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 완화 재벌 무분별 증권업 진출 부르나

입력 2008-02-14 11:11 수정 2008-02-18 09:4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자통법 시행 앞두고 쉬운 장사...출혈 경쟁, 노하우 부족 등 우려도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엄격하게 지켜온 금산분리 원칙을 새정부가 완화할 뜻을 밝힘에 따라 재벌그룹들이 앞다퉈 금융업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내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재벌그룹들이 속속 증권사를 인수하거나 기타 관련산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범현대가의 장자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은 지난 12일 2089억원에 신흥증권 인수 본계약을 체결했다. 이 그룹은 앞으로 2~3년내 증권업을 업계 5위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금융계열사로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을 소유하고 있다. 증권사까지 인수함에 따라 금융연계 사업을 펼칠 수 있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에 앞서 유경선 회장이 이끄는 유진그룹도 지난해 서울증권 인수후 유진투자증권으로 사명을 바꾸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재계와 증권가에서는 올해 증권업 진출을 노리는 재벌그룹들의 리스트가 이미 오르내리고 있다.

재벌그룹들이 너도나도 증권업 등 금융업 진출에 나서는 것은 '돈'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굴뚝산업으로 재벌을 형성한 것이 1세대들이라면 선진교육을 받은 현재의 재벌 2ㆍ3세들은 비교적 쉽게 돈을 굴리고 벌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업 진출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란 게 재계와 증권가 사람들의 진단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재벌그룹들의 움직임이 증권사의 대형화 등 바람직한 추세보다는 오히려 출혈 경쟁을 야기시킬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또한 생소한 금융 업종으로의 진출후 잘못될 경우에는 해당 그룹은 물론 국가경제 전체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 이달말 1차 윤곽 드러나

어떠한 재벌그룹들이 증권업종에 진출을 시도할 것인지는 이달 말이면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이달말까지 증권사 신규 설립 신청을 받아 자본금 등 자격심사를 통해 승인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자통법에 따라 올 8월부터 금융투자회사로 재인가를 받으려면 신규 증권업 추진 기업들은 이달 말까지 신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계와 증권가에 따르면 현재 물망에 오르는 재벌그룹들로는 지난해 증권중계업에 진출한 두산그룹, 대한화재 인수로 기존의 롯데카드와 함께 금융업을 새축으로 형성하려는 롯데그룹, 대우캐피탈 인수에 성공한 아주그룹 등이 증권업 진출에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사 매각을 추진해 오던 SK그룹과 CJ그룹도 M&A의 주체로 나설 가능성이 점처지고 있다.

현재 50여개 증권사 가운데 재벌그룹이 대주주인 곳은 삼성증권, 현대증권, 동양종금증권, SK증권, CJ증권, 유진증권, 한화증권이다. 그외 외국계나 몇몇 증권사를 제외하고는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취약해 자통법 등 새로운 환경 변화로 기존 중소형 증권사들이 '매각'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 따르면 매물이 거론되는 중소형 증권사로는 교보증권, 한양증권, 부국증권, 유화증권, SK증권, 이트레이드 증권 등이 거론되고 있다. 산업은행 민영화와 맞물린 대우증권과 M&A설이 끊이지 않는 현대증권 역시 대형증권사 매물에 속한다.

익명의 재계 한 관계자는 "인수 희망자 입장에서는 자통법 시행 전인 올해 사업기반을 갖추기 위해서 반대로 매각 희망자들은 정부의 증권사 신규 설립 허용으로 더이상 높은 증권사 면허 프리미엄만을 주장할 수 없게 된 점에서 공감이 형성돼 앞으로 이러한 일들이 가속화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시장환경 변화로 '돈' 된다 판단

외환위기 이후 재벌그룹들은 엄격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엄격한 분리라는 금산분리로 인해 금융업에 군침만 삼켜왔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새정부가 추진하는 금산분리 완화 외에도 자통법, 연금시장 확대, 펀드 활성화 등은 증권업의 중장기 투자 매력을 높여 증권업 진출 욕구를 배가시키고 있다.

재벌이 증권업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내년 2월 자통법 시행으로 증권사에 지급결제 업무가 부여되면 금산분리 원칙으로 막혀 있는 은행업에 간접 진출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캐피탈, 카드 등 기존 금융계열사와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현재까지는 증권사를 운영해 돈을 버는데 제약이 많지만 자통법이 시행되면 금융상품 범위를 무한정 늘린 것으로 아이디어만 좋으면 성공적인 상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새정부에서 거론될 새로운 지주회사 시스템인 즉 일반 지주회사와 금융지주회사를 통합하는 방안 역시 재벌의 증권업 진출을 촉진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익명의 증권사 한 임원은 "재벌이 외환위기로 증권업에서 쓴 맛을 봤다면 이제는 쉽게 돈 되는 금융시장의 매력을 결코 외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너도나도 금융관련 분야 '골드 러쉬'

은행보다는 상대적으로 진출하기 쉬운 증권업 뿐만 아니라 기타 금융관련 산업으로 재벌그룹의 영역 확장이 눈에 띠게 늘고 있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인 고 정주영 회장의 7남 정몽윤 회장도 최근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을 설립해 자산운용업에 뛰어들었다. 현대해상은 금융그룹으로 성장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어 증권업 진출도 거론되고 있는 상태다.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그룹 명예회장의 아들인 정몽규 회장도 자산운용사인 아이투신운용 지분 85.98%를 보유중이다.

