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기획_도전하는 여성] “한국인, 유행에 민감…美시장 성공공식 안 통하더라고요”

입력 2017-05-11 10:47

제니 강 로빈케이 인터내셔널 부회장, 가성비·신뢰로 승부해 세계 1만여 매장서 年매출 2840억

▲제니 강 부회장은 2004년 미국 LA에서 패션기업 로빈케이를 설립해 미주·유럽·아시아지역의 1만여 개 매장에서 판매되는 견실한 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현재 6개의 자체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그는 해외시장에서 다져온 탄탄한 지위와 경험을 기반으로 한국시장 공략에 주력할 계획이다.
사진=고이란 기자 photoeran@
▲제니 강 부회장은 2004년 미국 LA에서 패션기업 로빈케이를 설립해 미주·유럽·아시아지역의 1만여 개 매장에서 판매되는 견실한 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현재 6개의 자체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그는 해외시장에서 다져온 탄탄한 지위와 경험을 기반으로 한국시장 공략에 주력할 계획이다. 사진=고이란 기자 photoeran@

세계 시장을 무대로 패션업계에 도전장을 내민 여성이 있다. ‘패션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일념으로 20여 년 전 연고가 없는 미국으로 건너가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있는 그는 미국 패션기업 로빈케이 인터내셔널(Robin.K International, 이하 로빈케이)의 제니 강(45·본명 김은희) 부회장이다.

그는 포기를 모르는 강한 집념과 강단 있는 추진력으로 로빈케이를 2억5000만 달러(약 2840억 원, 2016년 기준)의 연매출을 올리는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하게 만들었고, 치열한 미국 패션시장에서 인정받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강 부회장의 새로운 목표는 한국시장 공략이다. 기존 디자이너들이 K패션을 바탕으로 해외진출을 꿈꾸는 것과 달리 해외시장에서 다져온 탄탄한 지위와 경험을 기반으로 한국시장을 공략해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역발상에 주목할 만하다.

“한국시장 진출이 가장 어렵다”라고 말하는 강 부회장이 어떤 전략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 패션시장을 공략할지, 1800만 원으로 2평 남짓 되는 단칸방에서 시작한 사업이 수천억대 연매출을 내는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의 노력과 과정은 어떠했는지 궁금했다. 이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서울 강남 논현동에 위치한 로빈케이 코리아를 찾아 강 부회장을 만났다. 올 블랙 패션에 붉은 가죽재킷으로 디자이너답게 남다른 패션 감각을 자랑했고, 머리를 반듯하게 빗어 올린 올백스타일로 카리스마를 더했다. 강렬한 첫인상과 달리 부드러운 화법을 구사, 분위기를 편안하게 이끌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 무작정 미국행… 봉제공장에서 글로벌 기업리더가 되기까지 = 사진학을 전공한 그는 패션에 대한 애정으로 23세에 나홀로 유학길에 올라 패션디자인전문대학인 FIDM에서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 학교 졸업 후에는 디자인에 따라 옷본을 뜨는 일을 하는 패턴사로 일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미국에서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어요. 사실 패션사업을 이렇게 하리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디자인스쿨 졸업 후 패턴사로 일을 한 게 시작이죠. 그땐 먹고살려고 그 일을 했어요. 24세 남편을 만나 아이 둘을 낳았는데, 두 아이를 키우면서 생활하는 게 쉽지 않더군요. 소심한 성격 탓에 디자이너들과 부딪히는 게 싫어서 패턴부터 디자인, 생산까지 도맡아 할 수 있는 작은 회사를 찾았죠. 그땐 돈을 쫓아 다녔어요..”

강 부회장은 열악한 근로조건이었지만, 생계를 위해 일할 수밖에 없었다. 최저임금임에도 첫 달은 일명 ‘열정페이’라며 월급을 주지 않아 남편이 대신 받아다 주기도 하고, 일이 많아 3~4일씩 봉제공장에서 밤샘작업을 할 때는 아이들을 재울 곳이 없어서 쌓여 있는 천더미를 활용하기도 했다.

“정말 힘들었죠. 아이들에게도 미안했고요. 그런데 아이들에게 포기라는 걸 가르치고 싶지 않더군요. 미국사회에 정착해서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는 패턴사의 경험을 살려 자신의 사업을 해보고 싶었다. 오랜기간 경력이 쌓이니 자신감도 생겼다. 당시 세일즈 회사에서 소규모 의류업체와 대규모 유통업체를 연결해주는 일을 담당하던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여러 번 설득 끝에 자신의 회사를 갖게 됐다.

“2004년 2월 알고 지내던 봉제공장 사장님이 비어있는 약 2평 정도 되는 뒷방 하나를 무료로 쓰게 해주셨어요. 시작은 100%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이었어요. 첫 주문은 1벌에 3.25달러(한화 3500원) 정도 하는 티셔츠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남는 게 없더군요. 인건비가 장당 20원도 안 되는 거에요. 몸도 힘들고, 돈은 안 되고, 그러다 남편하고 힘을 합쳐 로빈케이라는 회사를 만들게 됐죠.”

