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지금] “프랑스식 대통령제는 병들었다”

입력 2016-12-1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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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4% 올랑드 대통령의 재출마 포기 선언으로 요동치는 프랑스 정계

근대 민주주의의 기수인 프랑스나 민주주의의 역사가 일천한 한국이나 이상적인 민주주의의 구현이 지난한 과제임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대선을 4개월 앞두고 요동치고 있는 프랑스 정계에 관한 현지 언론의 논평을 읽다 보면 꼭 한국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엘리제궁의 꿈(프랑스판 ‘대통령병’)’에 도취한 능력 검증도 안 된 인사들이 너도나도 대통령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나 “이들에게는 국민의 이익은 뒷전이다. 프랑스식 대통령제는 병들었다”는 진단 등이 그런 대목들이다. 정치도 인간이 하는 것이다 보니 민주주의의 성숙도에 관계없이 동서고금을 초월하는 보편성이 있는 것 같다.

중도 우파인 프랑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유력했던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여론조사 예측과는 달리 1차 투표에서 탈락했고 사회당 출신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재출마 포기 선언을 했다. 민영 TV TF1의 크리스토프 자퀴비스진 정치부장은 프랑스 정계의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정치적인 쓰나미’란 표현을 사용했다.

지난 1일 저녁(현지시간) 엘리제궁(프랑스 대통령궁)에서 TV로 생중계된 성명에서 올랑드 대통령은 “대선 후보로 나서지 않기로 했다”면서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하는 출마가 가져올 위험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회주의자로서 보수 및 극우 세력과의 대결에서 좌파가 분열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고도 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경기 부진과 실업대책의 실패, 잇단 이슬람 극단주의자 테러, 여배우와의 사생활 문제, 국가 기밀 누설의 논란을 불러일으킨 기자와의 대담록 발간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급기야 지지율이 4%까지 떨어져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 후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 되었다. 이렇게 되자 사회당 지도부에서는 현직 대통령이 경선 없이 재출마해온 관례를 무시하고 대선 후보 경선을 실시하기로 결정해 올랑드 대통령을 압박했다. 이에 더해 지난 10월 문제의 대담록 발간 이후 그동안 표면적으로는 올랑드 대통령에게 충성해왔던 마뉘엘 발스 총리가 비판적인 입장으로 선회해 최근에는 자신이 대선에 출마할 준비가 됐다고 밝혀 올랑드와 힘겨루기를 했다.

▲내년 대선 출마를 위해 총리직을 사퇴한 마뉘엘 발스. AFP연합뉴스
▲내년 대선 출마를 위해 총리직을 사퇴한 마뉘엘 발스. AFP연합뉴스

강력한 대통령제를 특징으로 하는 프랑스 제5공화국에서 현직 대통령의 재출마 포기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재임 기간 중 사망한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전임 대통령들은 모두 재출마하여 샤를 드골, 프랑수아 미테랑, 자크 시라크 등은 재선에 성공하고,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과 니콜라 사르코지는 낙선했다.

중도 좌파 성향의 권위지 르몽드는 ‘프랑수아 올랑드: 실패의 자인’이란 사설에서 올랑드의 재출마 포기는 품위 있고 통찰력이 있는 결정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이는 실정(失政)을 자인한 것이라고 논평했다. 신문은 2013년 말리에서 프랑스의 군사 개입, 2015년과 2016년의 지하디스트 테러는 개인적인 진정성을 인정하더라도 ‘정상적(normal)’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한 올랑드가 프랑인들의 눈에는 엄중한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비쳐졌다고 논평했다.

또한 경제사회적인 분야에서도 실업률 곡선이 역전되기 시작했다는 그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그의 재임 기간 중 구직자 수가 오히려 55만 명 증가했다는 사실은 그가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했던 실업 대책이 실패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르몽드는 올랑드가 대통령으로서 설득력 있는 프랑스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에 실패해 지지율은 추락했으며 그의 진영은 분열되고 현직 각료와 총리는 그에게 도전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은 올랑드가 내년 대선에서 2차 투표 진출은 물론 당장 내달 치러질 사회당 대선 후보 경선 승리도 장담할 수 없게 만들었다,

르몽드는 지난달 27일 우파 경선에서 유력 후보였던 알랭 쥐페 전 총리(71)와 사르코지 전 대통령(61)의 낙선과 올랑드 대통령(62)의 이번 불출마 선언은 이들이 각기 20년 전, 10년 전, 그리고 5년 전에 국민에게 약속한 변화와 개혁 그리고 국가 재건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대가라고 진단했다.

한편 우파 논객 막심 탕도네는 일간 르피가로 칼럼에서 “2016년 12월 1일(올랑드 대통령이 불출마 선언을 한 날)은 제5공화국 출범 60년 만에 프랑스 현직 대통령이 처음으로 재출마를 포기한 날로 역사에 기록될 의미심장한 날”이라고 논평했다. 그는 올랑드의 선택은 통제불능해진 상황이 가져온 결과로 바닥을 친 지지율, 정치적인 고립의 심화, 대선 1차 투표 탈락을 예고하는 여론조사 등이 그 원인이며, 올랑드의 대담집 ‘대통령이 이걸 말하면 안 되는데…’의 출간이 기폭제가 되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탕도네는 올랑드의 추락은 그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프랑스 정치의 보다 심각한 위기를 노정했다며 ‘엘리제궁의 꿈’에 도취한 능력 검증도 안 된 인사들이 너도나도 대통령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에게는 국민의 이익은 뒷전이라며 이런 현실에서 “역사에 족적을 남기고 국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지도자가 나오길 기대한다는 것은 공상이 되어버린다”고 개탄했다. 그는 또 프랑스 언론의 대통령 우상화가 북한에서처럼 현기증이 날 정도라며 그러나 대통령에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요술 방망이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 그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치며 인민재판의 희생양이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프랑스식 대통령제는 병들었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27일 프랑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7일 프랑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탕도네는 이번 우파 경선에서 소박하고, 신중하며, 겸손한 프랑수아 피용이 승리한 것은 절제 있고 능력 있는 지도자에 대한 갈망이 표출된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그가 당선되어 현 프랑스 정치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프랑스 공화국의 기본 원칙을 구현하기를 바란다는 개인적인 희망을 피력했다. 그는 이 기본 원칙이란 신중하게 국가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대통령, 대권의 야심없이 국민의 이익을 위해 통치하는 총리, 사심 없이 국가를 이끌어 가는 장관들, 입법 활동과 행정부 견제에 매진하는 의회라고 부연했다.

한편, 올랑드 대통령이 불출마 선언을 하자 발스 총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지난주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총리직에서 사임했다. 그는 내년 1월 22일(1차)과 29일(2차) 좌파 경선에 참가할 예정이다. 이 경선에는 현재로서는 전직 장관들을 포함한 8명의 후보가 경합할 예정이며, 1차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프랑스의 다른 선거와 마찬가지로 1, 2위 득표자를 대상으로 결선 투표를 실시한다. 발스는 현재 근소한 차이로 경선 승리가 예상된다. 그러나 비주류 출신인 그가 분열된 프랑스 사회당을 다시 결집시킬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또 올랑드 실정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그가 대선 2차 투표에 진출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로서는 공화당의 피용 후보와 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대표인 마린 르펜이 결선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대처주의(Thatcherism)를 신봉하는 시장개혁주의자 피용 후보가 훨씬 앞서고 있으나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 그리고 이탈리아의 개헌안 국민투표 부결 등을 감안할 때 르펜의 당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프랑스 좌파 후보가 내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를 통과하는 것은 ‘작은 기적(a minor miracle)’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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