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 사후의 쿠바 경제…비관과 낙관 엇갈려

입력 2016-11-27 08:18 수정 2016-11-2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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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공산 혁명에 성공한 정치지도자였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큰 재앙이었다. 세계은행이 공식 집계한 쿠바의 1인당 국민소득은 6000달러 수준. 북한이나 다른 공산독재국가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 수치는 현실과 동떨어진 통계일 뿐이다. 공산독재국가들이 흔히 그렇듯 실질 환율에 비해 엄청나게 낮은 공식 환율을 적용해 달러 기준으로 국민소득을 집계하면서 나타나는 신기루 같은 현상이다.

인근 중남미 국가와 비교하면 최근 급성장을 하고 있는 도미니카에 비해서는 십년 이상 뒤쳐졌고 내란을 겪은 니카라과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라고 조지 메이슨 대학의 타일러 코웬 교수와 같은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니카라과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0달러 수준. 공산혁명 이전엔 중남미에서 선두주자였던 쿠바가 이제는 국민소득 1만 달러인 이웃 코스타리카와 비교하면 수십 년이나 뒤쳐졌으니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분야별로 차이가 있지만 쿠바의 의료와 교육 수준은 웬만한 개도국을 뛰어넘는다. 이에 비해 에너지와 전력은 쿠바의 아킬레스건이다. 쿠바인들은 요즘 지난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로 원조가 끊어지면서 겪었던 정전사태와 혹독한 경제난이 재발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외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를 수입할 형편이 안되기 때문이다. 쿠바의 총수출 가운데 40%를 의료서비스가 차지하고 있으나 벌써부터 수출에 적신호가 켜졌다. 브라질, 알제리, 앙골라 등 주요 수출대상국들의 경제사정이 어려워져 수요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산품인 사탕수수의 국제 시세는 2012년 수준을 밑돌고 있고 감귤류, 어류, 담배, 커피 등도 시황이 여의치 않다. 이에 반해 식품의 70~80%를 수입에 의존해야 하니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외환사정이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쿠바인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베네수엘라의 상황이다. 국제유가 하락과 과잉 복지정책의 역풍으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고 있고 베네수엘라의 경제상황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베네수엘라로부터 공급받고 있는 하루 8만 배럴의 원유 공급이 끊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쿠바는 의료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전문 인력을 베네수엘라에 파견하는 대신 연간 18억 달러 규모(추산치)의 원유를 공급받는 양국 간의 기존 협정이 깨어지면 전등 대신 호롱불을 사용해야 하고 자동차가 멈춰서는 최악의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쿠바 정부는 이에 대비해 연료 소비를 30% 이상 줄이고 수입과 투자를 감축하는 등 강력한 긴축대책에 시행하고 있다. 에어컨 가동시간 제한으로 은행이 영업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할 정도라고 최근 쿠바를 다녀온 미국인들은 이야기한다. 지난해 4% 성장했던 쿠바 경제가 올 상반기에는 1% 성장에 머문 것도 베네수엘라의 원유 공급 감소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코웬 교수는 쿠바의 경제가 비효율적인 공산체제에 발목이 잡혀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특산품인 커피의 경우 국제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브라질이나 콜롬비아의 뛰어난 품질관리와 마케팅에 밀려 기회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성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푸에르토리코, 트리니다드 토바고, 아이티, 바베이도스 등 주변 중남미국처럼 쿠바도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는 분석이다. 만성적인 국가 부채, 국제상품시세 하락 및 소규모 경제 등이 이 중남미 국가들의 공통적인 취약점이다. 유망분야로 떠오르고 있는 관광산업도 관광대국인 미국이 바로 옆에 버티고 있어 투자자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중국과 같은 고도성장을 꿈꾸고 있지만 공산체제의 비효율성을 극복하면서 고도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지도력이나 국민정서가 뒷받침되지 않으니 공허한 꿈일 뿐이라는 뼈아픈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50년 공산독재체제 아래서 켜켜이 쌓인 관료적인 규제와 무사안일 한 관습이 카스트로 사후에도 깨부수기 힘든 벽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사실상 체제가 와해되었는데도 이를 대체할 새로운 이념이 싹 틀 조짐조차 없으니 기대치가 낮을 수밖에 없다.

미국 최우선주의 정책을 앞세운 도널프 트럼프 차기 대통령이 등장한 것도 쿠바로서는 악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대 쿠바 화해 정책으로 부풀었던 기대와 희망이 반감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초 쿠바 주재 캐나다 대사를 지냈던 마크 엔트위슬 비즈니스 컨설턴트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쿠바는 위기에 대처하는 놀랄만한 사회 정치적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쿠바의 장래를 낙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미국과 쿠바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민간 직항 노선이 잇달아 개설되면서 올 상반기 중 쿠바 방문객이 두 자릿수로 증가하는 등 변화가 벌써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권이 출범하더라도 대량 난민 사태가 발생하면서 미국까지 불안해질 우려가 있는 쿠바 압박정책으로 회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소련 붕괴 이후 쿠바의 위기 대처역량이 커지고 다변화된 것도 낙관적인 요소다.

쿠바인들이 특유의 낙천적인 기질과 잠재역량을 발휘하면 반세기를 이끌어온 지도자를 잃은 슬픔과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중남미 강국의 옛 면모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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