▲제니 강 부회장은 2004년 미국 LA에서 패션기업 로빈케이를 설립해 미주·유럽·아시아지역의 1만여 개 매장에서 판매되는 견실한 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현재 6개의 자체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그는 해외시장에서 다져온 탄탄한 지위와 경험을 기반으로 한국시장 공략에 주력할 계획이다.
사진=고이란 기자 photoeran@
▲제니 강 부회장은 2004년 미국 LA에서 패션기업 로빈케이를 설립해 미주·유럽·아시아지역의 1만여 개 매장에서 판매되는 견실한 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현재 6개의 자체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그는 해외시장에서 다져온 탄탄한 지위와 경험을 기반으로 한국시장 공략에 주력할 계획이다. 사진=고이란 기자 photoeran@

◇ 정직함과 가성비로 승부수 = 강 부회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비즈니스의 가치는 신뢰와 가성비다. 고객과는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가격 대비 가장 좋은 질과 디자인으로 승부를 건다. 이 두 가지 가치가 지금의 로빈케이를 성장하게 한 원동력이다. 그 덕에 단칸방에서 1800만 원으로 시작한 사업이 수천억 원대의 연매출을 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 유통망은 8000여 개에 달한다. 미국 노드스트롬 백화점에서 컨템포러리 부문 판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사실 소비자들은 옷의 디테일한 부분을 잘 모르죠. 100만 원짜리 옷과 10만 원짜리 옷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아요. 생산자의 양심에 달린 거죠. 옷은 원단과 부자재, 봉제의 수준에 따라 가격차이가 많이 나요. 숨기려고 하면 얼마든지 고객에게 숨길 수 있는 셈이죠. 하지만 고객을 속이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거예요. 손님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가격 대비 질 좋은 제품을 구매할 때 고객은 만족감을 느껴요. 그게 제일이죠.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게 핵심이에요.”

강 부회장은 OEM 방식을 넘어 자체 브랜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매년 자체 브랜드 파워를 늘려 총 6개를 만들어 냈다. 이 브랜드 제품은 미주, 유럽, 아시아지역 1만여 개의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2008년 갑작스럽게 닥친 미국 금융위기로 파산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심각해진 경영악화로 경제불황의 직격탄을 견뎌내기 버거운 지경에 이르렀다.

“2006년 11월부터 2008년 1월까지 14개월간 매달 몇천만 원씩 까먹었어요. 도저히 못 버티겠더군요. 2007년 12월에는 고객사로부터 10억 원짜리 계약을 취소당했어요. 그달까지만 하고 결국 문을 닫기로 했었죠. 잠이 안 오더라고요. 주머니에는 3000만 원이 남았는데, 포기하자니 10명도 채 안 되는 직원들의 얼굴이 아른거리더라고요. 이대로는 못 끝내겠다 싶었죠.”

간절함은 통하는 걸까. 2008년 2월 구세주가 나타났다. 약 1800개의 매장을 가진 회사로부터 ‘2주 만에 2만 장의 옷을 만들어 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게 됐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시간이었다. 그 많은 원단을 납품해 줄 업체를 찾기도 쉽지 않았지만, 회사를 살리려면 어떻게든 해내야 했다.

“고객사와 협의해 중간확인 절차를 생략하기로 하고 기간 내에 만들어 주기로 했죠. 원단업체도 불황이다 보니 납품과 동시에 현금결제를 해줘야했어요. 어렵사리 2만 장을 2주 만에 만들어주니, 똑같은 조건으로 또 추가주문이 들어왔고, 그다음에는 4만 장을 만들어 냈죠. 비즈니스를 하면 위기는 찾아와요. 많은 힘든 일이 있었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일해요.”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시장 진출이 가장 어려워 = 한국인들은 유행에 민감하고, 개성보단 트렌드에 맞춰 옷을 입는 경향이 강하다. 강 부회장이 “한국시장 진출이 가장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다. 미국에서의 성공 공식이 한국에선 통하지 않았다. 미국 시장은 트렌드보단 가성비로 움직이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옷은 팔리지 않는다. 또 소비자는 자기 개성에 맞는 옷을 추구한다. 그래서 브랜드 충성도가 높다.

“너무 몰라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해외에 오래 살다보니 제 생각이 많이 서구화돼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한국적인 마인드를 다시 배우고 있죠. 이번에 한국에 집도 마련했어요. 미국에서 3주 살고, 한국에서 2주 지내면서 생활하고 있죠. 미국의 서구화돼 있는 패션 문화를 어떻게 한국 고객들이 원하는 입맛대로 적용시킬까 고민하고 있어요.”

강 부회장은 지금의 로빈케이를 한국에서 멀리뛰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움츠린 개구리’라고 표현했다. 더불어 강 부회장은 뛰어난 한국 신진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통해 그들의 성장을 돕고자 한다. 한국 디자이너들에겐 미국에 본사를 둔 로빈케이와 협업하면 해외진출을 성장발판으로 삼을 좋은 기회다.

“해외진출을 꿈꾸는 국내 디자이너들과 달리 나는 거꾸로 해외에서 한국을 왔어요. 신진 디자이너들을 키워내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도움을 주고 싶어요. 우리를 통해서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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