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와 토요타, 무엇이 다른가?

입력 2007-09-05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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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1997년 이후 10년 만에 무분규 파업을 달성했다. 노사 잠정합의안은 임금 8만4천원 인상, 경영목표 달성 성과급 100%(임단협 체결 시), 하반기 생산목표 달성 100만원(체결 시), 경영실적 증진 성과급 200%, 품질향상 격려금 100만원 지급, 상여금 750% 지급 등이다. 또한 임금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정년을 현재 58세에서 59세로 늘리는 데 합의했다.

이와 함께 노사는 해외공장 및 신기술 분야에서의 고용보장 안건도 해외공장 신설·증설·해외공장 차종 투입 계획을 확정할 경우나 신기술·신기계 도입, 차종투입 등의 계획을 수립할 경우 노조에 설명회를 갖고 조합원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노사공동위원회를 통해 심의·의결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두고 각계에서는 일단 파업을 막았다는 데에는 환영하는 입장이지만, 회사가 지나치게 양보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특히 해외공장 차종 투입 계획까지 노조에 미리 알려야 하는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지난 10년간 파업사태는 일본 토요타 자동차와 크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지난 1950년, 토요타는 전례 없는 불황과 함께 추진하던 인력감축에 맞선 유일한 노조파업으로 토요타자동차 창업 1세인 도요타 기이치로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기게 된다. 이를 계기로 토요타는 노사관계 안정을 통한 회사 안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후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생산성 향상, 근로조건 개선 등을 위해 힘쓴 결과 파업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해서 얻은 대가는 ‘세계 정상’이다. 1994년 이후 자동차 생산대수에서 미국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주었던 일본은, 미국이 내수 부진에 허덕이며 공장 폐쇄로 신음하는 동안 세계 각지에서 영역을 넓혀갔다. 특히 토요타는 전 세계 각국에 51개의 현지 생산공장을 갖추고 일본 내에서 확립한 토요타 고유의 생산방식을 각 현지에 적용해 세계 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토요타는 2007년에는 950만 대 정도의 생산실적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1위 업체에 오를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을 목전에 둔 토요타의 경영철학과 가치관은 ‘토요타웨이(Toyota Way)’로 정리된다. 토요타웨이는 크게 ‘지혜와 개선’ ‘인간성 존중’의 두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우선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왜(why)’라는 질문을 최소한 5번쯤 하며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 개선사항을 찾으려 한다.

어떤 일을 진행할 때 직접 현지에 가서 보고 느끼며 일을 진행하라는 ‘현지현물(現地現物)’ 개념은 간접적인 경험이나 타인의 얘기로 짐작해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말단 직원들부터 최고위층까지 ‘인간존중’ 정신에 입각해 인재를 아끼고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말단 직원들에게도 일정 범위의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 개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데에 힘쓴다.

자동차 생산방식에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는 토요타의 생산 시스템은 1950년대에 들어서 개선되기 시작해 토요타 프로덕션 시스템(TPS: Toyota Production System)으로 정착되었다. TPS의 핵심은 1951년부터 시작된 ‘카이젠(改善: 개선)’으로, 이는 자원의 낭비를 없애자는 것이다. 이러한 TPS를 실현시켜준 대표적인 수단으로 ‘JIT(Just In Time)’가 있다. 이는 시스템 협력업체와 부품 재고량을 거의 ‘제로’에 가깝게 유지해 필요할 때 필요한 부품으로 제때 필요한 차를 만드는 것이다. JIT는 ‘간판방식’이라고도 하는데, 모든 부품 용기에 바코드가 있는 간판(카드)을 중심으로 소비되는 부품 수량에 대한 정보가 협력업체와 실시간으로 공유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토요타의 이러한 생산 시스템은 1980년대 중반 미국 MIT대를 중심으로 일본 기업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린(lean)방식’ 또는 ‘토요티즘’으로 이름 붙이기도 했다. TPS의 핵심을 이루는 ‘카이젠’은 ‘개선할 문제를 현장에서 찾아내어 문제를 해결하는 작업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토요타는 모든 직원이 개선을 생각하고 금전적 보상이 없더라도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생산 현장에서 발견한 사소한 사항이라도 개선할 여지가 있다면 반영하여 끊임없는 개선을 한다. 종업원 1인 평균 연 11건 정도를 제안하는데, 이중 채택된 안은 즉시 업무에 반영된다. 2004년 기준 53만 건의 개선사항이 현장 근로자들을 통해 접수되었고 이중 99%가 실제로 채택되었다.

