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통신] “배우는 타인의 우주를 탐험하는 이방인”-프랑스 영화 ‘엘르’의 이자벨 위페르

입력 2016-12-2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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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다른 나라에서’ 한국서 작업…소통 안 되고 웃기는 일 있었지만 그런 게 배우에겐 더 어울리는 것

대낮에 강간을 당한 50대 여자가 성적 공격의 제물이 되기를 거부하고, 의연하고 교활하게 이에 대처하면서 오히려 승자가 되는 스타일 멋진 프랑스 영화 ‘엘르’(Elle)에서 미셸로 나오는 베테랑 스타 이자벨 위페르(63)는 동·서양을 통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다. 그래서 최근 필자가 속한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에서 위페르와의 인터뷰 후 기념사진을 찍을 때 “당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라고 말하자 위페르는 “정말이냐, 고맙다”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이 영화뿐 아니라 ‘피아노 선생’에서도 보여줬듯이 위페르는 대담무쌍한 연기를 해내는 겁이 없는 여자인데 연기가 연기 같지가 않고 자신의 평소 태도처럼 자연스러워 보기가 아주 편하다. 위페르는 질문에 악센트가 있는 다소 서툰 영어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 모습이 지적이면서도 그런 지성미 속에서 성적 매력이 솟아나는 듯했다.

△상당히 어려운 역할로 용감한 연기인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용감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관객들을 실제로 내가 맡은 인물의 심정 속으로 이끌어들여 그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연기를 할 뿐이다.”

△강간 피해자와 얘기를 했는가.

“아니다. 연기란 상상력에 달려 있다. 난 결코 이런 역을 위해 공부하지 않는다. 난 그저 좋은 각본과 역과 주제에 따라 역을 선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독으로 그와의 화학작용이 영화의 성패를 가름한다.”

△연기의 기본 규칙이라도 있는가.

“정상적인 사람의 행동에 가능한 대로 진실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 삶도 그런가.

“다소 그렇다고 본다.”

△미셸은 강간을 당한 뒤에도 큰 집의 자물쇠만 바꾸고 혼자 산다. 겁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강간범을 다시 기다리는 것인가.

“미셸이 겁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그라면 이사를 갔을 것이다. 미셸이 혼자 집을 지키는 데에는 그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자기 본능에 따라 그 사건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내려고 한다고 본다. 모든 것을 열어 놓겠다는 뜻이다. 그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도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는 희생자이면서도 그런 사실을 무언가 다른 것으로 바꿔 놓으려고 한다. 자신이 상황을 조정하고 싶기 때문이다. 미셸은 또 이사를 안 가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는 끝에 가서 나름대로 복수를 한다.”

△많은 미국 여배우들이 이 역을 거절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부도덕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난 그런 것에 신경 안 쓴다. 모든 위대한 문학과 영화는 다 어느 정도 부독덕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불편한 느낌을 갖게 만들지만 난 그것이 좋고 또 그것에 흥분한다.”

△역을 어떻게 고르는가.

“내가 고른다기보다 각본을 읽는 즉시 이거다 하고 느끼는 것이 있다. 이 영화의 각본을 읽었을 때도 그렇게 느꼈다. 그러나 아까도 말했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감독이다. 다음이 각본이요, 그 다음은 역이다. 이 영화를 통해 폴 버호벤 감독과 일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그는 진실로 위대한 감독이다.”

△할리우드에서 살겠다는 생각이라도 했는가.

“시네마가 내 집이다. 난 어디서든 그것을 만들면 행복하다. 시네마는 거대한 집이며 그게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다.”

△영화에서 고양이를 키우는데 고양이를 좋아하는가.

“그렇다. 나도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난 고양이와의 침묵의 대회가 좋다.”

△사람들이 프랑스 여배우를 얘기할 때면 제일 먼저 당신 이름을 거론하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은 다 내가 함께 일한 사람들의 다양성과 다재다능함 때문이다. 따라서 나에 대한 칭찬을 그들에게 돌리고자 한다. 그런 뜻에서 난 배우란 늘 타인의 우주를 탐험하는 이방인이라고 본다. 이런 이방인이 외국에서 영화를 찍을 땐 그 경험이 한층 더 값지다. 그 일례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 ‘다른 나라에서’에 나오기 위해 한국에 갔던 경험이다. 소통이 잘 안 되고 웃기는 일도 있었지만 그것이 결국 이방인인 배우에겐 어울리는 것이다.”

△나이를 우아하게 먹는데 비법이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난 운동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승강기를 안 타고 늘 계단을 걸어 오른다. 폐쇄공포증 때문이다. 그 덕에 건강한 것 같다. 그리고 난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기 때문에 정신이 맑고 밝고 또 그것은 내게 에너지를 공급한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큰 특혜다. 그것은 정말로 하늘이 준 선물이다.”

△먹고 싶은 것을 다 먹는가.

“그랬으면 좋겠으나 난 많이 먹지 않는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가.

“모든 장르의 음악을 좋아한다. 특히 클래식이 좋다. 현대음악도 좋아한다. 난 아름다운 음성을 좋아한다. 아델과 작고한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좋아한다. 오페라도 좋아한다.”

△여성으로서의 힘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그것은 억제된 느낌이다. 소유해서 얻는 힘보다 현명함으로써 지닌 힘을 더 믿는다. 현명하다는 것은 남의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영화를 찍고 나면 어떤 기분인가.

“영화는 연극과 달리 촬영이 끝나도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연극은 무대 연기가 끝나면 그것이 끝이어서 우수에 잠기는데 영화는 언제나 볼 수 있기 때문에 느낌이 다르다. 난 늘 움직이는 것을 좋아해 영화를 계속 찍는다.”

△언제 배우가 되리라고 결정했는가.

“의식해서 배우가 됐다기보다 그냥 어느 날 배우가 됐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했는데 카메라 앞에만 서면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나에게 연기란 큰 문제가 아니다. 아주 쉽다. 연기는 내 삶의 의미다.”

△무엇을 하며 쉬는지.

“주로 영화와 연극을 보면서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 독서란 내게 큰 휴식이다. 또 음악을 듣는다. 아들과 함께 파리에서 고전영화만 상영하는 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블로그:hjpark1230.blogspot.com

‘엘르’는 여성 파워의 승전가

그녀라는 뜻인 ‘엘르’는 ‘원초적 본능’과 ‘쇼걸즈’를 만든 네덜란드의 폴 버호벤 감독의 첫 프랑스어 작품. 변태적이고, 폭력적이며 가학성 피학성 영화로, 얄궂은 성적 쾌감마저 느끼게 만드는 다크 코미디요, 스릴러이자 여성 파워의 승전가다.

파리 교외의 저택에 사는 비디오게임 제작회사 사장 미셸은 이혼녀다. 어느 날 집에서 대낮에 괴한에게 강간을 당한다. 그런데 사건 후에도 미셸은 집의 자물쇠만 바꾼 뒤 혼자서 산다. 미셸은 같은 범인에게 다시 겁탈을 당한다. 그러나 공포와 분노, 그리고 성적 흥분을 동시에 느끼는 미셸은 결코 피해자가 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미셸은 서서히 애인과 전 남편을 비롯한 자기 주변의 남자들을 희롱의 제물로 삼는다. 여성의 본성과 섹스가 가진 힘을 자학적인 방법으로 쓰는 여자의 이야기이자 중년의 삶의 위기와 성적으로 갈급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HFPA가 주는 제74회 골든 글로브(2017년 1월 8일) 외국어 영화상과 여우주연상(드라마부문) 후보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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