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종북주의와 주한미군

입력 2008-01-2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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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한껏 고무되었다. 에치슨 미국무장관이 한반도를 미국의 안전보장선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한 소식을 듣고서다. 에치슨은 1950년 1월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대외방위안전선에 일본은 포함시키고 한국은 제외한다고 밝혔다. 이를 이른바 ‘에치슨 라인’이라고 한다. 소련으로부터 대량의 탱크와 중화기를 원조받고 전쟁준비를 끝낸 김일성에게 에치슨라인 발언 만큼 반가운 일은 없었을 것이다.

김일성은 1950년 6월 25일 무력남침을 개시했다. 그리고 8월15일까지 남한을 완전히 적화통일시키겠다고 호언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을 포함한 유엔군이 괴뢰군의 남침을 무력으로 저지했다. 김일성은 자신의 호언대로 적화통일하지 못한 첫 번째 이유로 미국의 전쟁개입을 꼽았다. 휴전 이후 북한은 적화통일의 최대 장애요인으로 주한미군의 존재를 삼았다. 그래서 지금도 북한의 적화통일 제1과업은 주한미군 철수다. 미군만 남한에서 철수하면 우세한 군사력으로 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여기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연방제, 군사•외교부문에서는 주한미군 철수를 이뤄내면 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그들은 지금도 판단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북한에 비해 군사적 열위에 있는 남한을 지원하기 위한 전쟁억지수단으로 존재하고 있다. 언젠가 군사적 균형이 이뤄지고 동북아 정세가 호전되면 미군의 주둔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그 때 한미 양국은 협의에 의해 미군 철수문제를 다루면 된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 재래식 군사력 이외에도 핵까지 가진 북한 군사력을 상쇄시키기 위해서는 미군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주둔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북한이 왜 그토록 몇 십 년이 지나도록 주한미군 철수를 줄기차게 주장하는지 그 이유를 상기해야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하자는 주장은 자칫 북한의 적화통일 전략에 휘말려드는 이적행위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민감한 안보 사안이므로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런데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이 주한미군 철수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국가 안보 차원에서 보면 위험한 주장이 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하다.

지난해 대선 기간 중에 권영길 민노당 대선후보는 선거공약으로 미군철수를 내걸었다. 철수 명분의 가장 큰 근거로 북한은 이미 우리의 적국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주국방이 이루어졌으니 미군은 철수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가 순진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상황을 일부러 못 본 척하려 해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다. 최근 남북한 관계가 호전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군사적으로 돌발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상황은 아니다. 서해교전 사건이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다. 더구나 남북한 모두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어 전면전이 일어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북한은 적어도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서로 적대국이요, 군사적 충돌이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상태에 놓여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 후보가 일방적으로 북이 주장하는 주한미군 철수에 동조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대선 뒤 민노당은 새로운 노선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당내 다수파인 자주파(NL)가 지향해온 종북주의(從北主義)를 청산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민노당내 한 이론가는 “대선 참패를 계기로 더 이상 민주노동당 내 친북(親北) 세력과 결별하지 않고서는 당을 함께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민노당을 주도해온 NL계열들은 당을 정당이 아닌 (남한 내)의회투쟁의 전선기구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주파 게열인 권영길 의원은 아마도 친북 종북주의에 함몰돼있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가 종북주의자이므로 북한이 그토록 바라는 주한미군 철수에 동조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민노당에 표를 주지 않았다. 민노당 후보가 내걸은 공약들이 현실에 맞지 않거나 이적행위가 될지도 몰라서다. 민노당 소수파인 평등파(PD)는 이같은 민심을 파악하고 자주파가 장악한 당을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노당 재건을 내걸고 민노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선출된 심상정 의원은 “종북주의에 대해 명확하게 평가하고 당헌, 당규에 따라 처리한다”고 최근 밝혔다. 원래 민노당은 영국 노동당을 벤치마킹해 세워진 정당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실용주의적 노선을 걸으려 했다. 그러나 정착에 실패한 김일성주의자나 종북주의자들이 당에 들어와 다수파를 형성했다. 이들이 당권을 쥐자 당 노선이 종북주의로 흘렀다. 그리고 주한미군 철수가 대선후보의 공약으로 내걸렸다.

국민들은 외면했다. 그들의 종북주의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민들은 그들이 아무리 주장해도 그 주장이 터무니 없거나 말같지 않다고 여겨 표를 주지 않았다. 민노당은 참패했다. 민노당은 당내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4월 총선에서도 의석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비대위 심상정 의원이 해결해야 할 현안은 바로 이 당내 혁신을 완수하는 일이다. 혁신이란 다름 아닌 종북주의 청산과 정치•사회 현안에 대해 현실적이고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하는 일이다. 소수파인 평등파가 다수파를 설득시켜 혁신을 이루어내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뒤따를 듯 하다. 만약 혁신이 이뤄지지 않으면 민노당은 분열할지 모른다. 다수파가 종북주의를 청산하지 않는다면 소수 평등파가 떠나야 할 게다.

그리 되면 총선에서 다수 자주파만이 남아있는 민노당에게 표룰 줄 유권자가 별로 없을 듯 하다. 유권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민노당이 우리의 정치•사회현실에 맞지도 않은 종북주의니 뭐니 하는 교조적 이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걸 이해하기 어렵다.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북한과 관련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분야는 사실 하나도 없다. 오히려 북한을 우리 사회에 동화시키는 일이 동포를 위하고 나아가 인류 복지와 평화를 위하는 길이다. 그리 해서 북한 위정자가 인민을 위하고 궁극적으로 남북한 평화통일을 실현시키기 위한 기반을 조성토록 유도하는 것이 이 시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아직도 레드 콤플레스에 빠져 맹목적으로 북한을 추종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사회주의•공산주의가 더 이상 인간에게 보다 나은 행복을 갖다주는 이념이 아님을 알 때가 이미 지났다. 이런 의미에서 민노당 비대위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당내 혁신 운동은 당내 혁신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 것이 당 안팎의 좌파들에게 세상을 있는 그대로 올바르게 인식하게 하는 현실감각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민노당 혁신 운동이 우리나라 좌파들에게 올바른 현실 인식과 철지난 교조적 이념 타령에서 헤어나게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이 것이 민노당 혁신 운동의 올바른 지향이다.

이타임즈 최재완 편집인 [choijw47@e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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