어진다. 마음에 들면 미화하고 그렇지 않으면 언어 폭력을 퍼붓고, 그러는 가운데 보상과 징벌의 체계가 무너진다. 열 마디의 칭찬보다 한마디의 모욕이 더 크게 들리는 법. 양식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싫어 정치와 행정으로부터 멀어진다. 결국 인력충원 체계까지 무너뜨리게 된다는 말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네이버 등 포털은 달 수 있는 댓글 수와 시간 간격을 제한하고 나섰고, 정치권에서는 검색 순위에 따라 기사를 배치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규제가 생기면 편법 또한 생기게 마련. 익명성이 강한 인터넷 공간에서 이런 대책이 얼마나 효과적일까.

규제 강화보다는 책임을 묻는 것이 우선 아닐까. 댓글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되 그에 대한 책임을 확실히 하는 것 말이다. 이를테면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아웃링크’ 즉, 정보를 클릭하면 정보를 제공한 사이트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안 중 하나이다. 전면적인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이 되었지만 그렇게 하면 이들 사이트가 자신들의 권리와 정책에 의해 실명제를 운영할 수 있다. 문제가 있는 댓글에 대해서는 그만큼 엄중한 처벌을 할 수 있고.

쉬운 일 아니다. 포털과 언론사, 그리고 정치권 등의 이해관계가 걸린 일이다. ‘아웃링크’ 문제만 해도 포털의 소극적 태도뿐만 아니라 언론사마다 다른 입장이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다. 마음대로, 떼 지어 욕하고 미화하고 하는 것을 민주주의라 착각하는 자들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 이들에게 민주주의가 무엇이고 책임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이것이 이번의 드루킹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숙제이다. 우리 모두 이 숙제를 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설픈 규제 몇 개 더하는 것을 넘어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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