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대선후보 정책자문단, 그 규모의 불경제

입력 2017-04-0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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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전 청와대 정책실장)

2002년 대선,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긴 일이다. 경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후보가 정책자문단을 꾸리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 운영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곤란하다고 했다. 당시 48세, 이런 일을 하기에는 너무 젊고 너무 부족하다고 했다. 하지만 후보의 주장은 강했다. 후보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후보를 잘 아는 사람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일이 된다고 했다.

이후 몇 차례 고사하다 결국 맡게 됐는데, 이때 후보가 몇 가지 당부를 했다. 정말 도움이 되는 사람들만 모을 것, 굳이 그 규모를 키우지 말 것, 그리고 그 이름이나 명단을 밖으로 알리려고 노력하지 말 것 등이었다.

후보의 당부대로 했다. 오는 사람들이라고 그냥 받지 않았고, 누가 소개한다고 해 그냥 이름을 올리지도 않았다. 소수의 필요한 사람을 찾아 후보와의 면대면 토론을 통해 모았다. 후보가 국가 경영에 대한 소신을 이야기한 후 그 반응을 기다리는 식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권력이나 자리에 욕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후보의 철학과 신념, 그리고 국정 운영에 대한 생각을 보고 모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덕분에 지지도가 10% 초반으로 몇 달간 게걸음을 해도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오히려 지지도가 떨어져 일정에 여유가 생긴 후보와 토론하는 것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이들의 이러한 자세는 대선 직후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 과정에서도 잘 나타났다. 다들 못 들어가 안달하는 인수위원회지만 이들은 달랐다. 인수위원으로 내정되자 이들 중 상당수가 거절의사를 전해왔다. “어쩌겠나. 여기까지만 도와주자.” 오히려 설득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여기가 끝이다. 인수위원회가 시작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리 이야기를 하는 등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리를 놓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참여수석’ 자리를 놓고 자문단 출신 교수와 당선인 인사 라인이 대립했던 사건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문제는 주변이었다. 이들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서 곧 무슨 ‘좋은 일’이 있을 것이란 이야기가 돌게 되었고, 그래서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가족 친지도 들뜨기 시작했다. 본인이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권력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었다.

그러다 하루 이틀, 그 ‘좋은 일’에 대한 소식이 들리지 않으면 주변의 눈길이 달라졌다. “알고 보니 별 존재도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돌기도 하고, “‘팽(토사구팽)’당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가족과 친지로부터 이유 없는 위로를 듣기도 했다. 아무 죄 없이 ‘가련한’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당사자로서는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었다.

실제로 인수위가 끝날 무렵,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노골적으로 자리를 알아봐 달라 부탁하기도 하고, 안 되면 인사 하마평에라도 오르내리게 해 달라 부탁하기도 했다. 이해가 되었다. 때로는 나 자신도 느끼고 당하는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 후보들의 정책자문단 규모가 크게는 1000명에 달한다. 그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바쁜 후보와 면대면 토론을 했을까? 그래서 후보의 철학과 신념을 보고 그 안으로 들어갔을까? 후보들 또한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않은 것 같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까지 마구잡이 영입해 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걱정이다. 후보의 신념과 철학을 따라 모인 사람들, 그것도 후보가 일일이 찾아가 영입한 사람들도 결국은 권력과 자리를 이야기하게 돼 있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나? 게다가 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단것에 벌레가 꼬이듯 이들 주변에 다시 사람들이 모이게 될 것이다. 이들이 제한된 권력이나 자리를 두고 질주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끔찍하지 않나?

자문단의 기능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러다가는 나라가 성할지 의문이다. 대선 후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후보들에게 묻고 싶다.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 바로 지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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