현대와 토요타가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협력업체와의 관계에서도 찾을 수 있다. 토요타의 50년 이상 흑자는 부품업체들과 상생의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한 지속적인 원가절감 운동이 바탕이 되었다. 세계적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의 치열한 경쟁에서 우위를 보이는 것은 그 뒤에 수많은 부품업체들의 경쟁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인데, 토요타 부품업체들의 불량률은 0.01%, 미국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1.8% 수준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토요타는 부품업체에게 납품가를 낮추라고 일방적인 압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대신 합리적인 원가절감 목표를 내건 뒤 부품업체와 함께 고민한다. 이렇게 원가절감 목표를 달성하여 절감한 비용의 3분의 1은 다시 부품업체에 투자해 부품업체가 토요타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토요타에는 노사관계를 규정하는 두 가지 키워드가 있다. 첫째로 ‘한 축의 두 바퀴’라는 슬로건인데, 두 바퀴는 각각 노사를 가리키는 말로 자동차의 두 바퀴가 발맞추어 나가야만 전진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또 다른 키워드는 ‘상호신뢰’다. 노사는 서로를 존중해야 하고 상호신뢰와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어려움과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회사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종업원의 종신고용을 위해 노력하고 지속적인 직원교육에 힘씀으로써 직원들의 충성심을 고취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곧 지난 55년 동안 무파업과 노조의 임금 자진동결 등을 통해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갖추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토요타의 질주는 고급차 시장과 저가형 차 시장을 가리지 않는다. 럭셔리 브랜드인 렉서스는 2006년에 미국에서 32만2434대를 판매해 BMW(31만3603대)와 메르세데스 벤츠(24만8080대)를 앞섰다. 한국 메이커들이 강세를 보여 온 저가 시장도 일본 메이커들은 그냥 두지 않았다. 토요타는 미국 시장에 사이언이라는 저가 브랜드를 내놓아 한국 메이커들에 대응하고 있으며, 떠오르는 중국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카롤라 등 최신 모델들을 현지 생산하는 강수를 두고 있다.

토요타의 중국 현지법인인 이치토요타의 지난해 판매대수는 21만8631대로 업체 순위 7위. 29만11대를 판매한 4위의 베이징현대에 뒤지지만 빠르게 격차를 줄이는 중이다. 근래에는 엔저(円低)현상 덕분에 가격경쟁력까지 높아져 한국 메이커와의 경쟁에서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한국 업체들은 전년도보다 2.6% 늘어난 75만 대를 팔았으나 일본 업체들은 5.4% 증가한 577만 대를 팔아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미국과 유럽처럼 주력 시장 외에도 기존에 등한시했던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의 시장에서까지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현대와 기아는 획기적인 대응책을 내놓지 않는 이상 고전할 수밖에 없다.

일본 메이커들도 나름대로 고민을 안고 있기는 하다. 토요타는 렉서스가 유럽에서 기대만큼 팔리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고, 닛산은 구조조정 이후 신모델 개발이 늦어지면서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 또한 혼다는 어큐라가 럭셔리 브랜드 시장에서 더 나은 성과를 거두기까지 더욱 노력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미쓰비시나 마쓰다는 부진의 늪을 빠져나올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그래도 90년대 후반의 M&A 바람처럼 일본 자동차 업계에 충격을 줄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은 당분간 적어 보인다. 기술력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일어설 준비가 된 덕분이다. 현대자동차의 사정은? 물론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 앞서가는 일본 메이커를 보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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