현정은 회장이 이끌고 있는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증권은 이른 시일 내 자산운용사를 출범시킨다는 계획으로 운용사 설립을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가동하고 있다.

신동빈 부회장이 이끄는 롯데그룹은 현재 코스모투자자문의 인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두산그룹 3세인 박용만 회장이 이끄는 두산인프라코어도 지난해 10월 중견 할부금융업체인 연합캐피탈의 지분 20%를 사들였다.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캐피탈도 BNG증권 중개업무를 인수했다.

농심그룹도 신춘호 회장의 3남 신동익 부회장이 자본금 200억원 규모의 농심캐피탈을 지난해 10월 설립했다. 농심도 캐피탈사를 기반으로 자산운용사나 증권사 인수 또는 설립 등 추가적인 금융업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는 게 관련업계 전망이다.

이밖에 이미 금융업에 진출한 CJ·동부·동양그룹 등 재벌그룹은 경쟁자들의 잇따른 도전에 시장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80년대 금융업에 뛰어들었던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동양종금증권을 포함한 금융관련 계열사들을 골드만삭스 같은 투자은행(IB)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 문제는 없나

이 같은 재벌그룹들의 금융업 진출에 대해 무분별한 외형 확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선 증권업 진출과 관련해서는 자통법 본래 취지는 증권사의 대형화다. 최근의 인수 합병은 중소형 증권사들의 주인만 바뀌고 있다는 지적이다. 증권가에서는 한정된 증권시장에 재벌들이 무분별하게 뛰어들 경우 시장선점 차원에서 수수료 인하 등 공격적인 영업 형태로 인해 업계간 출혈경쟁이 불가피해 질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재벌들의 무분별한 금융업 진출은 자칫 잘못될 경우 외환위기 때와 같은 국민 경제의 악영향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 재정적자로 허덕이고 있는 가운데 또다시 전세계적인 금융 충격이 몰아닥칠 경우 금융사업의 확장이 해당 그룹 뿐만 아니라 국민 경제에도 심각한 충격을 줄 가능성도 높다는 지적이다.

시계를 돌려 외환위기 당시로 가보자. 외환위기로 인해 대부분 재벌가 소유였던 종금사들의 잇단 부도사태로 나라가 흔들렸고 재벌사가 소유한 카드사도 물고 물려 위기에 처했다. 국민은 신용카드를 남발했고 당시 신용불량자가 400만이나 양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시민단체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최근 삼성 사태로 보듯 재벌회장의 비자금 관리 등을 해주는 등 금융업은 기업들 입장에서는 좋을 수 있겠으나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운영하면 경제의 균형이 무너지는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아이돌 레시피와 초대형 상품…편의점 음식의 한계 어디까지?[Z탐사대]
  • 제니와 바이럴의 '황제'가 만났다…배스 타올만 두른 전말은? [솔드아웃]
  • 송다은 "승리 부탁으로 한 달 일하고 그만뒀는데…'버닝썬 여배우' 꼬리표 그만"
  • ’돌아온 외인’에 코스피도 간다…반도체·자동차 연이어 신고가 행진
  • ‘빚내서 집산다’ 영끌족 부활 조짐…5대 은행 보름 만에 가계대출 2조↑
  • “동해 석유=MB 자원외교?”...野, 의심의 눈초리
  • 미끄러진 비트코인, 금리 인하 축소 실망감에 6만6000달러로 하락 [Bit코인]
  • 집단 휴진 거부한 아동병원, 의협 회장 맹비난 "'폐렴끼' 만든 사람들"
  • 오늘의 상승종목

  • 06.14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3,711,000
    • -0.16%
    • 이더리움
    • 5,032,000
    • +1.68%
    • 비트코인 캐시
    • 608,500
    • +0.58%
    • 리플
    • 695
    • +2.96%
    • 솔라나
    • 204,100
    • -0.05%
    • 에이다
    • 583
    • -0.17%
    • 이오스
    • 930
    • +0.22%
    • 트론
    • 164
    • -0.61%
    • 스텔라루멘
    • 139
    • +0.72%
    • 비트코인에스브이
    • 69,900
    • -0.5%
    • 체인링크
    • 20,770
    • -1.28%
    • 샌드박스
    • 541
    • +0.37%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